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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삼 Jun 07. 2024

I HATE MONDAY.

경영자와 시네필의 역할갈등




사람은 본인이 하는 일에 따라 호불호 상황이 갈린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신발 가게에 일했을 땐 비가 오는 게 참 좋았다. 뭐랄까 비가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발 사길 꺼려 했다. 하지만 영화관은 달랐다. 비가 오면 관객 수가 평소보다 많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월요일이 그렇다.

현장에 있었을 땐 관객이 많은 '토요일'이 제일 싫었지만, 점장이 되고 나니 오 마이 갓, 월요일이 최악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월요일이 최악인 이유는 이틀 쉬고 다시 5일을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지만 그때는 이런 이유가 아니었다.

당시 나는 월요일에 영화 시간표를 작성해야 했다.



처음엔 재밌었다.

레고처럼 하나씩 쌓아 나가는 기분.

내가 작성한 영화 시간표로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웃으며 돌아가는 모습에, 업계 종사자로써 이 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이끌어 간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나는 레고가 아니라 톱니바퀴를 맞춰 나가야 함을.

영화 시간표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스텝과 관리자의 출, 퇴근 시간, 용역 미화 직원들의 인건비, 상가 오픈/마감 시간, 영사실의 상영관 서버 용량, 스크린 쿼터, 매표와 매점 매출 등등


나는 모두가 '적정한 힘듦' 속에서 '최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게 해야 했다.


결국 이 지역 문화 콘텐츠를 이끌어 간다고 자부했던 나는, '최소 비용 최대 이익'을 계산하는 경영인으로 마인드를 바꿔 나가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영화관을 관두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영화 시간표는 나 혼자 만드는 것이지만, 또 나 혼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본사 프로그램 운영팀과 함께 의견을 나누어 작성한다.

(이것은 위탁점*이기에 가능하며, 직영점은 프로그램팀이 정해준 데로 작성한다)

* 위탁 해당 프랜차이즈의 브랜드지만 영화관의 소유주가 개인 또는 타 법인인 곳.


이 의견을 나누다 보면 가끔 첨예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위탁 지점 점장의 의견을 따라준다. 물론 그러면서 결과물을 갖고 꼬투리를 잡기도 하지만.



한 번은 이런 다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감독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가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이건 영화 팬으로서 무조건 큰 스크린과 파워 있는 사운드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프로그램 운영팀도 대형관을 배정해 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응?

아니었다. 프로그램 운영팀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 이러면 싸우는, 아니 의견을 나누는 거다.

그러다 보면 영화 시간표를 짜기 전부터 힘이 다 빠진다. 쉬운 게 없다.


후일담으로 <매드맥스>는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대형관에 배치되었으며, 흥행에 성공해 나의 입지 상승에 도움이 되었다(ㅎㅅㅎ).




덧) 대형관에 배치되는 영화는 무엇일까?

보통 블록버스터나 액션, 주류의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얼추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만약 이런 비슷한 영화가 동시 개봉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자사가 제작, 투자, 배급한 영화를 배치한다. 하지만 시사회 등을 통해 반응이 좋지 않다면 과감히 다른 영화를 배치시킨다(어쨌든 한 곳이라도 이익을 갖자는 주의기 때문에).

그런데 시사회 등의 반응이 비등하다면, 일단 자사 영화를 배치시키고 주말까지의 관객 추이를 보면서 결정한다. 그리고 대형관에 배치한 영화가 열세라면 본사로부터 주말 상영관 변경 진행 연락이 온다. 이렇게 해서 수요를 맞춰 매출을 증진 시킨다.


개인적으로 이런 시스템은 회의가 많이 든다. 결국 관 변경을 하면 현장의 관리자들이 관객들에게 연락하여 일일이 사과+안내를 해야 한다. 관객은 내가 선택한 좌석이 영화관에 의해 변경된다. 서로가 약간의 언짢음을 갖는 첫인상을 가진다. 하지만 본사는 수요에 맞춘 결과! 당신 영화관들의 매출! 이라고 떳떳이 말하지만, 정작 관객들과 현장의 직원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만약 누군가 나에게 다시 영화 시간표를 작성하는 기회를 준다고 하면,

나는 "하지 않겠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만큼 작성하는 데 있어 스트레스가 많은 것도 맞지만, 영화를 매출 자체로 보기 때문에 인생이 너무 건조하다. 영화가 건조한 삶은 재미없다. 앞으로도 나는 영화가 좀 더 재밌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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