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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May 03. 2022

나무를 바라본다.

은행나무, 죽단화 나무


내가 이 글을 쓰는 부엌 테이블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보이는 창문 앞에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던 어제는 미친 듯이 흔들리더니 오늘은 좀 잠잠해진 걸까. 연둣빛 은행잎을 나뭇가지에 잔뜩 머금고 오도카니 서있다.


이 나무가 샛노랄 때 이 집 공사를 시작했고, 입주할 때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더니 이내 흰 눈이 쌓였으며, 어느새 싹이 돋아나고 드디어 연둣빛 이파리들이 나무를 잔뜩 감싸 돋아나기 시작했다. 조만간 꼬리꼬리한 냄새 풍기는 은행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바닥에는 타다닥 터진 은행들이 즐비하겠지.


이렇게 30년이 다 되어가는 아파트 단지 내에는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하늘 높이 솟은 크고 굵은 여러 나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오죽하면 그 생명력은 보도블록을 깨부수며 뿌리들이 성장해 인도는 울퉁불퉁해져가고 있지만, 주민들은 이 큰 나무들을 베어내지는 못하고 함께 공존하는 것을 선택했다. 굵은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멋들어지며, 울퉁불퉁 튀어나온 도로는 깔끔하게 손질된 신도시 아파트들과 다르게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 오히려 정겹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삶, 녹지가 잘 된 오래된 신도시 아파트 단지.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자연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고 살기도 하고, 이따금씩 내가 필요할 때만 한 번씩 눈을 돌려 그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정도인 것 같다.


오늘은 새벽 운동 후 집에 들어오는 길에 겹황매화(죽단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 학교 뒤편 철쭉 속에 부분 부분 무리 지어 자라 있는 이 나무.


처음엔 무슨 나무인지 잘 몰라 사진을 찍어 검색을 했고, 매화나무들 중 겹황매화로 이름이 ‘죽단화’인 것을 알았다. 장미과인 이 꽃나무는 원산지가 일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설명에는 황매화의 변종이고, 색감이 예뻐서 차로 덖어 마시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기존에 보던 개나리나 수선화의 여린 노랑이 아닌 진노랑이 멋스럽게 채색된 꽃나무이다.


동네에서 이 꽃나무를 발견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 이사 와서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에는 내 눈에 어떤 나무도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눈앞에 닥쳐있는 무거운 삶의 무게들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자연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람은 왜 힘든 시절들이 지나가고 여유를 찾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자연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힘든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던데, 나는 그런 용기조차도 그런 생각조차도 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요즘 읽고 있는 소로우의 ‘월든’ 속에서 그가 추구하는 자연을 맞이하는 사상, 그 속에서 가꾸고 살아가는 모습들의 ‘이면’들을 접하게 되면서,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에 귀의해 온전히 내 맡기고 살 수만은 없는 존재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온전히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자연만 바라보며 세속을 떠나 마음 편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라는 것이다.


죽단화가 활짝 피어있는 아이의 학교 뒷길을 따라 걸으며 처음 이 죽단화를 만났을 때의 설렘과 호기심, 익숙해지고 난 후 이따금씩 지나는 이 길에서 4,5월 반짝 피었다가 사라져 버리는 이 꽃을 마음껏 누리고, 시간이 흘러 꽃잎이 말라 후드득 떨어져 바닥에 흩뿌려지는 샛노란 꽃잎들을 바라보며 계절이 바뀌는구나 하고 있을 테다. 그러다 보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겠지.


올해에는 작년보다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나무들을 바라보고 자연의 변화를 마음껏 눈에 마음에 담고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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