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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May 15. 2022

사랑, 연민, 그리고 책임감

전쟁은 없어져야 합니다.

“연민을 가지세요. 그리고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세요.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좋은 곳이 될 겁니다.”
교수님은 숨을 들이쉬고 평소에 좋아하는 구절을 덧붙여 말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어릴 적, ‘사랑’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에는 으레 머릿속에 상상하게 되는 핑크빛 달콤한 로맨스, 영화나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들을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좀 더 나아가 가족 간의 사랑,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사랑까지도 발전했다.


사랑을 주고받고 쟁취함으로써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내 앞가림하고 산다며 ‘핑크빛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언제 느꼈었던가 싶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돌보는 데에는 다소 뒷전이었다. 물론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을 주고받고 살고는 있지만, 처음 내가 단어로 접했던 ‘사랑’이라는 단어에서는 많이 변질된 바가 없지 않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이었으니까 애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다양한 사회문제들에 관심을 갖다 보니 언제부턴가 ‘사랑’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폭넓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사랑과 연민, 이 단어들을 사유하다 보니 ‘전쟁’이 떠올랐다.


아직도 내전이 끝나지 않는 지구 상의 많은 나라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하여 말도 안 되는 전쟁 범죄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다시금 인도적 차원에서의 ‘사랑’이란 단어의 본질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의 욕심을 큰 뜻이라는 말로 듣기 좋게 포장하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이 반복되는 이 사태는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 인가. 사회적으로 이런 전범을 다루는 단체들이 있어서 재판을 열어 판결을 내리거나 전 세계 국가들의 경제적 제재, 다양한 보이콧 등으로 비뚤어진 욕심이 불러온 결과의 잘못됨을 운운하고 다양한 잣대로 각성시키려 하고는 있지만, 이미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을 대로 받은 당국 국민들은 그 아픔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며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 인가.


전 세계가 그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고 책임감을 통감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크고 작은 도움이 그들에게 전달된다 할 지라도, 그들에게 남아버린 전쟁의 고통과 정신적 트라우마는 어찌 치유할 수 있겠나 싶다.

전쟁은 없어져야만 할 것이고, 지구 상에 남아있는 가장 혐오스러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아니, 이런 상황이 되기 전에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함께 성장한다는 그림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이런 참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차피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역사적으로 얽히고설켜있는 문제들이 있다지만, 과거의 역사도 말이지, 잘못된 것들은 바로 잡아가고 어느 정도 타협해 가면서 풀어갔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도자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적으로 집권하는 당의 주장과 색이 이렇게도 중요하다.


가뜩이나 기후변화와 다양한 환경문제들로 인해 지구가 많이 들쑤셔져 있는 상태에서, 전쟁으로 인한 불필요한 자연 훼손과 다양한 피해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우리는 하루빨리 내전 중인 나라들의 정상화를 위해 크고 작은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며, 우리도 아픈 역사를 통해 겪었듯이 그들의 아픔을 함께 보듬어 주고 치유해 나갈 수 있는 도움의 손길과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겠다.


다시금 모리 교수님의 이 말씀이 와닿는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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