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와 애벌레도 함께한 여행
드디어 발리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 홀로 나가 모닝 요가를 한 후 남편과 야무지게 조식을 즐겼다.
우리는 저녁에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가루다 항공이 핫딜로 떴을 때 고민하다가 결국 표들이 사라지고 추후에 선택한 것이 발리로 갈 땐 직항, 한국으로 갈 땐 자카르타 경유였다.
발리 국내선 공항에서 18시 40분에 출발하여 19시 40분에 자카르타에 도착한 후에 (인도네시아에서도 시차가 생겨 2시간 비행이었으나 도착시간은 1시간 걸리는 것처럼 보인다.) 3시간 45분 대기했다가 23시 25분에 자카르타 국제공항에서 타서 다음 날 8시 30분에 인천 도착예정이었다.
국내선과 국제선의 거리가 어느 정도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아 경유 시간이 조금 넉넉한 것으로 선택했었다. 왜냐하면 인천공항이나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처럼 뭔가 재미난 것이 많을 거라 생각했기에 나는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너무나 즐거울 거라 예상했던 것이다.
아무튼!
마지막 날도 계획해 둔 일정이 없었기에 쉬엄쉬엄 짐을 챙겼다. 그 짐에는 아이의 애착인형인 연두와 애벌레도 함께 했다. 아이를 임신하고 7개월 때까지 일하다가 쉬면서 보건소에서 하는 임신부를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그때 태교에 좋다고 바느질 수업을 들으며 만든 것이 연두와 애벌레였다.
남자아이는 하늘색, 여자아이는 핑크색 인형을 만들 때 나는 홀로 연두색 인형을 만들었고 연두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알록달록 촉감인형인 애벌레도 만들었는데 아이는 애착인형을 애지중지 여겼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가 사춘기증세를 보일 때마다 남편은 연두를 괴롭히는 척했고 아이는 연두를 괴롭히지 말라며 서로 으르렁 거렸다. 만들어준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아이가 연두와 애벌레를 애지중지 여겨주는 것이 너무 고맙지만 엄마, 아빠도 소중하게 여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예전에 연두와 애벌레가 왜 좋은지 물어보니
"연두랑 애벌레는 나에게 화내지 않아. 항상 웃어줘."라고 했었다. 아이는 애착인형에게 편안함을 느꼈고 뭐라도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있음에 감사하며 내가 웃는 표정으로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연두와 애벌레는 바빴던 남편도 가보지 못한 여행지를 더 많이 가봤다. 이번에 발리 여행 때도 연두랑 애벌레를 데리고 간다길래 중학생이 무슨 애착인형이냐고 했는데 캐리어에 연두와 애벌레만 챙길 정도로 소중한 친구였다. (조금이라도 찌그러지면 연두와 애벌레가 아파한다고 한다. ^^;;;)
숙소에서 청소를 해주신 후에 연두와 애벌레를 침대 위에 잘 올려놔주신 곳은 센스 있는 곳이라며 아이가 칭찬을 했고 반면에 연두와 애벌레를 짐처럼 취급한 곳은 다신 안 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
이번 여행은 길어서 여러모로 지출금액이 크다 보니 기념품을 거의 사지 못했고 다행인 건지 연두와 애벌레는 넓은 캐리어에 편하게 들어 가 아이는 흡족해했다.
체크아웃을 한 후 로비에 앉아 남편이랑 고민을 했다. 이제는 캐리어를 가지고 다녀야 했기에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짐을 보관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물론 나는 완전히 무계획적인 인간은 아니었기에 몇몇 곳을 알아두긴 했다. 원래 남부투어를 하고 싶었으나 아이가 아프기도 했고 그냥 오토바이 타고 동네 둘러보며 쉬기를 원했던 남편도 있었기에 포기하고 있었지만 마지막 날 어차피 큰 택시를 불러야 하니 투어차량을 불러 차에 짐을 맡기고 우리는 남부투어를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뭐... 나를 제외한 두 명은 귀찮아했기에 최종 선택은 공항 가까운 쇼핑 몰에 가서 점심 먹고 카페에서 쉬거나 마사지정도를 받아보자며 출발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가면서 쇼핑몰에 캐리어를 보관해 주는 서비스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아니면 코인사물함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알아보다가 쇼핑몰 왓츠앱으로 문의를 남겼고 그런 서비스는 없다고 답변을 들은 상태였다.
공항 근처 꾸따지역에 있는 디스커버리 쇼핑몰이었는데 택시가 내려준 곳은 끝없이 계단이 있는 곳... 우리는 캐리어를 보고 잠시 멘붕이 왔는데 다행히도 계단 옆쪽에 있는 입구로 들어갈 수도 있도록 안내직원(?) 같은 분께서 도와주셨다.
직원분의 친절함에 원래 질문 같은 걸 잘 안 하던 남편이 우리 캐리어를 보관해 줄 수 있는지 물었고 직원분께서 저쪽으로 가면 있다면서 길도 안내해 주셨다.
아니~ 이럴 수가!! 분명 내가 미리 문의했을 땐 없다고 그랬는데... 아... 이래서 내가 점점 계획을 짜지 않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해결되는 기쁨 만끽!!!
우리는 그렇게 짐을 맡기고 가뿐하게 쇼핑몰을 다녔다. 하필 우리가 산 마그네틱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었고 뭔가 더 깔끔했으며 마트에서 할인해서 싸다고 사둔 헤어제품조차 이곳에선 더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나름 저렴하다고 알아내서 산거였는데... 하아... 이래서 굳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
장난감 매장도 가고 이번에도 게임장에서 가서 이것저것 게임을 즐긴 후 배가 고파 두리번두리번~ 남편은 기왕 온 거 경치도 볼 수 있는 햄버거 가게를 가자했지만 그곳은 찜통... 그래서 다시 간 곳은 버거킹~! 버거킹은 익숙하니까 주문했는데 햄버거 사이즈에 따라 금액이 달라졌다... 뭐 당연한 소리겠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인도네시아 돈은 대략 2만 원 정도... 남편과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이 햄버거만 시켰다. 직원분이 큰 사이즈를 추천하셨지만 우린 조금 더 저렴한 햄버거를 시킨 건데 나중에 나온 햄버거를 보니 엇! 너무 코딱지만 하다...ㅠㅠ 역시나 아이는 두 입에 털어 넣고 다시 배고프다고...ㅠㅠ
그래서 다른 매장에 들어갔는데 너~ 무 비싸고 조금 시켜서 계속 앉아 있기도 뭐 하니 결국 조금 일찍 공항 가기로 결정! 그렇게 우리는 발리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향했고 일찍 간 거지만 다행히 수속을 해줘서 국내선 공항 안에서 쉬게 되었다. 그곳에선 외국 사람들은 거의 안보였고 내국인들만 보이는 것 같았는데 남편은 피곤하다면서 계속 앉아있었고 나는 보지 못했던 브랜드들도 있어서 쉼 없이 돌아다녔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자카르타로 가는 2시간 동안 기내식도 나왔는데 역시나 남편은 입맛이 없다고 안 먹고 아이와 나는 폭풍 흡입! 이번 기내식은 뭐든 잘 먹는 나도 그냥 그랬는데도 더군다나 아이는 남편 것까지 두 개나 먹었다.
그렇게 도착한 자카르타 국내선! 우리는 국제선으로 갈아타야 하니 정신 똑띠 챙기고 가려했는데 의외로 남편이 척척 잘 찾아갔다. 신기하네~
국제선 공항에서 남편이 잠시 화장실을 들렀다가 외부로 잠깐 나가보자 했는데 줄어들지 않는 여자화장실의 줄... 자카르타 공항은 발리공항 분위기와는 달랐는데 무슬림복장 여자분들이 많으셨고 겉으로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 복장으로 인해 화장실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잽싸게 포기하고 결국 외부도 못 가고 공항 안으로 입성!
그런데!!! 면세점치곤 뭐가 없다??? 오히려 발리 국내선은 뭔가 인도네시아스러운 분위기에 아기자기했는데 자카르타 국제선은... 그다지... 물론 내가 화장품이고 향수고 관심이 없어서 더 볼거리가 없다고 느꼈을 거다. ^^;;;
그리고 또 다른 문제점 발생!
우리가 탈 비행기 게이트가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자리 잡고 쉬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경유시간이 꽤 되기 때문에 아직 게이트가 정해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계속 불안해했다.
그렇다!
우리 남편은 사실 비행기공포증이 있었고 그래서 하루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기운도 없었으며 비행기 못 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과 첫 해외여행이었던 신혼여행!! 연말연시라 너무 비싸서 결혼식 하고 바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는데 여행 이틀 전부터 남편이 골골 댔다. 난 남편이 비행기를 무서워하는지 전혀 몰랐고 신혼여행 출발 전에 아파서 많이 걱정했었다. 그 당시 폭풍검색하고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모리셔스라는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다 보니 직항이 없어서 홍콩에서 경유한다고 기다리다가 남편이 너무 아파해서 울면서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모리셔스 도착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나게 놀던 남편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 올 땐 괜찮은 것 같더니 결국 또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ㅜㅜ
아이는 이제 한국에 돌아가서 신나게 친구들과 놀고 게임할 수 있다며 아주 적극적으로 말을 잘 들어주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축구를 봐야 했는데 며칠 전에도 아시안컵 중계를 인도네시아에서는 볼 수가 없다 하여 문자중계로 보다 혈압 올라 짜증이 났는데 하필 이 날은 아시안컵 준결승 날... 너무너무 보고 싶었지만 또다시 문자중계...
전반전 경기를 0:0으로 보다가 비행기를 탔고 남편은 인상을 쓰며 잠들려 노력했으며 아이는 이제 진짜 한국 간다며 좋아했다. 나 홀로 여행의 아쉬움 뚝뚝 흘리며 중간에 일어나 또다시 야무지게 기내식을 먹었다. ^^;;
"멍군아... 미안해... 내가 널 몰라봤어..."
"어?? 뭔 소리야??"
"다음엔 여행 좋아하는 미술선생님이랑 가... 난 너의 에너지를 따라갈 수가 없어... 공항에서도 쉬지 않고 다니는 널 보면서 미안하더라... 저렇게 여행 좋아하는 아이인데 우리 때문에 마음껏 다니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했어..."
남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랑 여행 가고 싶어 하긴 했는데 내 에너지를 못 따라왔던 것이 생각나서 너무 웃겼다. 나는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길도 잘 찾으니 가이드로서 딱이었다. 하지만 나도 나름 나이 먹고 체력이 달려 많이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느끼기엔 아니었나 보다. ^^
드디어 도착한 한국...
내 인생 최초로 길게 갔던 여행 26박 28일...(계산이 맞나?? 맞는 것 같은데...^^;;;)
아이는 뿌연 하늘조차도 한국이 너무 좋다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고 남편은 다시 살아났다. 나는 사춘기 아이와 다신!! 절대로!! 길게 여행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남편은 체력이 되면 갈 수 있겠지...?^^;;
도착하자마자 확인한 아시안컵 준결승은... ㅠㅠ
이번 여정을 통해서 남편은 오전 비행기는 괜찮은데 저녁 비행기는 힘들다는 것도 알아냈다...
아무튼!! 여행 마치고 와서 바로 설날연휴를 보냈으니 정신이 없었는데 그러고 또 며칠이 지나자 현실세계에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고 내가 백수인 현실이 덜컥 겁이 났다. 물론 남편도 백수였고...
여행 마치기 며칠 전 시아버지께서 남편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너! 가정 어떻게 할 거야!!"라고 버럭 하시더니 전화를 끊으시고 설날 때도 버럭 하시긴 했는데 옆에서 뭐라 안 해도 이미 내 머리는 터지기 직전이라 제발 다들 좀 가만히 있어줬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발리에서 보낸 시간들이 내겐 꿈이었나 보다...
현실로 돌아오자 다시 머리가 아팠고 걱정 근심만 쌓여갔다.
하지만 발리에서 보낸 그 시간들이 헛된 거라 생각되진 않는다. 용기 내어 결정했던 여행이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보낸 여행이었던 만큼 난 느끼고 깨달은 바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2월 말... 나는 내 인생에서 생각지도 못한 길고양이를 입양하게 되었고 많은 돈을 벌진 못하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다. 남편도 반백살이라 일을 정하기까지 마음고생을 한참 하다가 다시금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여행 가기 전만 해도 미래가 두렵고 걱정이 많았는데 인생은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닫는다. 얼마나 만족하는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2024년에 나는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해보면서 내 인생의 추억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고마웠어요. 발리에서의 인연들.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도...
다시 만나요. 언젠가 다시 갈게요. 못 가본 곳이 아직 많아서...
또다시 열심히 살게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동안 저의 끄적임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그래왔듯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며 살아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