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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경 Oct 28. 2022

커피는 참지 마세요.

2008년 1월, 엄마가 되었다. 2주 만에 존재를 느끼게 해 준 예민한 아기, 쿵쿵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의 감격에서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입덧이 시작되었다. 세상의 모든 입덧을 견뎌낸 엄마들, 심지어 내 앞에 걸어가던 낯선 아주머니에게도 존경심이 생겼다. 내 육체와 정신이 모두 한계에 다다랐을 때, 입원한 병원에서 입덧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세포 분열 중엔 유독 입덧이 심해진다고 했다. 그렇다. 나의 아가들은 ‘일란성쌍둥이’였다.

     

배가 무서운 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6개월부터 만삭 임산부의 모습이었다. ‘이러다 배가 터지는 거 아냐?’, ‘임신 중에 배가 터진 사람이 있을까?’를 검색해 볼 만큼 커다란 배였다. 무사히 출산하고 집으로 아가들을 데려오던 날, 한 간호사 선생님이 하셨던 “혹시 아기가 바뀔지 몰라서 큰아이 발목에 리본 달았어요. 호호호.”라는 말씀이 무색하게도 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각자 다르게 들렸다.

     

책으로만 육아를 공부한 초보 엄마, 이제 막 세상에 온 나의 아기들, 우리의 서투른 동거가 시작되었다. 신생아 시절의 쌍둥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상상, 그 이상이었다. 우유 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고, 재우는 일상을 2배로 반복하던 나날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백일이 지나면서 먹이고 재우는 육아가 아닌 공감이 형성되는 육아가 되었다. 눈을 마주치고, 웃고, 옹알이로 의사 표현을 하는 아기들. 난 진정한 육아의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다. 옹알이의 말투도 달랐다.

     

의사 표현을 시작한 아기들은 자신들의 취향이 확고했다. 안아줄 때, 잘 때, 신생아이지만 본인들이 불편할 때와 편안해할 때를 울음으로 표현했다. 주위(옆집 아주머니, 앞 동 할머니 외 다수)에선 “많이 안아주면 손 탄다.”, “너무 뜻 받아주지 마라.”, “울 때마다 안아주면 버릇 나빠진다.” 등등 ‘안 된다’가 많았다. 하지만 난 내 아기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걸 뚜렷하게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기를 원했다. 내 소신대로 키웠고 지금도 아이들의 취향을 존중한다. 부작용으로 라면을 끓여도 “난, 짜파게티”, “난, 너구리”나 카레를 만들어도 또 다른 아이가 “난, 짜장” 할 때는 조금 피곤하지만, 자신들의 의사표현, 감정 표현을 똑 부러지게 하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다.

     

어느덧 아이들은 사춘기 소년이 되었고 사춘기 소년의 뇌 구조는 ‘먹고 싶은 음식, 맛있는 음식’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아이들과 나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나는 식사 준비에 시달렸다. 남편과 나는 음식에 꽤 관대하다. 신혼 초에는 학원을 운영하며 컵라면과 김밥이 주식이었던 때도 있었다. 나는 ‘다음 식사 때는 무엇을 준비하지?’란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마트에 장 보러 가서 ‘뭐 해 먹을까?’ 정도는 해보았다. 한창 성장 중인 사춘기 소년들은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바로 “저녁에 뭐 먹어?”, “내일 아침은 뭐야?”라고 묻는다. 나는 능숙하지 못한 요리 실력을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최대한 만들어주려 노력했다.

     

이를 지켜보던 엄마는 “강물이랑 마이산은 참 대단하다. 그렇게 항상 먹고 싶은 것이 있으니.”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뭐가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없었다. 고지혈증을 앓고 있으니 너무 기름진 음식을 가리기는 해도 일부러 어떤 음식을 찾는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엄마는 어렸을 때 아프면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약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약 지으라고 돈을 주면 ‘맛없는 약을 왜 먹지?’라고 생각하며 먹고 싶은 간식을 사 먹었다고.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픈 게 나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가 엄마의 취향을 참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싫어하고 야채나 생선을 더 좋아하는 정도로만 알았지 어떤 날씨에는 뭐가 생각난다든지, 기분이 울적할 때는 어떤 음식이 위안이 되는지 등등. 나는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았다.

     

아마도 약 대신 간식을 사 먹던 어린 엄마에게는 취향이 있었을 것이다. 자라면서 여러 욕구를 억누르고 차마 표현하지 못하던 경험이 누적되어 엄마는 엄마의 취향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는 치즈를 좋아한다. 치즈가 들어간 음식인 피자와 파스타도 좋아하고 빵에 크림치즈를 발라서 먹는 것도 좋아한다. 최근 유일하게 좋아하는 치즈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 검사했는데 금지 식품 중 치즈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 하나 엄마가 좋아하는 기호식품이 있는데 그건 바로 커피이다. 엄마는 커피 향기도 무척 좋아하고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갱년기 증상이 시작되고 불면증이 생기면서 커피도 마시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 치즈가 금지 식품이라는 걸 보고 나는 “그러면 도대체 뭘 먹으래? 칼슘 섭취도 해야 하고 단백질도 필요한데 치즈도 못 먹게 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에게 ‘디카페인 커피’를 사다 주었다. “이거 마셔. 치즈도 못 먹는데 커피까지 참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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