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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경 Oct 28. 2022

이제는 이기적으로 사세요.

엄마는 체구가 작다. 작은 체구에 뼈대마저 얇으니 체력이 강하지 않다. 엄마가 살아오면서 해온 모든 일들은 엄마의 체력이라기보단 깡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깡으로 버티던 엄마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엄마는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고지혈증을 앓고 있는 엄마는 내심 불안해했다. 작년(2020년)에 건강 검진하면서 뇌 MRI를 찍어본 결과 아무 이상이 없어 머리가 아파도 신경성이려니 하면서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올해(2022년) 건강검진을 받을 때도 뇌 MRI를 찍었다. 지난번 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검사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거의 잊고 지냈다.

     

어느 날 엄마는 “뇌동맥류가 있다고 하는데 꼭 재검사받아야 할까?”라고 물었고 나는 검사결과지를 자세히 보았다. 뇌혈관에 뇌동맥류로 의심되니 재검사하라는 소견이 있었고 나는 바로 동생에게 알렸다. 동생은 검사받았던 병원으로 연락해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나는 진료 분야 중 제일 뛰어난 의사가 있는 병원에 가장 이른 날짜로 예약했다. 다행히 일주일 후로 예약했지만 나는 내심 불안했다. 그 일주일 동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서.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엄마의 증상에 대해 알아보는 방법은 인터넷 검색이 유일했다. 여러 증상에 대한 설명과 시술과 수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는 최대한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자꾸 그려졌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었다.

     

일주일 후 의사를 만나고 온 엄마는 코일 시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심란해하는 엄마에게 내가 걱정을 더 할 수는 없었다.

     

“그거 드라마에서 많이 봤어. 별거 아니야. 약물을 주입해서 혈관 따라서 잘 가는지 보는 거야. MRI에서 꽈리처럼 보여도 막상 코일 하면 아니라고 나오기도 해. 괜찮을 거야.”

     

나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심정이었다. 저 말을 할 때 내 표정을 알 수 없어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시술은 잠깐 하는 게 아니었다. 아침에 입원해서 시술하고 하루 입원하며 경과를 보고 퇴원을 결정할 수 있었다. 엄마와 병원에 가는 동안 다른 화제를 찾아야 했다. 마침 그 병원에 내가 어렸을 때 시력검사받으러 다니던 병원이었다. 나는 군산에 살지만, 눈이 아주 나빠 전주에 있는 병원에 다녔었다. 그때는 승용차로 병원에 다니지 못해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전주까지 직행버스를 타고 병원까지 다시 걸어야만 했다. 그 당시 엄마와 우리 자매는 멀미를 심하게 했다. 병원에는 꽤 여러 번 다녔기에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막상 병원에 도착하자 엄마가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혈압과 몸무게 등을 측정하고 병상을 배정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엄마는 너무 작게 느껴졌다. 엄마의 침대 머리 벽면 위쪽에 이름과 나이가 적혀있는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엄마의 나이가 너무 낯설었다. 내 기억에 엄마는 항상 60대에서 나이가 멈춰있다.

     

곧 의료진이 코일 시술에 관해 설명해 주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아주 달랐다. 정확히는 코일 색전술이라고 하며 시술 부작용으로는 동맥류 파열도 일어날 수 있지만 드문 경우라고 했다. 설명을 듣는 우리 표정이 심각해졌는지 그 병원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안심시켜주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내 불안을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많이 긴장한 엄마는 시술 전 우유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일 때문에 군산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떠나지 않았고 시술 후 아파할 엄마 모습이 계속 그려졌다.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동생 전화를 받기 전까지 계속해서. 다행히 MRI 상에서 나온 것처럼 꽤 큰 크기의 꽈리는 없었고 대신 의심 증상이 있으니 일 년에 한 번씩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의료진이 코일 색전술에 관해 설명해줄 때 시술이 끝나고 바로 지혈해야 하는데 지혈을 도와주는 주사가 있다고 했다. 의료보험 적용 비율이 낮아서 비용이 좀 추가되는데 괜찮겠냐고 묻는데 엄마는 바로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 뇌혈관이 금방이라도 터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조차도 엄마는 비용 절감을 하려고 했다. 엄마는 항상 아니 평생 그랬다. 자신을 위해서는 결코 돈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사치품도 아닌 의료비에도.

     

이번 계기로 나는 엄마가 좀 이기적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젊어서는 아이 셋을 키우느라 못 다니고 지금은 아파서 못 다닌다. 거리가 좀 떨어진 곳은 차로 이동하는 것도 힘들어한다. 건강을 잃고 나면 모아둔 재산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나는 엄마가 걱정하는 미래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엄마는 아직도 다 자란 엄마의 아이들을 걱정한다. 이제 그 아이들은 모두 자랐고 성인이다. 엄마가 살아낸 인생만큼 격정적으로는 살지 못하겠지만 이제는 그만 걱정하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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