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 들면서 성격이 느긋해지고 무덤덤해지고 조금은 참을성도 강해졌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릴 땐 여름이 싫었다. 일단 끔찍한 더위가 싫었지만 여름마다 가족 여행도 그리 좋지 않았었다. 그 당시 아빠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휴가기간 내내 숙소를 잡아두고 직원들이 순서를 정해서 사용했는데 그 장소는 항상 해수욕장이었다. 바닷물 속에서 노는 건 좋았지만 모래사장은 그렇지 않았다. 발에 닿는 까슬까슬한 느낌도 싫었고 아무리 씻어도 모래는 방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여름이 싫은 두 번째 이유는 장마철이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벌레는 있지만 여름에는 그 개수가 아주 많이 증가한다. 벌레가 그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산다면 딱히 내가 벌레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문제가 되는 벌레는 내가 사는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들이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발이 많이 달린 벌레는 습한 곳을 좋아해서 장마철에 자주 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해마다 여러 마리가 나왔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지만 시부모님 집에서 가끔 마주친다. 시부모님 집에서 자야 할 때는 도착하자마자 제습기를 가동하고 방에 짐을 꺼낸다.
거미도 여름에 더 활발하게 집을 짓는다. 특히 밤에 걷다가 맨 살에 감기는 거미줄은 완벽하게 떨어지지 않고 어디 한 군데에는 꼭 남아있다. 거미가 붙지 않은 것에 안심하며 거미줄을 떼어내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다. 비 오기 전날에는 날타리도 한 몫한다. 날타리가 코나 입에 들어갈까 봐 숨을 참고 말을 아낀다. 아주 아주 예전에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 운전면허학원에 같이 다닌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우리는 더위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학원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둘이서 걸어 다녔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날타리가 입에도 코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나이가 아주 많아진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다. 여름에 여러 가전제품의 힘을 빌어 덥지도 습하지도 않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극복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것은 '초파리'이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순 없지만 내가 세울 가설이 있다. 내 근처의 초파리는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다. 종족을 보존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꼭 한 마리만 주위를 빙빙 돈다. 파리나 모기보다 초파리를 잡는 건 조금 힘들지만 간혹 손뼉 치기로 잡을 때가 있다. 초파리는 죽음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복제한다. 분명 한 마리만 있었고 내가 그것을 잡았는데 잠시 후에 또 한 마리의 초파리가 내 주위를 빙빙 돈다. 올해 여름의 가장 큰 적은 초파리이다.
작년까지는 초파리를 방지하려고 쓰레기통에 에프킬라를 많이 뿌렸다. 하지만 올해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해마다 더위와 추위가 양극화되고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이젠 우리나라도 장마가 사라지고 우기가 온다고 했다. 살충제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도 나쁠 것 같았다. 반드시 필요한 것만 제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다.
음식을 요리할 때 방식을 조금 바꿨다. 나는 손도 느리고 요리에 큰 재능이 없기에 윗대의 요리솜씨는 전수받지 못했다. 대신 시대에 맞게 검색엔진을 주로 사용한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요리법을 검색하고 그중에서 가장 간단한 방법을 선택한다. 요리과정을 하나하나 보면서 따라 해야 하니 옆에 보조가 없는 이상 주방은 난장판이 된다. 나는 셰프가 아니어서 보조가 없다. 잘하지 못하니 요리를 하고 나면 정말 피곤하다. 뒤처리까지는 역부족이다. 설거지와 주방정리는 다음 요리 전으로 미루는 게 일상이었다.
올여름부터 조금 바뀌었다. 요리 재료를 손질하면서 주방세제 없이도 씻을 수 있는 조리도구를 바로바로 세척한다. 음식 쓰레기도 모으지 않고 조금씩 생길 때마다 통에 바로바로 넣는다. 그랬더니 요리가 끝나고 주방이 꽤 깔끔했다. 주방세제를 써야 하는 도구들을 씻고 나면 주방은 새 주방이 되었다. 과일을 먹고 나서도 개수대에 그릇을 내려두지 않고 바로 물로 씻어 엎어두었더니 영원히 자신을 복제할 것 같던 초파리가 생기기 않았다.
여기에는 비법이 조금 필요한데 음식 쓰레기는 그때그때 버리지 못하니 단 맛이 강한 과일 껍질은 밀폐통에 넣고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 방법으로 아직 우리 집에 초파리가 생기지 않았다. 그때그때 설거지하면서 요리하라는 방법은 친정엄마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나에게 그것은 충고나 가르침이 아닌 잔소리였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생각하니 행동에 옮길 수 있었고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돌을 밀고 올라가야 했던 시시포스에게서 배웠다. 뭐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뭐 백세 시대에 아직 절반도 살지 않았는데 이만하면 일찍 깨달은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