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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경 Oct 20. 2023

새 충전기가 필요해

40대 직장맘의 자가충전

육아하던 시절 밤중수유가 끝나고 아기들이 통잠을 자면서 나에게 여유로운 밤 시간이 생겼다. 여유가 없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나는 꽤 지쳐있었다. 가까이 살던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컸지만 내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니 당연하게도 내 역할이 가장 많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그 당시 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표정, 몸짓에서 위로를 받았고 재충전되고 있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밤에 여유시간이 생기자 뭔가가 부족했다.


아이들이 없던 신혼시절에 남편과 나는 당연하지만 자유로운 밤 시간을 보냈었다. 드라이브하고 싶어지면 새벽 2시에도 나갔었고 밤새 이야기하다가 새벽 6시에 산책하고 아침이 되어 잠들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올빼미 족이어서 시차마저 완벽했다. 비디오대여점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다 영화도 봤었다. 나중에는 DVD로도 보았다. 지금이야 아이들을 동반하고 떠나는 여행이므로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때 우리는 갈아입을 속옷만 챙겨서 금요일 밤에 떠났다가 일요일 오후에 일상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꿈같은 나날들이었다.


늘어난 밤 시간에 할 일을 찾던 우리 부부는 예전처럼 영화를 보기로 했다. 여러 선택지에서 고른 게 아니라 그게 최선이자 단 하나의 선택지였다. 영화관에서는 영화 보는 중에 팝콘과 콜라는 주로 먹지만 집에서의 우리는 과자와 커피를 먹는다. 이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때 과자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 있다. 부드러운 쿠키 종류는 안 된다. 깜깜한 상태로 영화를 보니 먹기에 복잡하거나 다양한, 예를 들어 소스를 찍어먹는 과자도 안 되었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과자는 바로 봉지과자이다. 일단 봉지과자는 바삭바삭하다. 이 바삭함이 한 조각을 먹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이때 가장 많이 먹은 과자는 양파링과 새우깡이었다. 과자가 느끼해질 즈음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나에게는 완벽한 궁합이다. 이런 나날들이 지속되자 나는 충족감을 느꼈고 다음날 기쁜 마음으로 육아를 계속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은 양면의 날이 있고 뭔가가 충족되고 있던 시절 나도 모르게 서서히 부작용이 찾아왔다. 아가들이 걸음마를 시작하자 내 활동량도 덩달아 증가했다. 아마도 그 당시에 만보계를 착용했더라면 상상을 초월할 걸음수가 나왔을 것이다. 아가들이 유아가 되고 어린이가 되자 내 활동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행동대신 말로 육아가 가능해지자 나는 그때서야 부작용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며 바삭바삭 먹던 과자가 어느덧 루틴이 되어 책을 읽으면서도 TV를 보면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먹는 간식이 되었다. 서서히 찾아온 부작용은 하루에 약 2.74g씩 증가한 몸무게이다. 손으로 들어도 체감할 수 없는 이 무게는 서서히 찾아왔기에 알아차릴 방도가 없었다.


쌍둥이를 임신하면 여러 고난이 생긴다. 입덧, 몸무게 증가, 임신성당뇨 등등. 나는 노산이어서 더 주의해야 했는데 그리 건강체질도 아닌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입덧은 조금 심했지만 개월 수가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레 사라졌다. 다른 쌍둥이 임산부들은 병원에 갈 때마다 몸무게 체크를 하고 식단 조절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를 담당한 의사는 몸무게에 대해 단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의사의 언급이 있었다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당뇨검사를 하기 전날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나는 아무런 식단조절을 하지 않았다. 임신 기간 동안 내 몸무게는 앞자리가 무려 3번이나 바뀌었다. 나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배가 혹시 터질지 몰라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었다. 임신으로 배가 터진 임산부가 없다는 검색결과에 안심하며 마음껏 먹었었다. 출산 후에는 따로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었다. 육아가 다이어트 그 자체였기에. 내 몸무게는 임신 전으로 돌아왔지만 체지방은 더 줄어들어 임신 전 옷들이 헐렁할 정도였다.


안심을 한 탓도 있지만 그 시기의 나는 내 체형이나 옷차림에 전혀 신경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아기들을 건강하게 예쁘게 하기에만 충실했다. 그러니 더더욱  2.74g을 느낄 수는 없었다. 부작용은 계속되었고 아가, 유아, 어린이 시절을 거쳐 청소년이 된 아이들은 현재 16살이다. 아이들이 5~6살 무렵부터 이 부작용이 시작되었고 내 옷차림은 그에 따라 변했다. 루즈핏 옷들이 슬림핏이 되었고, 사이즈가 하나 커졌다. 이때까지도 나는 무감각했다. 아니 '아가씨도 아닌데 실루엣이 예뻐야 할 필요는 없잖아.'라는 나름의 합리화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덤덤한 성격의 나는 40대가 되었을 때에도 큰 감정의 변화를 겪지는 않았다. 그 중반이 되었을 때에는 달랐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연스레 나를 돌아볼 시간이 늘었고 내 신체는 이미 많이 변화되어 있었다. 그동안 나를 충전시켰던 충전기는 더 이상 나에게 맞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종류의 충전기가 필요했다. 질량이나 부피를 늘리는 것 말고 질적으로 나를 충전해 줄 것이 필요했다. 그게 무엇일지 한동안 생각했지만 '이것이다.'라고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매일 저녁 얼굴에 마스크 팩을 붙이기도 해 보았고, 여러 구독 서비스를 이용해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더 이상 어리지 않기에 여유시간은 꼭 한밤중이 아니어도 되는데 나는 밤중에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잠자는 자세가 안 좋았던지 허리가 아팠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는 나도 운동의 필요성을 알고 있기에 운동자세를 알려주는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는데 아침마다 알림이 온다. 평소에는 알림을 가볍게 무시하는데 그날은 허리가 아파서였는지 휴대전화에 창을 띄워놓고 스트레칭을 따라 했다. 그리 힘들지 않은 움직임에 가볍게 땀이 났고 허리는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내려오는 내 몸이 여느 날과는 달랐다. 몸살은 아닌데 몸 구석구석이 아팠다. 근육통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서 잊고 있던 고통이었다. 그것은 몇 해만에 만난 오랜 친구처럼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몸이 깨어 있는 느낌에 절로 활기찬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습관적으로 영화앱을 뒤적이고 있던 나는 ‘그래, 꼭 쉬어야만 충전이 되는 건 아니지. 오늘 같은 느낌을 매일 가지고 있다면 그 활력도 계속 유지될 거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 충전기는 ‘스트레칭(운동)’이다. 이 충전기가 제대로 된 충전기이기를 바라며 반드시 규칙적으로 사용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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