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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 終活(しゅうかつ)슈우카츠

2021년이 가기 전 しゅうかつ [就活] 취직을 마치고 12월 1일부터 새로운 학교에 나가기 시작 한 게

벌써 이주가 되어 간다.


남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나는 취업을 해서 매일매일이 새로운 기분이라

지금까지 살아왔던 12월과는 전혀 다른 12월을 살고 있다.


체로키족 인디언 달력으로 보면 12월은 말을 아끼고 한 해를 뒤돌아 보라는 의미로 '침묵하는 달'인데

나는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다보니 원래도 많은 말이 더 많아졌다.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달을 우리나라에서는 3월로 치지만 일본의 새학기는 4월에 시작된다.

3월에 졸업식을 하고 4월에 입학을 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입사 시기도 대부분 4월 1일자가 된다.


취업 활동을 하는 것을 일본어로 就活(しゅうかつ) 슈우 카츠라고 한다고 지난 번 브런치에 썼었다.

한자의 活(かつ)카츠를 붙여서 만들어진 조어들은 일본어에 많이 있다.


대표적인것이 ぶかつ (部活) "부카츠"활동이다.

일드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일본어 단어

우리나라의 동아리 활동이 일본에서는 ぶかつ (部活) "부카츠"활동이다.


부카츠만 있는 게 아니라 결혼을 준비하는 할동은 혼활(こんかつ) "콘카츠"라 하고


이혼에 돌입하는 활동은 りかつ(離活) 리카츠, 취직 준비는 就活 슈우카츠

울고 싶은 사람들이  만든 涙活・るいかつ・루이카츠도 있다.


대부분의 かつ(活) 카츠는 한 발 앞의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행해지는 진취적인 것들에게

붙여져서 만들어지는 조어다.

終活(しゅうかつ)슈우카츠만 빼고




終活(しゅうかつ) 슈우카츠란, 노인들이 생전에 장례식이나 묘, 상속등 사후 대책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말한다.


就活(しゅうかつ)슈우카츠와, 終活(しゅうかつ)슈우카츠는 한자만 다를 뿐 발음은 같다.

며느리가 就活(しゅうかつ) 슈우 카츠중이었을 때 시아버지는 終活(しゅうかつ) 슈우카츠중이셨다.


김장하러 내려 갔을 때, 미리 가 있던 남편을 데리고 사진으로 찍어 온 납골묘를 보여 주셨다.

"열려라 참깨" 하면서 옆으로 밀어야 될 것 같은 커다란 돌상자 안에 작은 유골함 20기 이상이 들어가는

가족 납골묘였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고 특별히 아프신 곳은 없지만 그렇다고 안아픈곳도 없으신게 지금 아버님의

건강상태라서 준비를 미리 해두시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아버님 어머님만 모시는 납골묘가 아니라 사이즈가 큰 가족 납골묘라는게 문제였다.

남편은 아들이라 사실 아무 생각없이 납골묘를 보고 왔지만

나는 가족이 함께 들어가게 끔 만들어져 있는 납골묘를 보고 발끈했다.


"아버님, 저는 여기 함께 들어가기 싫어요"

"뭐시라고, 너 시방 무슨 소리허냐"


납골묘 이야기는 시아버지가 시작하셨으나 내가 싫다고하자 듣고 계시던 시어머니가 언성을 높이셨다.

"그럼 너는 어디로 갈래"


시어머니 그말씀에 갑자기 죽음의 매장 방식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시험 보기 전에 감독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책상위에 있는 책 다 집어넣으세요"라고 말했을 때

책 집어넣으면서 잠깐의 순간에 책 한 권이 머릿속에서 지나가는 것처럼 시어머니 대답에

어떤 말을 해야 되나 그때 내가 그랬다.


한번도 생각해보지않았던, 나의 죽음의 방식이라니

就活(しゅうかつ) 슈우카츠도 안돼서 여기저기 찍고 다니는 판이었는데 영원한 끝을 맺는

終活(しゅうかつ) 슈우카츠활동에 강제 참여했던 시댁에서의 100분토론 같았던 5분 토론의

시간, 외모는 손석희가 아니지만 진행 방식이 손석희같았던 남편만 아니었다면

나는 시아버지가 아닌 시어머니와 링 위에서 한판 붙고 나가 떨어졌을지 모른다.


"아직 어떻게 할지 확실히 결정난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당신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다른 가족들도 이런 방식에 찬성할지 어떨지 모를 일이니 설에 모여서 이야기하자"

우리집 손석희 님의 진행으로 잠깐이지만 살벌한 말이 오고 갔던 시댁 5분 토론은 끝이 났다.


토론 막판에 까지 나는 내 의견을 말했다.

"아버님, 저는 그 곳에 함께 들어가기 싫어요. 제 죽음의 방식은 제가 결정할거예요"


권투 시합에서 종이 땡치기전 헛주먹이라도 공중에 날리는 복서처럼 말의 펀치를 날리고

끝이 난 終活(しゅうかつ) 슈우카츠 5분 토론은 아마 시아버지에게도 시어머니에게도

함께 묻히길 싫어하는 큰며느리의 고분고분하지 못한 태도로 강제 판정패당한 기분이셨을지 모른다.


"너는 그럼 어디로 갈래"라고 화가 나서 말씀하셨던 시어머니께 "저는 천주교 공원 묘지에 묻힐겁니다"

그런 생각 해 본 적도 없었는데 시어른들과 함께 매장되기 싫었기 때문에 그냥 튀어나온 소리였다.


순장을 강요하셨던 것도 아니고 죽은 다음의 방식을 선택하라고 하신 거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사지선다도 아닌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풀라고 주신 것과 같았고

시어른들 입장에서는 가족으로 생각했는데 며느리는 자식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났을지 모를

서로에게 상처뿐인 5분 토론이었지만 강제로 소환되어서 생각해본 나의

終活(しゅうかつ) 슈우카츠에서 내린 것은 수목장이었다.


나무 아래 묻혀서 아이들이 와서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놓고 "우리 엄마 글쓰는거 좋아했지"

"브런치에 글도 쓰고 블로그도 했잖아" "우리 엄마 보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삼남매가 오손도손 이야기이 하는 걸 나무 아래에서 듣고 있고 싶다.


제사도 필요없고, 성당에 연미사 봉헌해서 각자의 배우자들에게 부담주지 말고

삼남매만 모여서 연미사드려주고 따뜻한 사케 한 잔에 초밥을 먹으면서 자기들 사는 이야기도 하고

잠시지만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수민이는 새우초밥만 먹는 짧은 입맛이니 새우초밥만 시켜주고, 은진이는 연어를 좋아하니 연어를 먹고

승범이는 동생들 밥값 정도는 부담없이 내줄수 있는 오빠가 되어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가 죽은 날이

세 아이에게는 잔칫날처럼 설레는 날이 되었으면


버님때문에 생각해본 終活(しゅうかつ) 슈우카츠였지만

그사이에 나는 就活(しゅうかつ) 슈우카츠에 성공했고

終活(しゅうかつ) 슈우카츠는 생각의 서랍에 넣어두었다.


발칙한 며느리때문에 시부모님도 이대로 죽을순 없다는 오기가 생겨서 오래 사실 것 같다.

나같아도 나같은 며느리가 있다면 누웠다가도 이불 한 번 차고 일어날 것 같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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