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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an 06. 2020

선풍기는 정말 한국인을 죽였을까?

내가 20살이 훌쩍 넘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가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사실이었는데, 그건 우연히 딴 나라에서 살다온 친구가 질문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외국인 친구들 중에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근데 한국 사람들은 진짜 선풍기 바람으로 사람이 죽는다고 믿어?"

'이런 것들은 어디서 듣는 것일까?'라는 궁금함도 들고, '그게 그렇게 알고 싶은 일일까?'라는 궁금도 들었다.

"믿지. 그렇게 들었어."라고 나는 답했다.

물론 나는 늘 선풍기를 사용해 왔지만, 아직까지 다행히도 멀쩡히 살아있다. 그러나 잠을 잘 때, 선풍기를 켜 놓고 잤다가 봉변을 당한 어떤 가족의 비극사를 종종 뉴스를 통해서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의사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는 "수면 중의 선풍기 사용은 사람의 체온을 낮춰 저체온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거나, 사람의 호흡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선풍기에는 꼭 타이머가 있는 것일까? 선풍기가 우리를 죽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그건 내가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지금은 그런 뉴스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누구도 그게 틀린 말이라고 고쳐 말해주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 또한 왜 그런 뉴스가 사라졌는지에 대한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 믿음에 대한 대답에 외국인 친구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물었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사실을 믿을 수 있어?"

 

믿음, 그건 종교에서 온 가치관의 믿음일 수도 있고,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 사실일 수도 있다. 혹은 특정 개인에 대한 감정의 문제일 수도 있다. 물론 감정에 기반한 믿음도 분명, 그 사람이 내게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을 분석해 판단한 것이기에 그렇게 편파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과학적 사실, 종교의 가치관도 언제나 변해왔다. 사람 또한 세월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온전하게 믿어 의심치 않을 일이란 없을지도 모르겠다.

믿음, 어떤 일을 반복해서 계속 듣게 되면 사실에 가깝게 믿어진다. 나는 선풍기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반복해서 들어왔고 그걸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무슨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 전혀 사실이 아닌 일도 사실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굳이 이걸 세뇌라고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왜 그런 거짓 말이 사실이 되었을까? 왜 우리는 선풍기가 사람을 죽인다고 믿었을까? 왜 그런 믿음이 필요했을까? 물론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전기를 아껴 쓰자는 국가차원의 효과적인 캠페인으로 귀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얼마나 쉬운가? 사람을 속이는 일이란... 누군가를 믿게 만드는 일이란...'

여전히 나는 "정말 한국사람들은 선풍기가 사람을 죽인(Fan Death)다고 믿니?'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리고 난 '그렇게 믿었지...'라고 이제는 답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사실 중에 진짜인 것은 몇이나 될까? 가짜가 진짜가 되는 일은 얼마나 손쉽고 용이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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