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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Love and.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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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Feb 28. 2018

넌 그냥 "HATER"

눈 오는 북유럽

2월도 다 지나가는 마당에, 스웨덴에는 눈이 왔다. 기온이 마이너스 13도를 내려가고 있다. 

노르웨이 속담 중에, "안 좋은 날씨란 없다. 다만 안 좋은 옷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즉, 날씨가 춥다고 혹은 거지 깽깽이같이 비가 부슬부슬 온다고 불평하지 말고, 옷이나 단단히 잘 챙겨 입으란 말이다.

근데 진짜 오늘은 진짜 춥다. 온몸을 두꺼운 파카와 장갑, 목도리까지 무장하고 나왔지만 진짜 길 가다가 동사하는 줄 알았다.
아직 내가 쓰는 방이 준비가 되지 않아, 한동안 친구네 집, 온돌도 없이 차가운 바닥에 매트리스를 추가로 깔고 지내고 있는데, 모든 게 춥다. 미얀마와 태국의 따스한 날씨가 그렇게 싫었는데, 또 반대의 기후로 날아왔더니 이건 또 싫다.

언젠가 친구랑 스웨덴 욕을 한 바가지 하면서 스웨덴에서의 삶을 투정 부린 적이 있다. (사실 늘 하는 짓거리다.)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놈들이 사는 곳이 스웨덴이라고 했고, 더 이상은 스웨덴에서 살지 못할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곧 미국으로 날아가려고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그러다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야. 넌 그냥 hater야, 세상 모든 걸 싫어하잖아."
그 친구가 한국에 살 때는 한국이 그렇게 싫었고, 영국에서 살 때는 영국이 그렇게 싫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스웨덴이 싫다고 하는 것이다.
"너 미국 가봐라, 너 금방 거기도 싫어지고 저주할걸..."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과 가진 것에 투정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워한다는 건은, 지나간 것에 대한 혹은 우리가 예전에는 소유했지만 더는 소유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지나간 내 젊음도 이제는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고, 지나간 즐거웠던 시간도 이제는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시간에 우리는 늘 즐겁기만 했고 걱정이 없기만 했을까? 
반대로, 지금의 어려움은 후에 또 어떤 형태의 어느 정도의 그리움으로 변해 있을지를 생각하면 참 재미있어진다.

얼마 전 미얀마에서, 태국에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더위에 금방 지치는 게 싫었다. 지금은 추위 때문에 눈 때문에 집 밖을 나가면 바짓가랑이며 옷이 살얼음으로 변해 버리기에 어딜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지내고 있는 게 싫다. 
미얀마와 태국은 이젠 그리운 기억으로 남았고, 이 북유럽의 추위도 지금은 싫지만, 언젠가는 아쉬운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기에 오늘 꾸역꾸역 사진기를 들고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었다.

그나저나, 눈은 따뜻한 방 안에서 창밖으로 바라볼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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