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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Love and.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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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ul 12. 2018

지속 가능한 연인

존재하지 않는 사랑의 퍼펙션

주제에 걸맞지 않게 가끔 연인들의 관계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 그러니까 나는 내 주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살고 싶지만, 가끔 우울해진 사람들은 아무나 부여잡고 하소연을 하고 싶어 진다. 그리고 그 아무나가 가끔 내가 되는 것이다. 주변에서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만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치 소파에 놓여 있는 쿠션처럼 말이다. 언제든지 잡아 들고 등에 기댈 수 있는 손쉬운 존재, 그런 내가 그들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함과 우울함을 들어준다.

어느 날, 한 여자인 친구가 말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말을 한참 동안 쏟아내다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넌 이야기만 듣고 있냐?"

내가 말했다.

"야, 너 솔직히 말해봐. 내 조언이 필요해? 그게 아니라, 그냥 네 불평불만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잖아."

친구가 말했다.

"그건, 그래..."


사랑, 죽었다 깨어나도 그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끔은 증오와 미움이 사랑과 섞여 있기도 하고, 익숙함이 사랑의 존재를 희석시키기도 한다. 세상에 과연 지속 가능한 사랑은 존재하는 걸까? 

"아, 잊지 마세요. 우리의 그분은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고 계시니까요."

제발 이런 말은 하지 말길. 당신의 그분도 쉽게 증오와 벌을 내리시니까. 하다못해 지옥까지 만들어 놓지 않았나.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것도 못된다. 사랑이 퍼펙트해야 한다는 생각만 고쳐 먹으면 되니까 말이다. 가끔 늦게 까지 결혼을 안 한 자녀를 둔 늙어가는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아무나 잡고 결혼해, 남자(혹은 여자) 거기서 거기야. 뭐 특별할 거 같니? 살다 보면 다 똑같아. 그리고 그 외모,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 결혼하고 몇 년만 지나 봐라 그 잘난 얼굴 금방 다 사라져."

어렸을 땐,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나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나이가 들고 보니 이 말이 그렇게 논리적일 수 없다. 왜냐면 사람은 정말 거기서 거기기 때문이다. 사랑에 퍼펙션은 없다. 사람에게 퍼펙션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계에서 퍼펙션을 기대할 수도 없다.


얼굴 잘 난 놈은 자기가 잘 생겼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얼굴값을 한다. 돈 많고, 성격 좋고, 집안 빵빵하고, 나한테 열정적이고, 똑똑하고, 가정적인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나? 그건 인스타그램에서 '하는 척'하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구적 인물에 불가하다. 아무리 잘난 놈들도 방귀를 시도 때도 없이 배출해야 하고, 멍청한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그런 구멍 많은 인간들이 좋다. 뭔가 샤프하고 늘 완벽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애들을 보면 조금 밥 맛이 떨어진다.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이 부러운 것도 있으나, 왠지 인간미가 확 떨어지는 인간들이다. 저런 놈들은 화장실에 앉아서 똥을 닦는 화장지도 가지런히 접어서 닦을 놈들이 분명하다. 


늘 미인들을 끼고 파티를 즐기는 친구 놈 하나는 늘 외롭다고 투정 부린다. 나는 그에게 묻는다.

"그 많은 파티와 그 활짝 웃는 미소는 뭔데?"

때로 우리는 화려함과 즐거움으로 우리의 우울함을 감춘다. 겁에 질린 개가 끊임없이 짖어대는 것처럼, 겁에 질린 사람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처럼. 


다만,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망설이는 것은, 그 퍼펙션에 가까운 사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며, 아직 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나는 곧 그런 사람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 지금의 연인보다 조금 더 한 발자국 퍼펙션에 가까운 존재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우리를 망설이게 하며, 우리의 현재 관계를 위태롭게 만든다. 



내가 아는 한 중국인 결혼한 여성은 밥을 먹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사실, 지금 남편과 결혼한 걸 후회 해. 나보다 돈을 더 못 벌어. 난 진짜 의사와 결혼하고 싶어. 만약 의사를 만난다면 지금 남편과 이혼할래."

뭐 솔직히, 그녀의 그런 후회가 조금 놀랍기는 하나, 그렇다고 비난을 할 생각은 없다. 자신의 가치가 그렇다는데 뭘 어찌하겠는가. 그녀가 조금 더 돈에 가치를 두고 있을 수도 있고,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성에 대한 페티쉬일지 누가 알겠는가?


또 내가 아는 다른 중국인 여성인 친구는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고 난 뒤에 열심히 설거지 중인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와, 너 정말 다정한 남자구나."

그러나 그녀는 차를 마시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남자는 착하면 안 돼. 나쁜 남자에다 얼굴은 잘 생겨야 하고, 나이는 나보다 어려야 해."

그래서 내가 말했다.

"딱 그런 남자 만나서 호되게 진탕 당해봐야, 네가 아.. 다음엔 착한 남자를 만나야지,라고 생각하게 될 거야."



사랑, 사랑, 사랑.

그들이 찾는 지속 가능한 사랑은 어디에 존재할까?


내가 아는 동생은 이런 말을 했다.

"헤어지고 나니,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알겠어요. 어떻게 이 이별의 아픔을 잊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 그런 방법은 없다. 그저, 그 상실의 아픔이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을 시간을 나에게 허락하는 수 밖에는. 그렇게 온몸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몇 년을 사랑했는데, 헤어지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게 비정상적인 게 아닐까? 


그 사람과 연인일 때는 그 사람이 가지지 못한 매력을 갈구하고, 그 사랑이 끝나 연인이 나를 떠나면 왜 우리는 그 연인의 자리 없음의 상실을 우울해할까? 늘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사랑을 방해한다. 지금 내 옆에서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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