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58)
어김없이 문승협가정에 추석이 찾아왔다. 사흘 전 할아버지 문재환과 할머니 박옥춘이 오고, 추석 전날 서울과 부산서 작은아버지가족들이 도착했다. 추석날아침 처갓집을 먼저 들린 포항작은아버지가 가족을 앞세워 들이닥쳤다. 문승협은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 반가우면서도, 이번 추석에는 또 어떤 일로 옥신각신할지 불안 불안하였다. 예정된 진외가할아버지 태선화학 박동후회장집과 본가큰집을 다녀왔다.
문승협의 우려와 달리 명절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저녁 무렵 결혼 후 처갓집에 처음 방문한 작은 고모내외 영향이 컸다. 뒤이어 당도한 큰고모내외도 한몫하였다. 술을 즐겨하는 서울작은아버지 문경빈주도로 식사와 반주가 곁들여졌다. 한미은행에 다니는 큰 고모부 이민현은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선경종합건설에 다니는 작은 고모부 윤중일도 반겼다.
반주로는 부족했는지, 식사가 끝난 후 술상이 다시 차려졌다. 남자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화투를 쳤다. 여자들은 둘러앉아 과일과 식혜를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눴다. 새댁 문희경이 시댁명절음식을 장만하다 겪은 일들을 푸념하였다. 종갓집맏며느리인 언니 문희숙에게 동정과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박옥춘은 딸들이 시집살이당한다는 생각에 연신 한숨지었다. 둘째 며느리 윤옥희가 고소한 마냥 몰래 피식거렸다. 박옥춘이 분에 못 이겨 두 사돈댁을 향해 험담하자, 네 명의 며느리들은 동시에 입술을 샐쭉댔다.
“아가씨, 고생이야 되겄지만 그래도 참고 살아야죠.”
“아따, 남일이라고 암시랑토 않게 말하요잉.”
“남일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 하는 말이요.”
“음마, 내가 명절음식하믄서 니한테 뭐라 하디?”
“실수하믄 눈치 주고, 마음에 안 들믄 타박하시잖아요.”
“아니 시엄씨가 그 정도도 못한대?”
“아가씨, 아가씨 시댁은 대놓고 막 뭐라 하요?”
“우리 시댁이 양반 가문이라고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갔는디, 어디 대놓고야 하겄소?”
“오매, 우리 시어머니도 양반 가문인디?”
“호호호.”
“아야 그라믄, 내가 낳은 딸들이 시집살이 당한단디, 엄씨가 돼 갖고 말도 못 한다냐?”
“어머니, 아가씨가 어머니한테 귀한 딸이듯이, 저도 저희 엄마한테는 소중한 딸이에요.”
“어이 서울동서, 인자 그만하소.”
맏며느리 이항리가 바로 아랫동서 윤옥희를 말렸다. 셋째 며느리 정영숙과 막내며느리 김진경은 듣고 있거나 웃기만 할 뿐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윤옥희는 과묵한 성격이나 가끔 입바른 소리를 했다. 대체로 틀린 말이 아니어서 다들 반론을 못하였다.
“할 말은 형님이 많을 것인디, 제가 괜한 소릴 했네요.”
“뭣아, 뭔 할 말이 많다고 그라냐?”
“아니에요 어머니, 서울동서가 그냥 한 소리예요.”
“해봐, 할 말 있으믄 해보라고, 언능 해보란께?”
“어머님요, 역정 내지 마이소.”
“어허, 내가 뭔 역정을 냈다고 그라냐?”
분위기가 복잡 미묘해진 순간, 문재환이 식혜를 찾았다. 며느리들이 시아버지심부름을 명분 삼아 일제히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다들 사태가 나빠지는 게 두려웠다. 진짜 할 말이 많은 사람은 이항리였으나, 맏며느리로서 체통을 지키려 노력했다.
“동서 그만하소, 어머님이 무안하시겠네.”
“형님도 할 말은 하고 사쑈.”
“둘째 형님이 뭐라 한께, 어머님이 꼼짝 못 하네요잉.”
“맞는 말 하니까네, 두 애기씨들도 별말이 없네예.”
“그만하고, 식혜랑 한과랑, 과일도 좀 챙기세.”
“저그 나주배가 맛나다던디, 그걸로 깎으까요?”
“그러세, 어머님이 맛있다고 여러 번 칭찬하드만.”
이항리는 윤옥희발언에 내심 통쾌하였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뭔가 느끼길 기대했다.
문승협은 결혼식 때보다 좋아 보인 작은 고모표정에 안심하였지만, 큰고모는 염려됐다. 종갓집맏며느리인데 아직 아기가 생기지 않아 시댁눈치를 보는듯했다. 늦은 시간 고모들 부부가 시댁으로 가려 일어섰다. 배웅을 하고 환하게 비춘 황금만월을 바라보았다. 큰 소란 없이 명절이 지나가 다행스러웠다.
섣부른 속단이었다. 다음날 박옥춘이 집에 돌아갈 자식들 먹거리를 싸주면서 사달이 났다. 문승협이 노심초사 걱정한 가족 간 다툼은 어처구니없게도 과일 때문이었다.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허탈하였다.
작은 고모부 윤중일이 크고 달달한 나주배를 가져왔었다. 박옥춘이 어젯밤 딸들에게 두 개씩 추석이바지음식과 싸서 보낸 뒤 세어놓았다. 아침에 본인과 서울부산포항아들가족들까지 집에 가면서 먹게 두 개씩 쌀 참이었다. 분명 8개여야 할 나주배가 6개였다. 혼잣말하듯 이항리를 째려보며 짜증 냈다.
“아따 참말로, 내가 쓸라고 세어놨더만은 그걸 또 돌라갔네, 뭔 염병인가 몰라.”
“어머니, 배를 누가 훔쳐간다고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라믄, 여그서 이 배를 도둑질할 사람이 누구다냐?”
“그럼 제가 도둑질이라도 했다는 말씀이세요?”
“내가 아냐, 도둑질한 사람이 알겄제?”
“어머님 너무하세요 정말.”
“뭐가 너무해야, 내가 틀린 말 했냐?”
“엄마, 뭔 말을 그렇게 하요, 내가 어제밤에 두 개 가져다가 얘들이랑 깎아먹었소.”
“어허, 인자는 둘이 편 묵고 에미한테 덤비네잉.”
“아따 그깟 배 갖고 별소릴 다 듣네 진짜.”
“형까지 또 으째 그라요, 그냥 가만히 있으쑈 좀.”
“아야, 느그는 이해가 되냐, 배가 그렇게나 중해?”
“엄마가 새끼들 가믄서 먹으라고 싸다가, 부족한께 속상해서 한 소리그만 그라네.”
“음마? 부족하고 속상하믄 저렇게 막말해도 되냐?”
“아따 장남임스로, 그깟 일로 뭘 그러코롬 성질 내고 그라요, 하여튼 성질 하고는.”
“이 시끼들이 형한테 말하는 꼬라지 봐라. 썅노무시끼들, 너희 편할 때만 장남이냐?”
“시끄럽다, 그만들 따따부따해. 다들 먼 길 운전할 것인디, 언능 출발할 채비나 해.”
“아니 아부지, 그까짓 배 갖고 이래야 되겄소?”
“니도 그만해라, 좋게 헤어져도 시원찮을 판인디, 형제끼리 싸우고 이것이 뭔 짓이여?”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라요?”
“니가 장남인께 좀 참어.”
“와따 환장하겄그만잉.”
손주들이 싸늘해진 분위기에 놀라 눈치 보는 사이, 문재환이 아웅다웅하는 꼴을 보다 못해 나섰다. 문경준이 씩씩거리며 분을 삵이지 못했다.
문승협은 아버지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웠다. 평소에 자신은 주는 음식과 과일 외엔 일절 손대지 않았다. 먹고 싶으면 꼭 허락받았다. 부모 없이 할머니손에 자라면서 먹으라 마라 단속당해서였다. 국민학교시절 바나나를 하나 먹었다가 할머니에게 엄청 혼난 적이 있었다. 고모들 주려고 사놓은 건데 먹으면 어떡하냐고 호통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1학년 때 냉장고에 딸기를 몇 개 집어먹었더니, 아빠 주려고 남겨놓은 거라며 심하게 야단쳤다. 필요할 땐 장손장남을 찾으면서 먹거리로 구박하는 할머니와 엄마에게 마음 상한 이후, 내 것이 아니면 건들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다들 편치 않은 마음으로 갈채비를 하였다. 썰물처럼 빠져나가 각자 집으로 출발했다. 환송하고 돌아선 문승협가족도 편치 않았다. 어른 14명과 손주 10명의 대가족이 북적대다 떠나자, 5명이 남은 집안이 썰렁하였다. 문승협은 허전했으나 금세 평온을 찾았다. 다른 집들도 다 다툴 거라고 일반화시키며 위안 삼았다.
이항리가 남은 명절음식을 보려고 광주리들을 들췄다. 먹잘 것 없는 찌꺼기 정도였다. 나주배에 밀려 선택받지 못한 과일들이 자기 신세 같았다. 시어머니 억지전횡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을 남편에게 토로하였다. 문경준은 받아줄 아량이 없었다. 이것이 또 빌미가 되어 언성이 높아졌다.
문승협은 모른척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아빠의 싸우는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문득 미술시간에 배운 미술사가 떠올랐다. ‘폴세잔’과 한때 악처로 소문난 그의 아내 ‘마리오르탕스’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폴세잔을 후기인상파 중 가장 뛰어난 화가로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기억한다. 사과정물화로 친근하지만, 그가 그린 아내초상화는 알려지지 않았다. 오르탕스가 천재남편을 괴롭힌 악처로 손가락질받았으나, 사실 나쁜 건 세잔이었다.
당시 언제나 관객들이 붐비는 초상화가 있었다. ‘정말 못생긴 여자그림이네, 옆에 서면 누구라도 예뻐 보이겠어’. 그림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소문을 듣고 약속장소로 택한 여성들이었다. 그림 속 여성이 길쭉한 얼굴에 낯빛은 창백하며, 표정은 냉정하고 우울했다. 귀걸이나 팔찌 같은 장신구 없이 옷과 머리는 투박하였다. 자세와 분위기에서도 매력적인 곳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세잔은 평생 이런 식의 아내그림을 수십 차례 그렸다. 사람들이 수군댔다. ‘도대체 왜 저런 식으로 그린 거야. 오죽 아내가 싫으면 그랬겠냐’. 오르탕스가 딱히 반박하지 않아 정설로 굳어졌다.
세잔은 무척 까탈스러운 성격이었다. 법률가를 바라는 아버지뜻을 거스르고 화가가 됐다. 미술계인정을 받지 못하여 50대 전까지 아버지가 준 용돈으로 생활했다. 쉽지 않은 현실이 그를 더 꼬이게 하였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탁월한 작품을 그린 세잔성격이 왜 나쁜지 궁금했다. ‘낭비벽이 심한 아내가 괴롭혀서 그런 것 같아. 저 오르탕스가 무식하고 성격이 더럽데’. 제멋대로 결론 내렸다. 평상시 아내를 험담하고 다닌 세잔행동도 거들었다.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레모네이드만 좋아한다는 둥 경멸하였다. 세잔의 가족들과 친구들도 싫어했다. 돈 없는 평민출신이란 이유로 결혼문제가 얽혀 구박하였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 앞에서조차 무시했다. 오르탕스의 편이어야 할 세잔이 남의 편이었다.
오르탕스는 온갖 수모에도 세잔의 작품활동을 물심양면 뒷받침하였다. 29점이나 되는 초상화모델을 섰다. 세잔작품 중 차지한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모델 좀 서주는 게 무슨 대수냐겠지만, 세잔은 모델을 괴롭히는 화가로 악명 높았다. 한번 그렸다 하면 서너 시간은 기본이었다. 그림 하나를 위해 모델을 백번 넘게 부른 적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가만히 있으라며 불같이 화내서, 모델이 기절하거나 도망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렇다고 돈을 제대로 주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렸다. 이리저리 구성을 바꾸고 짜 맞춘 시행착오를 거치며, 원하는 이상적 구도와 묘사를 찾는 식이라 더뎠다. 사과처럼 앉아있을 모델이 극히 드물었다. 그 드문 모델이 오르탕스였다. 항상 초인적 인내심을 발휘하며 수없이 모델을 서줬다. 덕분에 세잔은 오르탕스를 소재로 온갖 시도를 거듭하며 연구할 수 있었다. 딱히 슬프고 못생기게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에 미친 사람답게 아내를 미술적 탐구대상으로만 봤을 뿐이다. 인간을 표현한 초상화성공에 결정적 도움을 주고 기여한 사람이 오르탕스였다. 세잔의 작품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작품외적으로도 오르탕스혼자 아들을 키워냈다. 잠들지 못하는 세잔에게 밤마다 몇 시간씩 책을 읽어주었다. 세잔의 미술계성공 후엔 돈과 관련된 작품관리∙전시회준비∙저작권문제 등을 도맡았다.
세잔이 불세출천재였던 것은 사실이나, 오르탕스가 없었다면 어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세잔을 돕는 일에 묵묵히 탁월하게 해냈으나, 세잔은 끝까지 고마움을 몰랐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혼자 빛날 순 없는 법. 누군가의 성공 뒤에는 언제나 뒷받침한 숨은 영웅들이 있기 마련. 오해와 자료부족 때문에 악처의 대명사로 기억된 오르탕스가 그러하였다.
세잔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두 사람관계가 나아지는듯했다. 세잔이 오르탕스에게 재산을 한 푼도 안 주겠다고 유언장을 작성한 뒤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다. 오르탕스가 바닥난 인내심에, 세잔이 모아둔 지긋지긋한 시어머니물건들을 깡그리 버렸다. 놀란 지인들에게 알 게 뭐냐며 통쾌함을 선사하였다. 시누이는 끝까지 진상이었다. 오빠 세잔이 병에 걸려 죽자, 오르탕스의 아들에게 연락했다. ‘조카야, 너만 오고 너희 엄마는 데려오지 마라’. 오르탕스는 시누이말대로 장례식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대신 아들에게 세잔의 유작들을 거액에 팔라고 시켰다. 유언장내용으로만 보면 오르탕스가 상속받을 몫은 없었다. 엄마말을 잘 듣는 아들이 판매대금 상당 부분을 오르탕스에게 건넸다. 돈을 챙긴 오르탕스는 스위스휴양지와 모나코를 오가며 여생을 편히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문승협은 행복한 오르탕스말년을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악처소문에서 반전한 오르탕스처럼 엄마도 반전이 숨어있길 바랐다. 할 수만 있다면 오르탕스아들처럼 엄마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다.
내일 등교를 준비하려고 책가방을 열었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난 사흘간 추석연휴를 돌이켜봤다. 마주친 친인척마다 대입학력고사시험을 들먹였다. ‘어느 대학 무슨 과 갈거냐. 몇 점 맞을 자신 있냐’등등. 여느 고3수험생들처럼 질문에 답하느라 곤혹스러웠고,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
저녁 TV뉴스에 대구미문화원방화사건이 나왔다. 사제폭발물이 정문에서 터져 고교생 1명이 죽고 5명이 부상당하였다. 고등학생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엄히 단속했다. 이팔청춘들은 사서 걱정하는 과민한 부모로 치부하였다. 사랑하는 자식이 사건에 휘말리거나 다칠까 걱정이란 걸 알면서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다음날 학교조회시간에 대대적인 정신교육이 이뤄졌다. 역시나 학생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고3학생들이 평상시와 달리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분주히 움직였다. 학교운동장 곳곳서 한 달 앞 대학입학체력장을 대비하였다. 벤치서 윗몸일으키기, 철봉서 턱걸이, 모래가 쌓인 넓이뛰기장서 제자리멀리뛰기, 교련수업용 모형수류탄으로 던지기, 운동장트랙을 뛰며 100미터 달리기, 운동장을 크게 돌며 오래 달리기를 했다.
소련이 미국과 일본의 압박에 못 이겨, KAL기 피격사건 유류품 213점을 한국에 전달하였다. 국민들은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되길 바랐다.
자정 무렵 하마터면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뻔했다. 소련방공군장교 ‘스타니슬라프페트로프’가 ‘인류의 영웅’ 칭호를 받게 된 날이기도 하였다. 우발적 핵전쟁위험에서 올바른 판단으로 상호확증파괴가 발동되는 참사를 막은 인물이었다.
세계는 당장 핵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미국대통령레이건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비판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와중에 9월 1일 KAL기 격추사건이 발생했다. NATO 또한 11월 2일부터 전면적 선제핵공격을 골자로 ‘에이블아처 83’ 훈련이 예정되었다. 소련은 훈련을 가장한 NATO의 대규모 핵공격에 대비하며 예의주시하였다. 게다가 소련최고지도자 안드로포프서기장이 지병으로 위독하여 지휘체계공백을 걱정했다. 심지어 서독과 이탈리아에 배치된 미국‘퍼싱-II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이 소련본토를 사정권 안에 넣었다. 소련군부가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9월 26일 0시, 소련‘세르푸호프-15’ 위성관제센터에 긴급사이렌이 울렸다. US-K오코 대륙간탄도탄 조기경보인공위성이 소련으로 향한 미국 ICBM대륙간탄도탄미사일 1발을 관측했다. 순식간에 5발로 늘어났다. 소련의 모든 핵미사일 지하격납고 사일로와 이동식 발사대에 비상이 걸렸다. 관제센터당직사령 스타니슬라프페트로프가 졸지에 핵버튼을 떠안았다. 크렘린궁과 통신선으로 서기장에게 명령을 요청할 순 있었다. ‘지구최후의 날 기계’가 발사권한까지 주진 않았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도 있었다. 적국핵미사일을 감시하는 최신식 탐지용 인공위성담당이면서도 반격을 고찰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겨우 몇 분밖에 주어지지 않는 핵전쟁직전상황에서, 상부는 전적으로 믿을 가능성이 컸다. 전인류운명이 그의 손에 달렸다.
초조한 순간에도 경고음이 계속되고, 핵전쟁개시버튼이 깜박거렸다. 긴박상태에서 빠른 판단이 필요하였다. ‘만약 미국이 핵전쟁을 시작했다면, 모든 ICBM을 발사하였을 것이다. 지금 잡힌 것은 5개에 불과하다. 컴퓨터나 인공위성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다급히 핵전쟁취소코드를 입력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긴장감속에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인공위성이 햇빛을 ICBM발사섬광으로 잘못 인식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련입장에서는 정말 도박성 짙은 행동이었다. 미사일 하나가 탐지됐다고 핵전쟁을 일으킬 수 없기에 신중을 기하였다. 그런데 미사일이 다섯으로 늘어났다. 지상레이더는 지평선너머를 탐지할 수 없으니, 더 탐지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미사일폭발 시 EMP영향에 소련의 통신망과 레이더망을 마비시키면, 본격적 공격을 개시하는 ‘블랙아웃’ 작전도 배제할 수 없었다. 페트로프는 몇 차례 핵미사일탐지시스템의 불안정성 문제제기를 기억했다. 실제 핵미사일이 발사돼 중앙과 교신이 끊기더라도, 스스로 전쟁을 수행하는 기계가 있어 일단 컴퓨터오류로 보고하였다. 냉전시대인지라 핵무기시스템이 그만큼 중요했다.
과연 페트로프가 영웅대우를 받는 게 마땅한지 검증할 수는 없었다. 컴퓨터오작동으로 핵전쟁발생을 막아낸 일만큼은 박수받아 마땅하였으나, 군사전문가들이 허무맹랑하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소련의 기술 수준을 지적하였다. 소련조기경보시스템이 미국핵공격을 감지하려면 전지구를 커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소련지휘부도 경보시스템을 완전히 믿지 않고, 대규모반격결정을 위한 참고로만 사용할 뿐이다. 핵반격시스템과 연결되지 않아서 ‘파멸의 날 시나리오’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련조기경보체제는 미국핵공격에 제2격을 위한 반격전력보존목적이며, 미국핵미사일이 소련을 향함과 동시에 즉각적 핵반격을 위함이 아니다. 즉 선빵을 맞는 대신 반격할 힘을 최대한 축적해 나중 강하게 보복하자는 전략이고, 한마디로 ‘공격당하는 발사옵션’이란 뜻이었다. 자국영토센서가 핵폭발감지 전까지 핵반격을 않는 것이 소련핵보복절차라며 예로 들었다. 이는 철의 장막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했다. 훗날 냉전종식 이후나 밝혀질 논리였다.
선한 마음에 의존한 견해도 있었다. 페트로프가 핵전쟁을 직접 결정할 위치가 아니며, 소련지휘부가 허술하지 않다. 미사일이 날아온다고 보고하였어도 즉각 미국에 핵반격을 할 거란 보장은 전혀 없다. 페트로프위치에서 중요한 일을 한 것은 맞지만, 페트로프 한 사람이 세계를 살렸단 해석은 지나치다. 결정적으로 페트로프본인이 주장하지 않았다며 인터뷰기사를 들이밀었다. ‘당시 상황에 잘못된 가정과 이해를 한 다수가 세계를 구한 영웅으로 칭송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페트로프공로를 폄하해서는 안되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오류경보라고 상부에 보고한 것은 사실이며, 바른 결정으로 옳은 일을 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소련지휘부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만하였다. 굳이 결론 내리자면 불완전한 소련핵반격체제가 세계를 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이 사건은 알려지지 않아 일반국민들이 알 수 없었다. 미국은 지상과 우주를 망라하여 완전한 핵조기경보체제구축을 통감하고 적극 앞장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