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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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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ug 21. 2021

[10줄 문학] 가지는 뭔 놈의 가지

2021년 8월 14일 ~ 8월 20일


들어가는 말 : '10줄 문학' 매거진을 시작하며


 글을 쓰는 건 정말 어렵다. 쓰다 보면 점점 더 어렵다. 여태까지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부담만 잔뜩 느끼고 좀처럼 시작하지 못하며 영감만을 기다리는 등... 글쟁이로서 영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습성을 갖고 있었다.  변명거리는 있었다. 프로필에도 썼듯이 나는 돈 안 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내가 뭐, 글 써서 먹고살 것도 아닌데 내 맘대로 썼다 안 썼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도 나는 뭔가 하고 싶었다. 잘 써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KT&G 상상마당의 열-줄 소설 공모전을 접하게 되었다. 10줄짜리 소설이라면 그야말로 초단편 중의 초단편이다. 처음에 저 공모전의 공지를 봤을 땐 '에이 뭐 이런 공모전이 있어..'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나는 '10줄 안에 소설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무엇을 소재로 어떤 것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10줄만. 단 10줄만 쓰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평소에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느꼈던 숨이 턱턱 막힐 것만 같았던 부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할 수 있을까?'는 '해보지, 뭐'로 바뀌었고,


 그렇게 의욕에 넘쳐 20분 만에 휘휘 작성해서 보낸 3편의 소설은 전부 예선에서 보기 좋게 탈락했다. (괜찮다. 어차피 내가 글로 어떤 공모전에서 상을 탄다거나 하는 일은 내 인생에서는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이 공모전은 내 안에 뭔가 반짝, 하는 아이디어의 불씨를 제공해 주었다.



매일 브런치에 글 한 편씩 올리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10줄이라면, 매일 단 10줄의 글이라면 쓸 수 있지 않을까.



 일전에 마스다 미리의 <그런 날도 있다>는 책을 읽고, '용두사미여도 괜찮아(보러 가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책을 보고 느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평소에 브런치에 올라가는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너무 힘을 주기 때문에 시작이 어려운 거라면, 용두사미여도 괜찮으니 글쓰기의 부담을 줄이고 뭐든 써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고민만 하면 움직이지 못하는 법. "Just Do It (그냥 해)" 정신으로 나는 그날 다소 충동적(?)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그리고 나는 지난주부터 이 계정에서 매일 10줄 문학 연재를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단 매일 10줄이라면 그렇게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꾸준히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매일 글을 시작하고 써보는 경험이 결국 평생 글쟁이로 살아갈 나에게도 든든한 기초 체력이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도 든다. 형식은 주로 소설이나 에세이가 될 것 같고, 가끔은 시 형태로도 올려볼 예정이다. 지금은 초기라 거의 대부분 내 이야기 위주로 쓰고 있지만, 내 이야기로 쓰다 보니 자꾸 에세이 위주로 써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사연도 접수받아서 소설 형태로 써보는 등 확장을 해보려고 한다.


 10줄 문학은 위 인스타그램 계정에 주 5일 매일 연재되며, 한 주 동안 올라온 10줄 문학은 모아서 브런치 이 매거진에 발행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 어느 채널로도 볼 수 있으나, 구독자 분들께는 아무래도 짧은 단편 문학 특성상 인스타그램 계정을 구독하여 매일 조각 글로 소비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그럼, 10줄 문학 첫 브런치 발행. 시작합니다.






1. 따릉이와 BMW


입추를 지난 어느 날.

바람이 선선하여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따릉이를 빌렸는데,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을 줄이야.

횡단보도를 건너다 좁은 길목에서 차를 피하지 못하고 부딪혀버리고 말았다.

삐까뻔쩍한 BMW에서 한 건장한 사내가 내리며 내게 눈을 부라렸다.

기스가 잔뜩 난 후줄근한 따릉이의 손잡이를 붙잡은 채로, 나는 그저 마스크 속 입술을 꽉 물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내 모습이 초라한 건지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우리집 주차장에 주차된 내 차도 BMW인데...


하다 못해 자전거가 따릉이만 아니었더라면 이보다 덜 초라해보였을까?

앞으로 또 서울 갈 일이 생기거든

님아 그 따릉이를 타지 마오...




2. 블랙 매미 다운


영화 <모가디슈>를 봤다.

소말리아 내전에 대해 찾아보다 <블랙 호크 다운>이라는 영화도 봤다.

한동안 내 머릿속엔 총소리와 혼란, 잔혹한 장면들만이 가득했다.


'나라면 그 상황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부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들어 보니 새까만 매미 한 마리가 나를 향해 포탄처럼 돌진하고 있었다.

맹세컨데, 2021년 들어서 이렇게 심장이 미친듯이 뛴 적은 없었다.


저게 내 몸에 닿으면 나는 죽는다!


나는 냅다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비상사태, 블랙 매미 다운이었다.




3. 가지는 뭔 놈의 가지


싱글인 친구와 종종 서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내가 얼른 남자친구 사귀어서 가지 쳐줄게."


3년 넘게 그런 대화를 반복했지만 둘 중 누구도 서로에게 가지를 뻗어주는 일은 없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가지를 쳐주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고.


아니, 애초부터 우리에겐 가지가 없었던 게 아닐까.

나무라고 다 가지가 있는 건 아니잖아.


어쩌면 우리는 대나무일지도 모른다.


어디로도 가지를 뻗지 않고 혼자 꼿꼿한, 가지가 없는 대나무.

일단은 나부터 똑바로 서야겠다.




4. 오늘의 마나가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RPG 게임을 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주로 어떤 속성의 캐릭터를 골랐나요?

저의 선택은 언제나 마법캐였습니다.

검투사도, 궁수도, 힐러도 좋지만 파괴력 있는 광역 마법을 쓰는 캐릭터가 제일 멋지더라구요.

다만 이 마법사 캐릭터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마나'라는 정신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어쩌다 보니 현실세계에서도 저는 지능캐 속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몸으로 때우는 일이 아닌 머리 쓰는 일을 택한 거죠.


몰려오는 일들을 고렙 먼치킨 마법사가 몹 처리하듯이 미친듯이 쳐내다 칼퇴를 해도, 아무리 쉬고 또 쉬어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무기력증이 찾아올 때면 저는 생각합니다.


'푸슈슈...오늘의 마나가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MP는 HP처럼 급속 회복 포션도 없으니 오늘은 그냥 이쯤에서 로그아웃할까봐요.




5. 60살 까지만 살고 싶어요


나의 전남친은 매우 알뜰한 사람이었다.

내게 똑똑 가계부 앱을 깔아주며 사용법을 알려준 사람도 그였다.

그는 늘 내게 결혼을 졸랐는데, 결혼 이후의 경제적인 삶에 대한 비장한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우리 딱 60살 까지만 죽었다 생각하고 돈만 벌자. 즐길 거는 60살 넘어서 애들 대학 보내놓고 돈 다 벌어놓고 즐기면 되잖아."


본인이 쓸만큼 양껏 돈을 벌어둔 다음에 기부를 하거나 사회환원을 하겠다 공언하는 사람들치고 기부하는 걸 못봤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면서도 일상적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기부를 꾸준히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돈이란 것은 아무리 벌어도 결국 본인이 '이만하면 됐다'며 만족할 그 시점이 영영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60세가 되었을 때 은행에 돈이 아무리 쌓여 있다 하더라도, 인생을 즐길 돈만큼은 부족할 것이다.


결국,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6. 전부, 너였다.


나는 너의 말을 믿었다.

 

너는 내게 앱 설치를 요구했고, 앱은 내게 통화 권한을 요구했다.

'괜찮겠지', '설마'하고 설치를 완료한 순간 이미 모든 것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불안했던 나는 하X캐피탈 공식 고객센터에 전화했으며, H카드에 전화했고, 금감원에도 거듭 확인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그들은 하나같이 네가 내게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확인해 주었다.


모든 게 끝나고 난 뒤,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깨달았다.

내가 대화를 나눈 그 모든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수화기 너머엔 언제나 너 뿐이었다는 것을.

 

하X캐피탈  공식 고객센터 상담원도,

H카드 카드론 상담원도,

1332 콜센터의 금감원 직원도.

그 모든 통화의 수화기 건너편에는 네가 있었다.

 

하나도 빠짐 없이

전부, 너였다.




7. 성장판 닫힌 지 오래


팀장님 전 상서.


팀장님, 아직 제 역량이 부족하다고, 더 성장해야 한다고 하셨죠.


근데 역량이 부족하다면서 일은 왜 자꾸 주시나요?

제가 팀장님이라면 저같이 '역량이 부족한' 사람한테 그렇게 일을 맡기진 않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나요?

5년 내내 역량이 부족한 거면 그건 그냥 저의 포텐이 여기까지인 거예요.

저 어디 가도  빠지는 거 없는 사람인데, 팀장님 앞에만 서면 항상 부족한 사람이 되어버려요.


다음번에 한번만 더 저한테 성장 운운하시면 전 바로 팀장님 눈 앞에 손바닥을 쫙 펼치며 말할거예요.


"팀장님, 제 성장판 이미 닫힌지 오래거든요!"


Take it or Leave it!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10줄 문학으로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DM으로 편하게 소재나 사연 접수해 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10줄 문학으로 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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