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30일 ~ 9월 3일
1. 사랑은...이어달리기
헤어질 때 알았다.
내가 네게 바랐던 것을 너로부터는 결코 얻을 수 없음을.
그리고 네가 내게서 바랐던 것 또한 마찬가지였음을.
'너의 그런 점이 좋아'가 '너의 그런 점이 싫어'로 바뀐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효용을 체감할 수 없었다.
사람이란 쉽게 바뀌지 않기에 이 세상엔 수많은 헤어짐이 있다.
너에게서 받은 상처는 너로부터는 치유받을 수 없고, 내가 네게 준 상처 또한 그러하다.
너와의 상처가 내게 남긴 경험으로 인해 이전보다 조금은 더 관계에 있어 성숙해진 나는 어쩌면 한 단계 버전 업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나의 v.2는 결코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안다. 너를 다시 만나는 순간 나는 금세 초기화되어버릴테니까.
우리가 지독히도 싸우는 동안 네가 만들어낸 좀 더 나은 사람인 나와, 내가 만들어 낸 좀 더 나은 사람인 너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 것은 결국은 언제나 서로의 '다음 사람'이다.
2. さようなら(사요나라)
대표님, 혹시 일본어 할 줄 아시나요?
전 좀 하는데요.
제가 일본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웠던 게 '안녕'이라는 인사 표현이었어요.
일본어로 bye는 'さようなら(사요나라)'라고 한답니다.
그러나 이 말은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된대요.
헤어지면 앞으로 다시 보기 힘든 사이에 진정한 작별을 할 때 쓰는 말이라나요.
그래서 직장동료나 친구, 가족처럼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볼 사이에는 저 말을 쓰지 않구요.
'じゃ,また(그럼, 또)'나 'また明日(내일 또~)'를 쓴다고 하네요.
대표님.
さようなら(사요나라)...
3. 반전의 버튼
퇴근길, 1층에서 급하게 잡아 탄 엘리베이터엔 이미 누군가 타 있었다.
두 사람을 태우고 출발한 엘리베이터는 먼저 버튼이 눌려져 있던 5층에 도착했다.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림과 거의 동시에 그는 빠른 걸음으로 문 밖을 빠져나갔다.
문제는 그가 나가면서도 손을 뒤로 돌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연거푸 눌러댔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냅두면 알아서 열릴텐데, 뭐하러 저렇게 버튼을 누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의 손가락을 유심히 쳐다본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가 누르고 있는 것은 닫힘 버튼이었기 때문이다.
문이 닫히고 나자 나는 깨달았다.
평소에 저층에 살면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마다 얼마나 눈치가 보였으면,
엘리베이터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닫힘 버튼을 누르면서 내릴까.
그런 그의 배려심도 모르고, 성격이 급하다고 단정지었던 내 쪽이 오히려 성급한 것이었다.
4. 오직 인기없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나는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적도 없고 확진자와 접촉한 적도 없다.
회사 내에서도 가능한 한 밥을 혼자 먹고, 웬만하면 메신저 외의 대화는 하지 않으며 철저히 혼자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코로나 19로 전 국민에게 되도록 집에 머무르길 권장하는 이 시국에서 나는 그것이 조금 지루하긴 하지만 '불편'하거나 답답하진 않다.
친구도 별로 없고, 직장 동료들과 밥을 안 먹고 거리를 둬서 '유난'이라고 눈총을 받으면서도 그다지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내가 원래 모태 인기 없음이어서 그런 걸까.
인기 없는 삶에, 찾아 주는 이 없는 삶에,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스마트폰이 이미 너무 익숙해서 그런 것일까.
나의 인싸 친구는 이 시국에 여행을 어찌 가야 할지, 데이트 중 식사는 어찌해야 할지 그런 것들을 걱정하고 있는데 나는 애초에 불러 주는 이 없으니 나갈 일이 없어서 그런 불안함에 공감해 줄 수가 없다.
단지 이 시국에도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필수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인기 많은 이들은 좀 더 불안하겠구나, 싶을 뿐.
결국은 그렇게 인기 있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해야 해서 코로나 19에 감염 및 전파 확률이 높아지고, 나처럼 찾아주는 이 없어 집콕만 해서 안전하게 살아남은 사람들만 이 지구 상에 남는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
오직 인기 없는 자들만이 살아남은 세상. 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5. 모르는 게 약
환절기 단골손님 비염이 찾아왔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엉망진창이 되는 내 코를 몇 년째 치료해 주고 있는 단골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이번에는 어째 분위기를 잡았다.
그는 내게 비중경만곡증이 있다며, 내 코뼈가 한쪽으로 휘어져있어서 사실상 거의 한쪽 콧구멍으로만 숨을 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단 하루만 입원하여 수술을 하면, 수술을 통해 양쪽 콧구멍을 뚫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전 지금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데요."
"이미 그렇게 태어나서 한 쪽으로만 숨쉬는데 너무 익숙해져서 그래요. 수술 후에 양 쪽 콧구멍으로 숨쉬어보면 '아, 내가 이 좋은 걸 평생 모르고 살았구나!' 할 거예요."
1차선 도로가 2차선 도로가 되는 것이라며, 그 시원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지 않냐며 나를 간곡히 설득했다.
"음.......그럼 그냥 계속 모를래요."
모르는 게 약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