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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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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Dec 19. 2021

[10줄 문학] 인생에 기대를 갖지 말아라.

2021년 12월 13일 ~ 12월 17일


1. 인생에 기대를 갖지 말아라.


살면 살수록 느끼는 것은 인생에 기대를 가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인생 앞에서 인간은 통상적으로 짚으로 만든 개 취급도 못 당한다.


인생은 또한 무자비한 것이라,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서 전정긍긍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 사람의멘탈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린다.


고작 나 따위가 노력했다고 인생이 보상씩이나 해줘야 하나? 내가 뭐라고?


노력한 만큼 보답받는 세상을, 30대 중반의 나는 아직껏 경험하지 못했다.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은 이렇게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찾아온다.


그러니 무언가를 할때 인생이 보답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말자.


대신, 재밌으면 그냥 하는 거고, 그 순간 재미있었던 기억만을 남기면 된다.


나는 그냥 좋아서 한건데, 세상이 별로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2. 새똥을 치우며


우리 집 새장 문은 항상 활짝 열려있다.


나의 새들은 늘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원하는 곳에 똥을 싼다.


얘들과 같이 살기 시작한 초반에는 그것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닦았지만, 이내 그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아예 그들이 자주 가서 시간을 보내는 모든 곳에 신문지를 붙여두고, 주기적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오늘 쯤이면 갈아야겠다 싶어서 신문지를 가는데, 말라붙은 새똥이 신문지에 쩍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 졌다.


내가 어영부영하는 사이 나의 새는 벌써 11년을 살았고, 이제 언제 작별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얼마 전 그의 건강이 좋지 않던 어느 날, 나는 새벽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떨군 깃털을 주으러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울었다. 그의 생명은 꺼져도 남긴 깃털은 영원히 남을텐데, 왜 나는 청소한답시고 여태 그 깃털들을 줍는 족족 버렸단 말인가, 하고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그러니 언젠가는 이렇게 신문지에 잔뜩 쌓여 말라붙은 새똥마저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는, 그저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임을 깨닫는 삶.




3. 호텔 폴라로이드


얼마 전 친구들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호캉스를 했다.


그 날의 잇템은 친구 한명이 가져온 인스탁스 폴라로이드 카메라였다.


우리는 똑같은 잠옷을 맞춰입은 채 한참 신나게 사진을 찍고 또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문제가 된 사건은 다음날 아침에 발생했다.


체크아웃을 하기 전, 폴라로이드 즉석 사진들을 침대 헤드 위에 나란히 올려두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방심한 사이에 사진 한장이 침대헤드 뒷편으로 쏙 빠져버린 것이다!


하필이면 그 침대 헤드는 벽면 전체 고정형이라 움직이지도 못했다.


친구들은 나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사진에는 영혼이 깃드는데 너는 여기에 그걸 남기고 가는거야~"


그런 고로, 제 영혼을 호텔방에 두고 오게 되었습니다. 먼 미래에 그 사진을 발견하실 분께는 본의 아니게 놀래켜드려서 죄송하구요, 사진은 즉시 폐기처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4. 인생 첫 북토크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북토크를 했다.


온라인 북토크였는데 너무 떨렸다.


나름대로 E이고 말빨 및 임기응변에는 자신있는데도 너무 긴장됐다.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렀다.


오죽 긴장했으면 10줄문학 쓰는 것조차 까먹었다.


PPT 만드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항상 글보다 말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겪어보니 말보다는 글이 나은 것 같다.


온라인도 이렇게 쩔쩔맸는데, 아무래도 관객들 앞에서는 북토크를 못할 것 같다.


그래도...끝났다!


최근 들어 뭐가 끝난 다음에 이렇게 기뻤던 것은 처음이다.





5. 인생은 타이밍


며칠 전에 차량 배터리가 나갔다.


조금 추운 주차장 쪽에 차를 세워놨더니, 아무리 노력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 거다.


결국 나는 보험사를 불렀고, 쌩돈을 들여 배터리를 교체했다.


급작스런 지출에 조금 우울해하고 있던 내게 보험사의 문자가 도착했다.


12월 17일~18일 이틀간 이상 한파가 예상되므로 차량의 배터리를 미리미리 교환해 두라는 것이다.


하필 내가 차량용 배터리를 교체하자마자 이런 문자가 온 게 조금 얄궂게 느껴졌다.


혹시 배터리를 교체한 내가 마음아파 하고 있을까봐 보험사에서 배려해서 이런 문자를 보내준 걸까?


어쨌든 나는 '진짜로 안 춥기만 해봐' 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바깥세상에 발을 디딘 내 뺨을 찬 바람이 후려쳤을 때, 나는 그래도 내가 미리 배터리를 갈았던 게 무척 다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터리를 교체할 때는 무척 귀찮고 '왜 하필 지금!'하는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어쨌든 지나고 보니 그 때가 최적의 타이밍이기도 했던 것이다.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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