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0줄 문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Dec 26. 2021

[10줄 문학] 홈 스마트 홈

2021년 12월 20일 ~ 12월 24일


1. 블랙코미디


때는 1987년, 여주인공은 여대생이다.

남자 주인공은 남파 간첩이나 운동권 사람으로 오인받고, 서브남주는 대쪽같은 안기부 직원이다.


한 차례 이 드라마의 시놉시스가 논란이 되었을 때, 제작진은 시대적 배경을 제외한 모든 요소가 가상이며,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장르가 '블랙코미디'라고 말했다.


남자 주인공 역할의 배우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1988년에 태어나서, 1987년을 모르기 때문에 대본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습니다."


글로벌 톱 아이돌이자 여자 주인공 역할의 배우는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한국사를 뽑았다.


역사왜곡을 한 드라마는 교묘하게 그 주제와 소재를 숨기고 협찬을 받았고, 협찬사들은 자기들이 제작진에게 속아넘어가 우둔한 짓을 했노라며 앞다투어 드라마 손절 입장 표명을 하기 바쁘다.


드라마의 클립은 네이버에 올라오고 있지만 댓글은 다 막힌 상태다.


나는 이제서야 왜 제작진이 '블랙코미디'라는 말을 입에 담았는지 알 것 같다.


드라마 안에서 다루는 시대적 상황과 설정은 전혀 블랙코미디가 아닌데, 드라마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야말로 완전한 블랙코미디니까.




2. 시차


2020년에 나는 클라이밍 에세이를 출간했다.


2021년 연말의 나는 더이상 클라이밍을 하지 않은지 오래다.


두 달 전 나는 투자 에세이를 출간했고, 최근의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투자를 막 그렇게 활발하게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전문성을 가지고 책을 내며 그것으로 지속적으로 세상에 어필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좀 다른 것 같다.


한번에 확 몰입하여 질릴 때까지 끝장을 보고, 그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관심을 아예 잃어버린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에게 클라이밍이나 투자에 대해 묻는다 해도 나는 예전과 같은 열정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모두 책에 담았고, 그것으로 마무리지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늘 뭘 해도 어느 정도 하다보면 '이만하면 됐지' 싶고, 뭔가 하나를 진득히 파서 전문가 레벨로까지 올라갈 생각은 없다.


왠지 계속 이렇게 살다보면 세상이 내게 기대하는 것과 현재의 나 자신의 사이에 발생한 시차를 메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3. 워치3일


이틀 전에 갤럭시 워치4를 샀다.


처음에는 왜 이런 거를 차고 다니나 했는데, 보니까 은근히 신기한 기능이 많았다.


운동량이나 체성분 분석을 해주는 것까진 그렇다 쳐도, 수면패턴 분석이나 스트레스 감지까지 되는 것이 아닌가?


특히 스트레스 감지 기능은 무척 놀라워서, 내가 학원 수업 강의장 문만 열고 들어가도 그때부터 이미 빨간색(높음) 수준으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


근데 신기하게도, 학원 수업을 마치고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면서 보니까 스트레스가 낮음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내가 알려주지 않은 너무 많은 정보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작은 물건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워치를 사용하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건강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운동량도 계산해줄 뿐 아니라, 물 마시기 잔수나 걸음수 세기 등은 확실히 워치 쪽이 더 보기 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시간 정도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으면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라고 찌릿찌릿한 알람을 보내오기도 했다.


뭐 이러다 작심3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워치를 사용한지 3일째 된 나는 아주 만족중이다.





4. 최신 유행


딱히 유행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뭔가가 유행할 땐, 웬만해서는 그것이 내 마음에도 드는 편이다.


그렇기에 올 겨울 찾아온 바라클라바의 유행이 나는 매우 반가웠다.


겨울철만 되면 뺨과 귀가 시려운 것이 싫어서, 코로나 이전에도 꼭 마스크를 쓰고 트루퍼햇을 쓰던 나였다.


30대 중반이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아이템이 유행하는 게 좋다.


문제는 밖에 다닐 때 이걸 쓴 사람을 아직 나밖에 못봤다는 것이다.


내 나이 반토막보다 어린 조카는 바라클라바를 쓴 나를 보고 '자기는 못쓸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에게 그녀를 만날때 바라클라바를 쓰고 나가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럴거면 내년 봄에나 만나자고 했다.


진짜 바라클라바가 유행하는 곳은 어디일까. 평행세계?





5. 홈 스마트 홈


12월이 된 이후로 단 하루도 외부 일정 없이 그저 집에서만 느긋하게 쉬었던 날이 없었다.


오늘은 모처럼 학원도 휴강이겠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갈 데도 없겠다 그저 이틀 동안 집에서 한발짝도 안나가고 느긋하게 쉴 작정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에 전기가 나간 것을 알아버렸다.


아무래도 이 놈의 집구석은 뭔가 이상하다. 지난 달에도 내가 쉬려고 빼논 날 천장 누수가 터져서 정신없게 하더니, 조금이라도 집에서 안나가고 그저 가만히 누워만 있으려고 하면 뭔가가 터진다.


심지어 지난주에는 아랫집도 누수가 터지기까지 했다.


이런 일들 때문에 난 퇴사하고 나서 단 하루도 백수답게 하루종일 히키코모리처럼 뒹굴거려보지도 못했다!


정녕 이 집이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 내가 마냥 빈둥거리는 꼴을 못 보는 것이란 말인가?


"그래도 주인이 있을 때만 일 터지는 거 보면 아주 스마트한 집이네."


내 하소연에 친구가 한 말이 맞는 것 같기도...

매거진의 이전글 [10줄 문학] 인생에 기대를 갖지 말아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