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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y 08. 2022

01. 나는 내가 이렇게 쩌리가 될 줄도 모르고.

아무래도 이번 생은 망했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01. 나는 내가 이렇게 쩌리가 될 줄도 모르고.



‘아무래도 이번 생은 망했다.’


 회사 화장실 변기 위에서, 가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뚜껑을 닫은 변기 위에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을 연상하게 하는 포즈로 앉아 심각하게 손에 들린 무언가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가영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화면에는 온통 파란 막대기가 가득했다. 실행 중인 앱 화면을 눌러 이런저런 애플리케이션을 눌러 화면 전환을 해봤지만, 어떤 화면을 켜더라도 보이는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


가영은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제 손에 깊이 묻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주식이고, 코인이고 뭐라 할 것 없이 죄다 차트에 새파란 비가 좍좍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가영의 전재산이 실시간으로 있었는데, 없어지고 있었다.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어딘가에 대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이 곳은 회사 화장실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제 손에 얼굴을 묻었다. 


 가영이 주식 투자를 시작한 것은 1년 정도 전의 일이었다. 뭐, 그간의 상황에 비춰 보면 생각보다 그 경력이 짧은 셈이다. 그 이전부터 코스피에 상장된 대기업에 다니는 사실을 스스로 퍽 자랑스러워하는 가영의 남자친구 준성이 시도 때도 없이 가영에게 주식 투자를 권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연애해 온 7년 간 준성이 그녀에게 몇 번이고 자기 회사 주식이든 뭐든 주식 좀 사라고 권할 때마다 가영은 굳건한 자세로 그의 유혹을 단칼에 뿌리치곤 했다.


“우리 집은 아빠가 도박해서 망했어. 그러니까 도박 금지야.”

“주식이 무슨 도박이야?”

“몰라. 하여튼 그 비슷한 거랬어.”


 그렇게 몇 년 정도 계속된 남자친구의 유혹에 철벽을 치며 버텨왔던 가영이 다른 친구의 권유로 작년부터 갑자기 주식 투자를 시작하게 되자, 준성은 어이없어했다. 


“내가 그렇게 권할 땐 듣지도 않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가영은 대답했다.


“그냥, 앞으로 내 인생에서 어떤 반전을 노릴 기회라고는 이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


 실로 그러했다. 인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운 좋게 바로 취업이 되어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도 11년째. 어느덧 과장 승진을 목전에 둔 6년 차 대리인 가영의 삶은 극히 단조로웠다. 1년 365일 중 어느 하루를 무작위로 찍어서 들여다 보더라도, 그녀의 하루는 이런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지옥철을 타고 1시간 정도 이동하여 출근한다. 지문을 찍고 회사 자동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은 대략 아침 8시 반.


 의자에 가방을 두고 컵을 씻고 물 한 잔을 떠 온 뒤, 자리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켜면 하루가 시작된다.

 24시간 돌아가는 온라인 서점의 MD로 일하는 그녀의 업무 스케줄은 대체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편이다.


 출근해서는 가장 먼저 전일의 매출을 확인하고, 발주를 넣고. 보고 자료를 작성하며 특이사항이 있을 시 조직장에게 보고를 하고. 이후 주간 회의, 출판사 미팅과 신간 검토, 분야 MD 선서 회의, 이벤트 기획, 분기 프로모션 기획, 출판사 굿즈 기획, CS 체크, 경쟁사 동향 파악, 주말 대비 물류센터 재고 파악 등…


  이렇게 매주마다 어느 정도 루틴 하게 진행되는 일들을 줄줄이 쳐내다 보면 주말이 온다. 그렇게 주말이 대략 12번 정도 지날 때마다 분기 마감을 친다. 반기 마감에 맞춰 상반기/하반기 베스트셀러를 집계하고, 마지막 분기에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짠다. 이렇게 52번의 주말이 지나면 또 다음 해가 온다.


 1년에 총 52번의 주말이 있다는 것을 매일같이 상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1월 1일부터 12번째, 24번째, 36번째의 주말마다 할 일이 미리 정해져 있는 상태로 10여 년의 주기를 꼬박 보낸 사람의 권태감에 정확하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또 얼마나 있을까? 


 가영이 처음부터 자신의 일을 이렇게 지겨워했던 것은 아니었다. 11년 전 취준생 시절.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국민서점의 신입 MD로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말 그대로 감격에 찬 눈물을 줄줄 흘렸을 정도니까.


 신입 MD로 입사한 뒤 가영은 초반 몇 년 간은 청소년 분야를 담당했었다. 그러다 문학 파트에서 근무하던 MD 선배들 중 국내 소설을 담당했던 분야 MD 한 명이 퇴사하자 상사에게 잽싸게 분야 변경을 요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본인이 좋아하는 문학 파트로 소속이 바뀌었을 땐 하늘로 뛰어오를 듯이 기쁜 나머지 오만 곳에 새로 판 명함을 뿌리며 자랑하고 다녔다. 확실히, 그때 당시만 해도 그녀의 애사심과 긍지는 하늘을 찔렀었다.


 그때의 열정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가끔은 가영 자신도 그것이 궁금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당시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시종일관 반짝이는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국민서점의 문학 MD, 박가영입니다!’라고 힘차게 자기소개를 하고 다녔던 자신이 꿈꿨던 미래의 모습이….


 적어도 지금 이렇게 여자 화장실 칸 안에 틀어박혀 있는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피곤에 쩌든 채로 회사 화장실 구석 칸에 들어앉아 스마트폰의 주식 거래 앱 화면을 들여다보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지금의 모습 말이다. 


 그러나 비록 이렇게 지독한 권태감에 빠져있긴 했으나, 그녀가 이제 더 이상 책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녀가 11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 직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은 그녀가 매일 같이 다루는 상품이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녀가 하는 일은 매일 똑같았을지언정, 다뤄야 할 책은 매번 달랐다. 아니,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한창 많을 때는 하루에도 소설 분야만 서지 정보가 몇십 권씩 등록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특성이 루틴 한 업무로 가득 찬 일상을 조금은 덜 지루하게 만들어주었다. 


 세상에 넘치는 이야기들을 마음껏 읽고 소개할 수 있는 MD라는 직업은 어쩌면 책을 사랑하는 가영이 인생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었다. 실제로 가영의 주변인들도 가영을 보면서 늘 부러워하곤  했으니까. 


“넌 그래도 덕업일치 하면서 살고 있잖아.”


 덕업 일치. 실로 그러했다. 그녀는 책을 사랑하고, 소설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책을 판매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가영이 진정으로 본인의 삶에서 꿈꿔왔던 ‘덕업 일치’였는가 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긴 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덕업 일치가 과연 ‘책 팔이’인 것일까?


 분야가 변경된 초반에는 가영 또한 사람들의 생각처럼 자신이 꿈을 이뤘다고 착각했다.

 그녀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이후로 몇 년 뒤였다. 해가 갈수록 점점 자신의 일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뭔가 가슴이 답답한데, 그 정확한 이유를 도무지 짚어낼 수 없었다. 


 가뜩이나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봄날이면 그런 울적한 기분이 더 심화되곤 했다.


 문학 MD에게 있어 봄이란 젊은 작가들의 시기였다. 꼭 신춘문예가 아니더라도, 서점마다 저명한 문학 출판사에서 발탁한 젊은 작가 수상 작품집들이 쏟아지곤 했으니까. 


 각 서점의 문학 MD 들은 바빠지고, 독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 시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가영은 이 시기가 되면 유독 더 우울해졌다.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서 송곳처럼 뾰족하게 고개를 내민 그 어두운 감정은 주눅이 들었을 때의 느낌과 가까운 감정이었다.  


 작품집이 출간될 때마다 가영은 본인과 그다지 얼마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또래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온라인 서점 메인 화면에 배치하고, 배너 카피를 써야 했다. 그럴 때마다 가영의 가슴 한 구석에 묵직하게 드리운 그림자가 거슬렸다. 가영의 마음에서 파생되었을 그 무엇인가는 어둠 속에서 가영에게 이렇게 물어오는 것 같았다. 


‘난 대체 뭘까?’


 그리고 그것은 이때쯤, 가영이 가장 많이 생각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갓 서른이 되었을 때 ‘반 육십이 됐다’며, 이젠 인생 절반 산 거나 다름없다고 깝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반 칠십을 꽉 채운 서른다섯이 되어버렸다.


 문학MD가 되어 ‘덕업 일치’를 이루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눈 깜짝할 새에 30대 중반이 되었다.


 지금 가영이 정말로 답답한 것은 가영 자신이 스스로에게 대체 무엇을 기대한 건지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가영의 나이에 가영 정도의 상태면 남들이 보기엔 결코 나쁘지 않은 스코어였다. 직장에서의 업무 성과나 평판도 나쁘지 않았고, 결혼 이야기(가 나온지만 어느덧 3년째였던) 남자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한 직장에서 11년이나 일했으면, 어느 정도는 업계에 알려진 유명한 ‘커리어 우먼’이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것처럼 스틸레토 힐에 샤넬 백 들고 매일 같이 택시 타고 출근하는 그런 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 세상에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던데, 어느덧 1만 시간을 훌쩍 넘게 회사에 비친 박가영은 그냥  Just 박가영 일뿐이었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박가영의 이름 석 자를 모른다.


 막말로 가영이 당장 아무 서점에나 들어가서 소설책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붙잡고 ‘저 국민서점 문학 MD 박가영인데요’라고 자기소개를 해봐도,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아!’가 아닌 ‘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따뜻한 봄날을 맞아 결혼을 하는 친구의 결혼식장에 가서 난생처음 부케를 받는 순간. 가영의 머릿속에 일종의 번뜩이는 깨달음처럼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들러리였구나.’


결혼식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신부인 것처럼. 지난 가영의 인생 또한 이렇게 주인공들을 빛나게 해 주던 삶이었던 것이다.


여태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그녀는 삶 속에서 자신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심지어 가영의 삶은 가영 자신의 흥미조차도 끌지 못했다.


 그래도 이것은 박가영의 인생이니까, 적어도 그녀 인생 의 주인공이 그녀 자신이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것은 착각이었고 그녀는 그냥 쩌리였던 것이다. 가영은 현타를 쎄게 맞아 버렸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가영이 조금씩 지쳐갔던 것은. 비록 박봉에 고강도의 업무였지만 자부심과 보람을 가지고 열심히 임해 왔던 자신의  지난 10여 년의 커리어 전부가, 마치 누군가를 위한 들러리 일에 불과했던 것처럼 느껴졌던 그 순간부터. 본인의 일에 대한 가영의 열정은 조금씩 조금씩 식어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열정은 식었어도 궤도 위에 올려진 듯한 직장인으로서의 루틴은 그녀의 앞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1년 52주, 2개 반기, 4개 분기, 월간 계획, 주간 업무로 쪼개진 그녀의 일상은 지난 10년 간 그러했듯 앞으로의 20여 년도 똑같이 지속될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적으로 그렇게 20번의 52주가 지나면, 그녀는 좋든 싫든 머리가 희끗한 정년퇴임 대상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날까지 그녀는 지금 하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가영은 올해의 38번째 주에 하고 있을 그 일을 5년 뒤, 10년 뒤, 20년 뒤의 자신이 계속 똑같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 소름이 돋았다.

 겹겹이 쌓인 똑같은 시간의 평행 세계 속에서 오직 상상 속의 박가영만이 조금씩 늙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어느 날 갑자기 가영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가영은 갑자기 그전까지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횟수를 줄여가면서 까지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고, 평일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N 잡러, 월급쟁이 재테크, 파이프라인 등등으로 통용되는 강의들을 쫓아다니면서 가죽 공예와 향초 만들기 등의 원데이 클래스들도 두루 섭렵했다.

 뜬금없이 인터넷에 블로그를 개설하여 이런저런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가 결국 꽂힌 것은 ‘돈’이었다.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 나를 궁극적으로 구원해줄 것은 결국 돈이 아닐까.’


 그렇다. 가영에게는 사건이 필요했다. 가슴이 뛰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그런 미친 일들만이 오직 그녀를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의로 만들어줄 것 같았다. 


 그녀는 매일 지겨워서 미칠 정도로 똑같이 돌아가는 인생에 불확실성을 주고 싶었다. 다만 직장인인 이상 엄청난 모험을 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주식 투자라면? 

따지고 보면, 세상에 주식 투자만큼 불확실한 게 또 어딨나? 


 평범한 직장인에, 평생 ‘주식’을 도박과 동일시하며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했던 아버지를 둔 가영으로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일상의 지루함은 어느 정도 덜어내는 데는  충분한 양의 아드레날린을 주입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이후, 이제 1년이 막 넘은 상태였다.


 흔히들 말하는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가영이 막 주식 투자를 시작했던 초반에는 마침 장이 좋았다. 


 차라리 아예 처음부터 돈을 잃었다면 겁이 나서 금방 그만두고 말았을지도 모르는데, ‘급등주’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들어간 한 단톡방에서 집어 준 종목에 냅다 몰빵 했다가 2시간 만에 100만 원을 벌었다. 그리고 그날의 경험이 바로 오늘날 가영이 화장실 칸에서 맞이한 재앙의 서막이었다.


 사실 그것은 전형적인 도박중독자의 루트였을지도 모른다. 멋모를 때 처음부터 달콤한 돈 복사의 맛부터 봐 버린 가영은 적금도 깨고, 월급을 받을 때마다 생활비와 공과금, 보험비와 소정의 용돈을 제외한 전액을 주식 계좌로 이체하여 주식 씨드에 몰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식 초보에, 미숙했던 가영은 이후 몇 번의 잘못된 판단을 했고, 때마침 시장 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지며 +20%였던 수익률이 현재는 -40%까지 떨어져 버렸다. 참고로 그녀가 화장실에 앉아 있는 지금 현재, 그녀가 보유한 종목들 중에서 최악의 성적을 자랑하는 종목의ㅏ 수익률은 -80%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코인이었다. 가영은 올해 초부터 점점 주식 장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자, 당시 잠시 반짝 오르던 코인에 주목했다. 


때마침 주식 시황이 안좋자, 개인과 세력들의 돈이 코인 판으로 미친듯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주식은 장이 열려야만 사고 팔 수 있었고, 상승 폭에도 한계가 있었지만 코인 시장은 24시간 돌아가면서 미친듯이 오르락 내리락했다. (하한선도 없었지만.)


사방에 돈복사 후기가 넘쳐났다. 

이름이 예뻐서 그냥 찍어서 샀는데 대박이 터졌다는 둥, 앵무새가 집어준 코인을 샀는데 대박이 났다는 둥 만화에서 나올 것 같은 자극적인 상황들이 넘쳐났다. 유명인들도 코인을 활용한 밈에 동참했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대박’ 코인이 등장했다. 


급기야 가영이 들여다보는 주식 커뮤니티에도 매일같이 코인 이야기가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무렵, 가영은 혈관에 FOMO가 넘쳐 흐르는 상태였다.


‘지금은 코인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미친 것 아닐까?’


 코인판은 마치 모두가 가영만 쏙 빼놓고 벌이는 축제 같았다. 가영만 빼고 다 돈을 벌어서 경제적 자유의 길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영은 그렇게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한 상태에서 무작정 코인 시장으로 직진했다. 이 과정에서 최후의 보루로 모아놨던 비상금을 탈탈 털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무지성으로 들어온 개미 중의 상개미 박가영의 입성으로 몇 달간의 짧은 코인 상승장은 끝을 맺었다. 

가영의 비상금이 가상화폐 거래소로 입금된 이후. 코인들은 마치 ‘언제 우리가 하룻밤 만에 500%가 올랐었냐?’고 시침을 데는 듯이 한꺼번에 뚝 떨어져 버렸다. 때마침 경기 침체가 겹쳐 나름 메이저 코인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둘 다 한 달 만에 40% 넘게 떨어지며 영 죽을 못 쒔다. 


 그래도 가영이 코인을 살 때 비트코인을 샀으면 가격 방어라도 됐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릇된 판단을 했다. 시드가 작으니 크게 불려 먹어야겠다고 과감하게 도박판 같은 알트코인에 다 묻은 것이다. 그 결과, 지금 가영의 소중했던 비상금은 지금 8할이 증발한 채로 바닥 밑 지하실에 물려 있었다.


그 결과, 지금 화장실 변기 위에 앉은 가영의 심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정말로 ‘이번 생은 아무래도 망했다’고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로.


 그간 고생해서 벌었던 내 피 같은 돈. 스마트폰의 LCD 화면 너머 꽉 물려서 이젠 꺼낼 수도 없는 소중한 돈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더 쪼그라들어 사라져 간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니 이젠 '존버', '가즈아'를 외칠 정신도 들지 않는다. 가영은 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래도 아직 이 때까지만 해도 지극히 평범한 제 인생의 반전을 위해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는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결국 최근 1년 간 가영의 인생에 벌어진 이 일련의 사건들은 전부 가영이 자신이 현재의 삶에 느끼고 있던 온갖 불만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퇴사’만큼은 옵션으로 절대로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물 넷에 취업하여 11년 간 한 직장에 몸담으며 살아왔던 그녀는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닌 자신의 삶을 상상할 수 없었고, 정말로 퇴사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화장실에서 몰래 마이너스 수익률을 확인하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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