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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Jun 05. 2022

05. 다가오는 것들

드디어, 올 게 왔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05. 다가오는 것들




결국 그 날 가영은 병호와 대판 싸우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미간에 내 천자로 깊이 새겨진 주름을 꾹꾹 눌러 피며 집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밤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아까 정신없어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기 때문일까? 허기를 느낀 가영은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리고 그 위에 물을 부은 냄비를 올렸다. 대충 라면이나 끓여먹을 심산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준성이었다.


[잘 들어갔어?]

“응, 방금 들어왔어.”

[오늘 엄마랑 누나들이랑 덕분에 다들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아버님께 감사하다고 꼭 전해 달래.]

“그래, 잘 드셨다니 다행이다. 말씀 꼭 전달드릴게.”


통화 중에도 가영의 시선은 가스불 위에 올려둔 냄비를 향해 있었다. 냄비 안의 물이 보골보골 거품을 일으키며 조금씩 끓어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이후 준성이 잠시간 아무 말이 없었기에 가영이 그만 통화를 마무리하려고 운을 떼려던 순간, 수화기 저편의 준성이 말했다.


[가영아, 그… 저기 말이야…]

“응?”

[아니, 그게… 오늘 부모님들끼리 하신 말씀도 있고 해서 말인데…]


 준성이 우물쭈물 못하며 조심스레 말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 준성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영은 바로 준성이 그다음에 할 말을 직감했다.


[우리도 이제 슬슬… 날 잡아야 하지 않을까?]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본인의 예상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영은 어쩐지 그것이 속 시원하거나 후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에 준성과 만나 사귀기 전. 가영은 주변에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며 혼자 한번 상상해 본 적은 있었다. 만약에 본인이 나중에 누군가와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그러나 막상 이렇게 그 순간이 닥치자, 실제로 느껴지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당시 막연히 상상했던 것처럼  ‘드디어!’라는 감탄사가 터질 정도의 감격스러운 느낌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고.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해지지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 누군가는 인생을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영은 자신이 그런 유형은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우친 편이었다.


놀라울 만큼 이 상황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가영은 그저 이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올 게 왔구나.’


그리고 가영은 본인이 얼마 전 서 팀장으로부터 미래사업전략 TFT 합류를 통보받았을 때에도 그렇게 생각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때도, 지금도.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보골거리는 요란한 소음이 들렸다. 급하게 시선을 돌리니 냄비의 물이 마치 금방이라도 넘칠 기세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가스레인지의 버튼을 조절하여 불을 끄며, 가영이 준성에게 말했다.


“알았어. 다음에 볼 때 다시 이야기해보자.”

[그래. 푹 쉬고!]


 전화가 끊겼다. 물이 끓던 냄비는 아직 뜨거웠고, 다시 불을 켜면 금방 물이 끓을 것이었다. 그러나 가영은 다시 가스불을 켜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냄비를 올려둔 채로 원룸 안으로 들어서며 부엌의 불을 꺼버렸다.





***





킥 오프 미팅 이후, 미래사업전략 TFT는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가영의 책상 위에 놓인 스케줄러에 의하면 매주 적으면 2건, 많으면 3,4 건의 미래사업전략 TFT 관련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각 사업부에서 미래사업전략 TFT 멤버로 지목된 직원들은 웬만한 회의에 전부 필참자로 지정되었다. 단, 관리자 직급인 서 팀장은 예외였다. 그렇기에 가영은 대부분의 미팅에 정 과장과 둘이 동행할 때가 많았다.


 비록 종종 미팅에 참석을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긴 했지만, 서 팀장은 이 미래사업전략 TFT에 상당히 진심이었다. 서 팀장은 본인이 이끄는 온라인 영업팀이 이 미래사업전략 TFT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내길 바랐다. 비록 이 미래사업전략 TF라는 것이 당장의 매출 전략에는 관련이 없어 보일지라도 말이다.


 도서 유통업이라는 특성상, 국민서점의 평소 분위기는 보수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새로운 시도에 윗선의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이었다. 서 팀장은 이 TF 자체를 그런 윗선들에게 매출 부서인 온라인 영업팀의 존재감을 꾸준히 어필할 훌륭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서 팀장은 본인이 직접 미팅에 참석을 못한 날에는 가영에게 당일 회의 내용과 수행 과제를 따로 메일로 정리해서 보고하게 했다. 이외에도 서 팀장은 본인이 보기 위하여, 가영에게 미래사업전략 TFT 과제 수행을 위해 필요한 시장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달라고 했다. 이것뿐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정 과장이 제안한 스터디였다.


정 과장은 미래사업전략과 관련하여 생소한 개념과 트렌드도 익힐 겸, 내부 브레인스토밍도 할 겸, 온라인 영업팀의 ‘삼스파’들끼리 매주 1개씩 연관 키워드를 뽑아 스터디를 하는 정기 미팅을 하자고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뭐 괜찮을 수 있었다. 문제는 서 팀장이 정 과장의 이 아이디어를 지나치게 흡족해한 것이었다.


 그는 정 과장의 제안에 크게 기뻐하며, 이 좋은 기회를 우리끼리만 독점하지 말자고 했다. TFT에 속하지 않은 우리 팀의 다른 직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라도 이 주간 스터디 내용을 팀 내부에도 공유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정기적으로 발표회도 갖자고 했다.  


 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함께 이 미래사업전략 TFT에 간접적으로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개별 스터디 조를 짜서 각 조별로 미래사업전략과 관련하여 현행 업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는 과제를 내주자고 했다. 그러면서 일이 점점 커져갔다.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불과한 미래사업전략 TFT는 공식적으로는 아직 나아갈 방향도 잡지 못한 채로, 현재는 계획 수립을 위한 자료 조사와 사업 현황 취합 및 점검을 진행 중이었다. 

때문에 공식 회의에서도 브레인스토밍과 트렌드 스터디 수준의 회의만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영에게는 상황이 생각보다 빡세게 굴러가게 되었다.


 서 팀장의 의욕 과다로 이런저런 잡일이 추가된 데다, 퇴사한 문학 파트장의 대체 인력이 아직도 세팅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미래사업전략 TFT 관련된 일은 동료 MD들과 나눠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가영이 맡고 있는 문학 파트 MD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1년 치 사업계획 당시 설정한 모든 실적 지표가 MD 개개인에 맞춰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의 업무를 다른 MD와 나누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기에 그녀는 본인이 담당한 국내소설 외에 퇴사한 파트장이 맡았던 외국 소설과 에세이 분야의 KPI까지 달성해야 했다. 그보다 급한 것은 파트장이 맡았던 파트 선임 업무였는데, 그것이야말로 업무를 나눌 수가 없었다.  시간 관계상 모든 인수인계를 가영이 몰아서 받았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그 모든 일들을 전부 가영이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가영은 꾸역꾸역 일을 쳐냈다. 


 그러다보니 화장실에 가거나 이를 닦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조차 사이사이 시간을 의식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후르륵 까먹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매일 무슨 정신일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훌쩍 다가와 있었다.


 미래사업전략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거나, 스터디 발제 자료 작업이 필요할 땐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했다. 도저히 일과 중에 저것까지는 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부턴가 퇴근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집에 가면 지쳐서 책도 영화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 가면 그냥 쓰러져서 잤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허겁지겁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준성과의 평일 데이트도 스킵하게 되었다. 평일엔 도저히 시간도, 에너지도 남아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토록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 가영이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니. 일과 중 주로 오후 시간에 진행되는 MD와 출판사 담당자들의 신간 미팅이었다.


 이 시간은 원래도 가영이 자신의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복잡하고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출판사 담당자와 함께 마주 앉아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은 빡빡한 MD 생활에서 몇 안되는 오아시스같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하루 일정이었지만, 그나마 출판사 미팅을 진행하는 그 시간만큼은 책을 만지고 들춰보면서 단 5분 내지 10분이라도 바쁜 마음 없이 책 이야기를 맘껏 나누며 조금 쉬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개중에 특히 친분이 있는 출판사의 담당자가 신간을 소개하러 방문하는 날에는, 가영은 법카가 아닌 개인 카드를 들고서라도 회사 앞의 카페로 기꺼이 탈출을 시도하곤 했다.


 마침 오늘 가영을 만나러 온 M출판사의 담당자인 이정아 팀장이 그런 케이스였다. 그녀는 가영이 처음 국민서점에 입사했을 때부터 이미 M출판사에 입사한지 4년 차의 대리였다. 그 후로 11년이 지날 동안 근속하여 지금은 팀장으로 승진하였고, 현재 M출판사를 이끌어 가는 핵심 인력이었다. 이직이 잦은 출판 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기도 했다. 


 그녀가 일하는 M출판사는 업력이 이제 20년 정도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중견 규모의 문학 출판사였다. 초반에는 주로 국내 소설 위주로 출간하곤 했는데, 지난 10년 간 조금씩 트렌드에 맞춰 사업 범위를 확장하여 현재는 순문학뿐 아니라 장르 문학 쪽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이정아 팀장은 가영이 문학 파트의 국내 소설 쪽으로 담당 분야를 변경했을 때 전임자로부터 가장 먼저 소개받은 출판사의 담당자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비록 약간의 나이 차이는 있었으나, 오랜 시간을 분야 MD와 담당자 관계로 지내면서 자연스레 친해졌다. 둘은 이제는 가끔씩 밖에서 점심이나 저녁도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이정아 팀장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가영은 그녀로부터 ‘신간이 나와서 소개드리러 왔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뛸 듯이 기뻐하며 1층 카페로 달려 내려갔다. 카페의 문을 열자, 창가 쪽 자리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이정아 팀장의 모습이 보였다. 가영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후, 오늘은 팀장님 덕분에 제가 숨 좀 돌리네요.”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봐요.”

“네. 파트장님 후임이 아직 안 뽑혀서요.”


 사실 파트장 업무를 대행하는 건만이었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미래사업전략 TFT 일을 같이 하니까 좀 많이 버거웠다. 그러나 TF에 대해서는 아직 대외비였으므로 이 팀장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순 없었다.  

그래도 이 팀장은 사정을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맞장구를 치며 끄덕였다.


“그러게요. 어서 좋은 분이 오셔야 할 텐데…”

“그러니까요. 주변에 괜찮은 분 있으면 소개 좀 시켜주세요! 아니면 이 팀장님이 직접 오셔도 좋구요.”

“하하, 제가요? 저는 이제 어디 가긴 글렀어요.”

“에이, 팀장님만 오시겠다 하면 제가 진짜 특급 선임으로 모실게요.”


 가영의 너스레에 이 팀장이 호호 웃었다. 두 사람이 앉은 탁자에는 MD에게 전달하기 위한 소설책 신간 2권이 놓여 있었다. 잠시 가벼운 근황 토크 겸 수다를 마무리한 뒤, 가영은 이 팀장이 내민 소설 신간을 집어서 넘겨보았다. 감성적인 일러스트로 해변의 카페테라스 풍경이 그려진 표지에는 <카페 선셋>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그 밑에는 8명의 작가 이름이 쓰여 있었고.


“앤솔로지네요?”

“네. 저희 출판사에서 이번에 새로 앤솔로지 프로젝트를 기획했거든요.”


 이 팀장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팀장은 자신의 일도, 책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반기마다 자체 공모전을 열어서 선정작들을 묶어서 출간하는 거예요. 이게 그 첫 번째 작품이구요.”

“그렇군요… 주제가 카페인 거예요?”

“아뇨, 주제는 ‘커피’였어요. 이건 표제작이구요.”


 가영은 책의 앞표지를 열어 목차로 넘어갔다. 표제작을 포함한 8편의 소설의 제목과 나란히 적혀 있는 그 이름들이 어쩐지 하나 같이 생소했다. 가영이 말했다.


“작가님들 이름이 생소하네요.”

“그쵸? 사실 이번에 이 앤솔로지로 데뷔하신 분도 있어요.”

“그래요?”

“원래 이 공모전 자체가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된 거거든요. 그래서 접근이 쉬운 주제로 잡아봤는데, 생각보다 참신하고 기발한 소설들이 많더라구요. MD님도 한번 읽어보시면 아마 엄청 재밌으실 거예요.”


 가영은 책을 다시 덮고는 표지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온라인 서점의 MD로 국내 소설 판매를 담당하면서 이와 비슷한 책들은 수도 없이 받아 보았다. 대형 출판사의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도 포함해서 말이다. 가영은 그 때마다 그런 책들을 제 손으로 만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이 마치 다른 세계의 어딘가에서 온 존재인 것처럼 멀게만 느끼곤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책은 달랐다.


“요새는 이렇게도 소설을 낼 수 있나 보네요…”

“그쵸. 예전처럼 꼭 어디 신춘문예에 등단하고 그러지 않고 소설을 내는 작가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저희뿐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도 이렇게 공모전을 많이들 진행하기도 하고요.”


 이 팀장은 가영이 책에 관심을 보이자 신이 난 듯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이 팀장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아, 두 번째 앤솔로지 공모전도 지난주에 열렸어요. 다음 달 초까지 접수받는데, 혹시 MD님도 관심 있으면 한 번 응모해 보실래요?”

“네? 제가요?”

“네. MD님도 글 잘 쓰시잖아요.”


 이 팀장이 말했다. 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가영이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이긴 했으나, 이 팀장이 무엇을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그런 가영의 의아해하는 표정을 보고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MD님, 몇 년 전에 국민서점 북 매거진에 ‘박MD 업무일지’ 잠깐 연재하셨잖아요.”

“아, 맞다. 그랬었죠.”


 가영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전이었나, 4년 전이었나. 당시 팀장이던 홍 팀장은 타 서점과 차별화 전략을 위해 스타 MD를 양성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꿨었다.


 그래서 국민서점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팀에서 정기 발행하는 웹진에 MD들이 돌아가면서 소속과 분야를 밝히고, 업무 일지나 에세이 등의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연재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가뜩이나 격무에 시달리고 있던 MD들은 정기적으로 퀄리티 있는 글까지 써내야 한다는 압박에 이중으로 힘들어 했었다. 


 마치 지옥의 행군 같았던 그 시기는 결국 1년이 지나고 팀장이 바뀌면서 흐지부지 되었고, MD들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그 힘들었던 시기를 기억에서 얼른 지워버렸다.


“저, 그때 그거 엄청 재미있게 봤었어요. 업무일지 겸 에세이인데 특이하게 약간 소설처럼 쓰셨었잖아요?  3인칭 시점으로요. 저 그거 보면서 MD님 진짜 소설 쓰셔도 잘 쓰시겠다 싶었거든요.”


 내가 그랬던가?

 정작 글을 썼던 본인조차 까먹은 몇 년 전 글을 이렇게 언급하는 걸 보니 이 팀장도 가영이 기분 좋으라고 그냥 예의상 해 주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가영은 제가 옛날에 쓴 글을 누군가가 이렇게 기억해준다는 것이 어쩐지 좀 쑥스러워졌다.


 그래도 딱 잘라서 ‘안 한다’고는 안 했다. 이 팀장은 어쩐지 긴가민가해하는 가영을 보고 웃으며 다시 권했다. 


“진짜로요. 한 번 해보세요. 마침 이번 주제도 MD님이 관심 있으실 것 같거든요.”


 이 팀장의 열정에 감화된 것인지, 가영은 저도 모르게 점점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그 증거로 그냥 한번 물어보는 척 이 팀장에게 슬쩍 묻는 가영의 목소리가 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주제가 뭔데요?”

“'덕질'이요.”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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