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영의 습격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박가영의 아버지 박병호는 열정적인 사업가였다. 만약 그가 직장 생활을 했다면, 63세인 그의 나이는 은퇴하고도 남았을 나이였지만 자영업자인 그는 은퇴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식당 <박가네 불고기>를 여전히 활발히 운영하며 현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미 은퇴한 주변의 또래들은 병호에게 늘 이렇게 권유하곤 했다.
‘이제 일은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 식당은 그만 정리하고 노년 편하게 보내라.’
그렇지만 병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한창 젊었던 30대 중반, 도박과 사업 실패 이후 이어진 8년 간의 경제적인 고난은 그에게 ‘지속적인 수익을 안정적으로 창출해 주는 무언가’에 대한 깊은 갈망을 심어 주었다. 흔히들, 요즘 사람들은 ‘파이프라인’이라고 부르곤 하는 그것 말이다.
그런 만큼 10억이든, 20억이든. 병호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식당을 절대 넘길 의사는 절대 없었다. 장사가 안되면 모를까, 병호의 식당은 월세나 급여 같은 고정비를 제외하고라도 많지는 않더라도 매달 어느 정도의 이윤을 고정적으로 남기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박병호에게 있어서 <박가네 불고기>는 그저 단순한 식당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박가네 불고기>는 그에게 황금알을 꼬박꼬박 낳아 주는 거위일 뿐 아니라, 빚에서 허덕이던 그의 인생을 오랜 시간에 걸쳐 구원해 준 구세주이기도 했다.
단지 은퇴할 나이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황금알을 일시불로 받고 거위는 생판 남에게 넘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병호는 이 거위를 쥘 수 있을 때까지 쥐고 있을 셈이었다.
그리고 박병호는 일찌감치 겪은 인생의 실패를 통해, 황금알이 거저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대가로 병호는 자신의 헌신을 지불했다. 몸을 갈아 식당 영업에 힘쓰고 이윤을 재투자하는 한편, 주력 메인 메뉴인 석쇠 불고기 외에 뷔페의 메뉴를 시즌마다 새로 개발해 교체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두 다리가 허락하는 한 그는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현역으로 일할 것이었다.
때문에 병호는 평소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무척 신경을 기울였다. 63세의 한 해를 고작 두 달여 남긴 이 시점에서 그의 인생 스테이터스는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박병호 (63세)]
- 아내, 없음.
- 딸, 있지만 동거 안 함.
- 집, 있음.
- 돈, 있음.
- 대출, 있음.
병호는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내도 없고, 딸과도 같이 살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나이는 이제 슬슬 몇 년 내로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해지는 독거노인으로의 길 초입에 접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스스로 한창때인 현역처럼 일하면서 산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그는 노인 예정자인 것이다. 실제로도 나이가 60이 넘은 뒤로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난 듯 조금씩 아파와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병호는 꽤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 스스로 자신의 몸을 스스로 알아서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을 챙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병호는 사업 실패로 방황하며 떠돌던 젊은 시절 갖은 고생을 했다. 그 시절에는 몸도 건강도 잘 챙길 수 없었다. 실제로 그 인생의 암흑기와도 같았든 그 시기에 병호는 몸이 성한 데가 없었는데, 병원에 가서 검사만 하면 다 이상이 없다고 했었다.
그게 병호를 미치게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찾아간 신경 정신과에서 신경 안정제를 처방받고 나서야 모든 증상이 나았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병호는 자신의 몸이 언제든 또 그렇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스트레스성 질병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박병호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일단 자신의 삶의 흐름을 본인이 시도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흐르게끔 만드는 집념을 가진 남자였다. 그렇기에 병호는 자신의 건강 염려증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식당 운영을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삶을 엄격하게 규칙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른 바, 규칙적이고 균형잡힌 삶이었다.
박병호가 자신의 인생 롱런을 위해 설계한 일반적인 루틴은 다음과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6시 30분 무렵에 눈을 떠서 아파트를 둘러싼 뒷산으로 올라가 등산을 하고, 사우나에 간다. 사우나를 마치면 잠깐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걸어서 10분 거리의 식당으로 출근한 뒤, 오픈 30분 전 직원들과 함께 가게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리고 11시에 가게를 오픈하는 것이 그의 고정적인 모닝 루틴이었다. <박가네 불고기>는 설날 당일과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는 쉬는 날이 없었으므로, 사실상 그는 식당 오픈 이후의 거의 모든 날을 규칙적으로 이 삶의 패턴을 유지해온 것이다.
그렇기에 병호에게 그것은 이제 단순한 루틴을 넘어선 일종의 리추얼에 가까운 행위가 되었다. 박병호라는 인간의 활기찬 하루의 시동을 걸어 주는 신성한 절차 말이다.
대체로 그 리추얼은 지난 17년 간 큰 문제없이 규칙적으로 이어져 왔고, 그렇기에 박병호는 그런 리추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어떤 급작스러운 지장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솟거나 하지 않는 이상 박병호라는 남자는 우직하게 자신의 리추얼을 수행할 예정이었으므로.
그런데, 어느 화창한 가을날.
바로 그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
그날 아침, 병호는 언제나처럼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자마자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뒤쪽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40분 코스의 뒷산 등산로가 나왔다.
이제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고 있어서인지, 가을이라서 그런지. 상쾌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드는 그런 날이었다. 매번 등산을 하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를 비우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가끔은 그런 그의 노력이 잘 먹히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병호는 잠시 등산로 한복판에 멈춰서 숨을 고르며 잠시 자신을 잠식하는 생각에 젖어들었다.
병호를 멈추게 하는 생각들은 그때그때 달랐다. 그러나 최근의 병호가 떠올리는 생각들은 대부분 하나의 같은 주제로 귀결되었다.
가영의 남자친구와 그 일가족이 마지막으로 가게에 왔다 갔던 게 벌써 두 달도 더 전의 일이었다. ‘다음번에는 정식으로 상견례 자리에서 뵙죠’ 라던 준성의 어머니의 말에 그는 순간적으로 울컥하여 눈물을 흘릴 뻔했다.
63세의 나이에도 남자답게 바짝 깎은 빡빡머리를 하고, 항공 점퍼를 입고 등산하는 이 사나이 박병호가 말이다. 60이 넘고 나서는 부쩍 눈물샘이 약해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세상에 하나뿐인 딸래미, 가영과 연관된 일에서는 유독 그 눈물샘이 더욱 약해지곤 했다.
순간이지만 병호는 그렇게 뭉클했다. ‘드디어 딸을 시집보내는 날이 오는구나’ 싶어서, 지난 살아온 세월이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눈가에 눈물이 핑 고일 정도로.
그런데 문제는 그 후로 뭔가 이후의 진행에 대해서 그 누구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명확하게 상견례 날짜를 잡자고 했던 준성의 어머니의 말이 무색하게, 아직까지 애들한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특히 못해도 1~2주에 한 번은 주말마다 식당에 와서 얼굴을 비추던 가영은 그날 이후로 두 달간 대체 뭘 하는지 주말에도 바쁘다며 발길을 끊은 지 오래였다.
다른 집 부녀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병호와 가영은 서로 용건이 없으면 굳이 전화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특히 안부 전화 같은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어차피 가영이 주말에 꽤 자주 가게에 들르는 편이었기 때문에 굳이 전화 통화할 일도 많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병호 입장에서는 아무리 딸이 한동안 연락이 없더라도 별다른 용건이 없는 상태에서 딸에게 불쑥 전화를 걸기가 조금 어려웠다. 자기 딸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병호가 마지막으로 딸의 얼굴을 보고 대화했던 것은 준성의 가족이 왔다 간 두 달 전의 그날이었다. 그 날은 하필 준성을 포함한 그의 가족을 모조리 돌려보낸 딸이 제게 버럭하고 화를 낸 날이기도 했다.
‘대체 왜 맨날 저 집 식구들에게 그렇게까지 저자세로 나가는 거야? 뭔 죄 지었어?’
병호는 그날 가영이 화나서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채 쏘아붙이던 말을 떠올렸다. 아무리 사나이 박병호라지만, 나름 저를 위해 갖은 애를 쓰며 하루 반나절을 헌신한 끝에 돌아온 것이 딸의 그런 사나운 반응이라면 마음에 생채기가 나기 마련이었다.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영이 시집갈지도 모를 그 집 식구들 앞에서 자꾸만 약해지고, 주눅이 드는 자신의 마음을 말이다.
병호는 가영의 아버지였지만, 언제나 살면서 스스로 아버지의 의무를 제대로 다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가영에게 안정적인 가정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했으며, 성장기의 대부분을 친척 집에 맡겨두었고, 경제적인 부양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나마 가영과 함께 살았던 시절에는 매일 같이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며 좋은 부부 관계의 모범을 보이지도 못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가영이 썩 비뚤어지지 않고 그럭저럭 올바르게 자라난 것은 오히려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병호는 확신이 없었다.
병호는 종종 딸을 일컬어 ‘하늘에서 보내준 손님’이라고 하는 표현을 애용하곤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딸은 때때로 정말로 ‘손님’ 같이 느껴졌다. 떨어져 산 시간이 길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DNA를 물려받은 딸인데도 병호는 자신의 딸을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박병호의 삶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가영은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의 손을 잡고 고모의 집에 맡겨졌다가, ‘~14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뿅! 하고 나타난 성인 역 배우와 같은 느낌이었다. 14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에서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자기 딸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고, 지나간 세월은 아쉽지만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딸이 대학에 간 이후로는 1,2주에 한 번씩 만나며 지난 세월을 상쇄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고, 아직까지도 자주 얼굴을 봤지만 그래도 뭔가 좀 부족했다.
그리고 그것은 뿌리 깊은 원죄 의식이 되어 병호의 마음 내부에 깊숙히 자리잡았다. 그렇게 버젓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뿐인 딸의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병호는 걱정됐다.
평범한 가정의 형태를 경험해 보지 못한, 한부모 가정의 자식인 자신의 딸이 과연 시집가서 잘 살 수 있을까? 제 부모와도 같이 오래 살아본 적 없는 아이가 남편의 부모인 시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남편의 사랑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까?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병호는 확신이 없었다. 가영에게 확신이 없었다기보다는, 그 부녀가 살아오면서 구축해 온 남다른 가족 관계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자꾸만 준성의 부모 앞에서 저도 모르게 저자세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그 집 식구들한테 자꾸만 뭐 하나라도 더 쥐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부족한 점이 많은 제 딸래미를 식구로 잘 받아달라고 어필하고 싶었다. 그런데 예민한 데다 자존심까지 높은 가영은 이미 그런 병호의 마음을 다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멈춰서 생각하는 사이 어느덧 맑은 아침 해가 쨍쨍하게 나무 그늘 사이로 비쳤다. 나무 아래 서서 그림자를 두른 병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보니 그날 가영과 한바탕 다투고 난 뒤 한 번도 서로 연락하지 않은지도 벌써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달이 되었다. 비록 당시에 가영이 화가 많이 난 상태긴 했지만, 어차피 준성의 어머니가 한 말도 있고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애들끼리 날짜를 잡아 알려주는 전화 정도는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로 아무 말 없이 시간이 벌써 이만큼이나 지났다. 병호는 갈수록 초조해졌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산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매일 아침마다 심란할 바에야, 차라리 그냥 껄끄러움을 무릅쓰는 게 낫겠어.’
병호는 산길을 향해 멈췄던 걸음을 다시 내딛으며 결심했다. 이따 집에 돌아가면 왜 그날 이후로 정작 상견례 날짜를 잡았다는 연락이 없는 것인지 가영에게 한 번 전화해서 물어보기로.
병호는 그렇게 마음먹고 등산을 끝내고 사우나까지 잘 마쳤다. 옷을 갈아 입으러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병호는 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들어가자 마자 전화 한 번 해 봐야지.’
그리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 복도를 걸었다. 그런데 집 방향으로 한 중간 쯤 걸어갔을 때쯤, 문득 눈앞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의외의 장면에 병호는 놀라 굳어버렸다.
그렇게 놀란 표정으로 복도 중간에 멈춰 선 병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집 현관문 앞에 잔뜩 쌓여 있는 박스들.
그리고 그 옆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캐리어 하나를 끌고 서 있는 한 젊은 여자.
… 아니, 자신의 딸.
박가영이었다.
“아빠, 왔어?”
복도를 걸어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가영이 병호를 발견하고 인사했다. 가영은 병호 쪽으로 몸을 돌리며 웃었다.
“타이밍 딱 맞았네. 잘 됐다, 비번 몰라서 전화하려고 했거든. ”
병호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현재 시각은 평일 오전 9시경. 그 말인즉슨, 병호의 딸은 지금 이 시간에 이곳 복도에 존재할 사람이 아니었다.
“… 네가 여기 왜 있어?”
병호의 목소리엔 의심이 가득했다.
‘혹시 귀신인가?’
아니 근데 귀신이라도, 저 짐들은 또 다 뭔가 싶은데.
‘배낭이며 캐리어며…. 뭘 저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온 걸까?’
순간 상황을 파악하는 병호의 등줄기로 쎄한 감각이 스쳤다.
“…이 짐들은, 대체 다 뭐고?”
그 말에 가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오피스텔 정리했어.”
“뭐? 왜?”
가영의 말투는 평소와 비슷했다. 하루아침에 살던 오피스텔을 뺐다는 게 그다지 별 일이 아닌 것처럼. 그냥, ‘나 어제 뭐 먹었다.’ 그런 말투에 더 가까운 그 평상심과 지나친 일상성이 병호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
“나 퇴사했거든.”
툭, 던진 말이었지만 그 단 한 문장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병호의 턱이 저항 없이 아래로 벌어졌다. 마치 머리라도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체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병호가 뭐라 대꾸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 사이, 뒤이어 더 폭탄 같은 말이 떨어졌다.
“아, 그리고 남자친구랑도 헤어졌어.”
“뭐어!????”
병호의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가 놀란 목소리라기보다는 비명소리에 가까웠다.
갑자기 병호가 큰 목소리를 내자 가영은 살짝 놀란 듯 미간을 찌푸리며 한쪽 손을 올려 귓구멍을 잠시 막았다 뗐다.
단말마 같은 비명소리 뒤, 뭐라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조용해진 병호를 보며 가영이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여기서 신세 좀 질게.”
여전히 이 상황 자체가 그다지 대수로울 것은 없다는 듯 지극히 일상적인 말투였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