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영,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온 인간 박가영의 스테이터스는 다음과 같았다.
[박가영 (35세)]
- 직장 없음.
- 남편, 자식? 없음
- 남자친구, 있다가 없음.
- 돈…. 있을 리가 없음.
그렇게 대충 자신의 객관적인 상태 값을 확인한 가영은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월세 들어서 살던 오피스텔을 바로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았다.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서 살자.’
… 라는 생각을 최초에 가영의 머릿속에 심어준 것은 놀랍게도 가영의 (이제는 구)남친인 강준성이었다. 물론, 준성 본인은 지금쯤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가영은 준성과 이 문제로 몇 번 다툰 적이 있었다. 준성이 가영과 만나는 동안 그녀의 특수한 성장 환경에 대해서 그다지 심각하게 딴지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씩은 이렇게 말해서 속을 긁은 적은 있었다.
“그래도 결혼 전에 아버님하고 한 번은 같이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 너 그러다 나중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한다.”
준성의 논리는 간단했다. 결혼하기 전에 단 몇 년 만이라도, 오피스텔 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가 있는 경기도의 본가에서 살면서 출퇴근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비록 교통비는 좀 들지 모르나, 본가에서 회사를 다니다 보면 확실히 이런저런 비용도 절감되고 결혼 자금을 모으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그리고 겸사겸사 거기에 더해서,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추억도 쌓고 여태껏 평생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던 '딸 노릇'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 준성은 진심으로 가영을 생각해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가영도 그런 준성의 마음을 이해하긴 했다. 나중에 먼 훗날 시간이 지난 뒤에 가영이 ‘기회가 있었을 때 한번 남들처럼 아버지와 같이 살아볼 걸.’ 하고 후회할까봐 걱정된다는 그 마음 말이다. 그렇지만 가영은 그 기저에 깔린, ‘남들처럼’이라는 전제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준성이 이야기하는 ‘남들처럼’이란 결국 ‘평범한 가정을 꾸린 다른 사람들처럼’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결국 준성의 제안에는 어느 정도 본인을 위한 숨은 목적이 있었다. 준성은 가영이 자신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 전의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일반적인’ 형태의 가정생활을 경험해 보길 원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준성이 가영에게 느끼는 불안함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연히 당시의 가영은 그런 준성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빠와 같이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20대 초반에 아빠와도 직접 논의해 본 적이 있었고, 애저녁에 기각된 사안이었으니까.
그런 만큼 오늘 아버지 집의 현관문 앞에서 이런 대사를 내뱉는 가영의 모습은….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녀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여기서 신세 좀 질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예전에 준성이 그렇게 권할 때는 마음이 전혀 동하지 않더니. 아무래도 상황이 변해서 그런가. 어쨌든 가영은 이제 직장도 없어지고 그저 퇴직금과 월세 보증금을 최대한으로 끌어서, 당분간의 생활 자금을 확보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니 원활한 백수 생활을 위해 당분간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는 것쯤 뭐 어떤가 싶어졌다. 막상 결심하니까 전혀 별 것 아닌 일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피해왔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박가영은 35살의 나이에,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회귀하여 캥거루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단지, 또 다른 당사자인 박병호가 그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았을 뿐이다. 가영이 집 앞에 들이닥친 바로 그날 아침에 말이다.
***
아직 다달이 100만 원 넘게 갚아야 할 주택 담보 대출이 20년은 더 남아 있는 병호의 방 3개짜리 아파트에는 언제나 비어있는 손님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에는 옷장 하나와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실, 그 방은 병호가 가영을 위해 마련해 둔 방이었으나 정작 그 방을 사용하는 것은 1년에 한두 번 정도로 손에 꼽았다.
본인이 다니던 서울의 대학 근처의 오피스텔에 일찌감치 보금자리를 마련한 가영은 웬만해서는 좀처럼 병호의 집에서 자고 가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새해 전날만큼은 병호의 집에서 자고 갔다. 애초에 정이 흘러넘치는 딸래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해를 맞이하며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만큼은 가족끼리 같이 있어야 한다는 나름의 신념이 있는 듯했다.
그렇게 아침 댓바람부터 이삿짐과 함께 무작정 들이닥친 가영은 앞으로 이 집에 살며 그 방을 쓰겠다고 했다. 멀쩡히 살던 오피스텔을 정리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간단히 말했다.
“나 이제 백수라 한동안 고정 수입이 없을 것 같거든? 근데 계속 오피스텔에서 살면 다달이 관리비도 나가고 그렇잖아. 그래서 그냥 하루라도 빨리 보증금 받아서 나오는 게 합리적일 것 같아서.”
물론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딸의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그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단지, 병호의 입장에서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러워서 문제지.
“넌 대체 이런 걸 왜 미리 말도 없이…”
“그게 나도 미리 말하려고 했는데, 마침 방이 너무 빨리 빠져서 급하게 빼주느라고 정신이 없었어. ”
살림을 합치는 것.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엄청난 상황이었다. 각각 8살과 36살의 나이에 헤어졌던 이산 가족이었던 두 사람이, 27년 만에 다시 한집에 같이 살게 된 것 아닌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게 대체 무슨 문제가 되냐?’는 듯 태연자약하게 구는 가영의 모습에 병호는 정신이 나가다 못해 약간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솔직히 예전에는 병호도 딸과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헤어질 무렵 8살에 불과했던 딸은 볼 때마다 쑥쑥 컸다. 그런데, 사업에 재기하는 것에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랬기 때문에 이후 병호가 예전에 졌던 빚을 어느 정도 갚고, 35년 만기 대출을 껴서 겨우 이 집을 마련하고 나서 딸에게 같이 살자고 권했을 때.
‘나 그냥 자취할래. 지금 집이 학교도 가깝고.’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딸이 비교적 단칼에 제 제안을 거절했던 것도 서운하지만 이해했다.
병호가 생각하기에도 이제 와서 한 집에서 다시 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 두 사람 모두 각자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가슴은 아팠지만, 어쩌면 이렇게 각자 따로 살면서 주기적으로 자주 얼굴을 보며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애써 납득했다.
그 상태로 어영부영 세월이 흘렀고, 병호는 ‘아무래도 자식하고 같이 살 운명은 내 팔자에는 없는가 보다’ 하고 상황을 적당히 체념했다. 그러고 나서는 오히려 편했다.
솔직히 주변에 보면, 머리가 다 큰 30대 자식들을 아직 독립시키지 못하고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힘들어하는 또래들도 많았는데. 가영은 일찌감치 독립하여 그럭저럭 제 삶을 자신이 야무지게 알아서 잘 꾸려가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이렇게 가끔씩 얼굴이나 보고 사는 게 서로에게 더 적합한 가족의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나름대로 현실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이렇게 …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이닥친 딸하고.
마치 무슨 날벼락 맞듯이 동거하게 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병호가 잠시 말을 잃고 멍하니 있는 사이, 눈앞의 가영은 집게핀으로 머리카락을 틀어 올렸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제 방에 들여놓은 짐을 뜯어 풀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병호 쪽을 쓱 쳐다보았다. 병호와 눈을 마주친 가영은 급한 대로 일단 현관 쪽에 옮겨 놓은 상자들을 보고 턱짓했다.
“뭐해? 그 상자들 좀 여기 넣어줘.”
63세 박병호는 딸의 말에 무심코 몸을 움직여 옆의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지금 딸이 차지하고 있는 손님방으로 상자를 차곡차곡 옮기기 시작했다. 마지막 상자까지 다 옮겼을 때에서야 비로소 병호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니,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폭풍처럼 가영에게 마냥 휩쓸리던 상황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나자, 현실 자각 타임과 함께 걱정이 태산같이 몰려왔다.
박가영 저거, 저거. 가뜩이나 엄마 없이 커서 까칠하고 저밖에 모르는데. 그나마 오랜 시간 만난 그 남자 친구가 직장도 건실하고, 집안 식구들도 다 괜찮은 것 같았는데. 가영에게 자신이 제대로 느끼게 해 주지 못했던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제대로 된 가정환경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홀아비인 자신이 혹시라도 가영이 그 집에 시집가는 데 누라도 될까 봐 언제나 눈치 보며 정성을 다 해 왔는데, 그런 자신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헤어졌다니?
“잠깐만, 너. 잠깐 멈추고 얘기 좀 제대로 해봐.”
병호의 말에 가영이 한창 박스를 뜯던 손을 멈추고 병호를 빤히 올려다봤다.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는 왜 때려쳤어?”
“단가가 안 맞아서.”
“뭐?”
가영은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후비적거렸다.
“아니 뭐, 나보고 기둥이 되라더라고. 회사의 기둥. 몇 년은 더 개같이 희생하라는데, 노동 강도 대비 단가를 따지면 아무래도 계산이 안 맞는 것 같아서 나왔어.”
병호는 황당했다. 며칠 전 8시 뉴스에서 요즘 직장인들의 입사 1년 이내 조기 퇴사 비율이 30% 이상이라고 떠드는 것을 보긴 했다. 병호는 그것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생각했다.
‘요즘 것들은 참 끈기가 부족하구먼. 나라가 어찌 되려고. 큰일이야.’
분명히 그렇긴 했는데.
그 ‘요즘 것들’의 범주에, 얌전하고 멀쩡하게 10년 넘게 한 직장에서 근속 중인 제 딸이 포함되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병호는 황당해 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앞으로는 뭐 할 건데?”
“몰라,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뭐?”
“일단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가영의 대답에 병호는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올해 받은 종합 건강 검진 결과 상으로 분명 혈압 문제는 없었는데…. 조만간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미리 말 안 했어?”
“미리 알았으면, 뭐. 아빠가 ‘그래, 그깟 회사 당장 때려쳐!’라고 했겠어?”
병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모태 사업가인 박병호는 태생적으로 용 꼬리보단 뱀 머리 체질이었다. 그로서는 10년 넘게 한 직장에서 용 꼬리로 살았던 박가영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병호는 남의 밑에서 일할 수 없는 체질이라 20대부터 이미 창업해서 자기 사업을 했었지 않나. 그러다 대박도 차 보고, 쪽박도 차 보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사실 한 때는 가영에게 식당을 물려줄 생각도 잠깐 했었고, 그와 관련해서 가영과 이야기도 해 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가영은 제 아버지가 사업하다 겪은 인생의 굴곡의 영향을 너무 직빵으로 맞아 버렸기 때문인지 사업만큼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사업 절대 못해. 평생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살고 싶어.’
병호는 그런 딸의 말이 조금 서운했지만 그래도 결국 딸의 마음을 존중했다. 실제로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란 게 무척 고되기도 했고. 아들이면 모를까, 딸인 가영이 자신과 같은 루트를 타서 굴곡진 인생을 살 필요는…. 굳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중에는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가영이 자기처럼 어려운 사업을 선택하지 않고 매달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고 복지도 좋은 회사에서 나름 성실하게 사무직에 종사하며 사는 것도 나름 괜찮은 거라고.
그런데….
직장을 저런 이유로 때려치웠다니. 정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거기에 문제는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럼 준성이랑은. 왜 헤어진 건데?”
“… 아빠.”
병호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제는 구)남친의 이름에 가영이 인상을 쓰며 표정을 딱 굳혔다.
“센스 없기는. 나 헤어진 지 몇 달 안 됐거든? 아직 실연의 상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라고.”
그 말에 병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병호는 답답한 마음에 가영을 다시 붙들고 물었다.
“네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 아니면 준성이가? 다시 연락은 해봤어?”
“에이 진짜, 구질구질하게!”
가영이 미간을 팍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그 꼬라지를 보니 병호도 문득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병호도 홧김에 말을 팍 내뱉어버렸다.
“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뭐가.”
“너 이제 곧 마흔이야. 네 나이에 직장도 없고, 남친도 없는 애가 어떻게 살겠냐고. 나중에 혼자 늙어 죽으려고 작정했어?”
“뭘 그렇게 단정하고 그래.”
가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빠도 그 나이에 혼잔데 잘 살잖아.”
그 말에 병호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전의를 잃은 병호의 얼굴을 무심하게 보며 가영은 태평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나, 마흔 아냐. 아직 5년 남음.”
그러고선 가영이 다시 귀를 후비적거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기로 맘먹은 것 같았다.
“아 몰라, 하여튼 뭐 다 어떻게든 되겠지. 너무 걱정 마. 미리미리 걱정하고 그러는 거 건강에 안 좋대.”
말을 마친 가영은 읏차-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잠시 기지개를 켜고는 허리가 뻐근한 듯 이리저리 상반신을 돌렸다. 그리고는 병호에게 물었다.
“근데, 집에 뭐 먹을 거 없어?”
***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 세상에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살면서 누구나 일정 시간 동안 일정한 양의 지랄을 부리게 되어 있는 법이라는.
전반적으로 꽤나 거친 삶을 살았던 사나이 박병호의 경우에는 그 지랄기가 질풍노도의 시기인 10대 무렵에 찾아왔다.
그 결과, 지금의 박병호의 몸에는 용 문신도 있고, 호랑이 문신도 (그것도 올 컬러로) 새겨져 있지만….
그래도 그는 마치 인생의 통과의례처럼 일찌감치 지랄기를 졸업했다.
이제 60대 초반의 나이가 된 그는 식당을 건실하게 운영하기 위하여 매일 아침 모닝 등산을 다니고, 사교 활동이라고는 기껏 동네 식당 연합회에서 가끔 술을 한두 잔씩 마시는 정도의 건전하고 모범적인 삶을 사는 모범적인 독신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박병호의 딸 박가영은 달랐다.
병호는 비록 사정상 딸의 성장기를 가까이서 지켜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박가영의 학창시절이 어땠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녀는 병호와는 정 반대였다. 학교 다닐 때도 별다른 사고도 안 쳤고, 대학도 장학금을 받으면서 성실하게 다녔다. 대학에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회사에서 10년 넘게 군말 없이 다니는 그녀의 삶은 누가 보면 그녀의 남다른 어린 시절을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꽤나 평탄했다.
부모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자식이 서포트가 없이도 저 혼자서 반듯하게 잘 자라준 것은 뿌듯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병호는 제 딸의 그러한 착실함에 오히려 가끔씩 불안해질 때가 있었다.
쟤가 아무래도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지랄을 부릴 것 같긴 한데.
그게 대체 언제일까?
그리고 병호의 그러한 걱정은 결국 현실로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제 집으로 쳐들어 온 딸래미의 모습과 함께.
그래, 내 딸인 이상 언젠가 사고 한 번은 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시기가. 내 딸의 지랄기가…
하필이면 내일모레면 마흔인 이 시점… 30대 중반의 나이에 덜컥 찾아와 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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