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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Jul 23. 2022

[10줄 문학] 당뇨 환자처럼

2022년 7월 18일 ~ 7월 22일


1. 애절한 스크리브너


매주 토요일은 운동을 한 뒤 좋아하는 카페에서 소설 <낭만적 퇴사와 그 후의 일상>을 쓴다.


때문에 엊그제 노트북과 키보드를 들고 카페에 갔을 때, 1부를 완결낸 뒤 쉬는 기간 도중 2부의 회차와 전개 내용을 스크리브너에 정리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집 컴퓨터에 2주 전에 저장해두고 그 뒤로 노트북에서 한 번도 스크리브너를 켜지 않아서일까? 동기화가 되어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문제는 내가 그 파일이 2부 내용을 정리하기 전의 파일인 것을 깜빡 잊고, 켜 놓은 채로 1부를 다시 읽으며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와이파이가 연결된 상태로 2시간이 지났고, 2부 첫 에피소드를 쓰려고 할 때쯤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혼비백산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빛의 속도로 자리를 정리하고 나선 나는 비를 맞으며 집까지 도보 15분 거리를 5분 만에 주파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 컴퓨터의 인터넷 선을 뽑아버리고 전원을 켜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물론 다 날려도 나는 다시 써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날리지 않고 쓰고 싶다고 간절히 빌었다.


다행히 파일이 살아있었고, 그 즉시 백업 파일 5개를 생성한 나는 브런치에 무사히 낭만퇴사 2부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2. 네 심장을 쳐라


얼마 전 동생이 일하던 마트에서 싸움난 썰을 들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엄마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다른 쪽으로 이동하다가 혼자 넘어졌다.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아이 엄마는 아이를 찾으러 와서는 아이 근처에 서 있던 다른 여자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 여자 때문에 아이가 넘어진 거 아니냐고 했고,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은 결국 마트 CCTV까지 돌려봤다.


CCTV에는 아이가 혼자 넘어진 것이 너무 명백하게 찍혀있었고, 민망해진 애엄마는 더 화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여자가 어이가 없었는지,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얘, 넌 나중에 너희 엄마처럼 되면 안된다."


그걸 들은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아쉽다. 나였다면 '너 나중에 커서 꼭 네 엄마처럼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거야."





3. 빤바지


나에겐 내 친구가 무척 싫어하는 바지가 하나 있다. 몇 년 전에 산 반바지이다.


친구는 그 바지를 볼 때마다 '그 빤쓰를 7만 9천원이나 주고 산 거냐'고 타박한다.


그러나 나는 청개구리 같아서 그 반바지를 무척 자주 입는다. 요즘에는 데일리템이다.


빤쓰 같은 반바지니까, 빤바지라고 부르면 되지 않나 하면서.


근데 빤바지가 한 개라 여름을 나는 게 너무 답답했다. 매일매일 빤바지만 입고 다니고 싶은데 하루 입으면 바로 세탁기를 돌려야 했으므로...


결국 참지 못하고 어제 밤에 빤바지를 깔별로 3개 더 샀다. 친구에겐...비밀이다.





4. 당뇨 환자처럼


공복혈당장애 판정을 받고 나서 유튜브를 찾아봤다. 그런데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당뇨 전 단계도 당뇨로 진행되는 과정 중이니 당뇨 환자처럼 관리하는 것이 좋다고.


그래서 요새 그냥 내가 당뇨 환자라고 생각하고 사는 중이다.


매일 밤 자정 12시가 되기 전 잠자리에 들어서 7시간, 8시간 깊이 자고, 세 끼 규칙적으로 먹으면서 매 끼 단백질 균형있게 챙겨먹으며 1시간씩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한다.


처음에는 건강검진 수치 때문에 습관을 강제 교정하는 것이 괴롭게 느껴졌지만, 한 일주일 이렇게 살아보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이렇게 사는 게 건강에 나쁠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진작 이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건강검진 결과가 계기가 되어 실행하게 된 것 같았다.


어차피 유병장수 시대라면, 내가 한 살이라도 더 젊고 건강할 때 이런 걸 알게 되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다. 


어차피 췌장과 인슐린은 평생 써야 하지만 수명이 한정된 소모품이니, 지금부터라도 아껴 쓰면 좋은 것이다.





5. 엄마 혹은 채미연씨



얼마 전 아버지의 친구가 가게에 찾아왔다. 동생과 나, 아버지와 아저씨가 함께 밥을 먹었다.


아저씨는 동생에게 말했다. 너는 절대 너네 엄마같은 여자 만나면 안된다고.


동생은 그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엄마? 채미연 씨요?"


그 말에 앉은 자리에서 모두 빵 터져서 웃었다. 엉뚱하긴 했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이 세상에 혈연으로 태어났으나 '엄마'라는 말보다는 '채미연 씨'가 더 어울리는 사이가 된 우리.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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