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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Sep 04. 2022

17. 횡령이 제철

NOW OR NEVER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17. 횡령이 제철



 가영은 그 다음날 바로 병호의 손에 이끌려 은행에 가게 되었다. 그녀는 <박가네 불고기>가 사용하는 개인 사업자 통장에 연결될 수 있도록 스마트폰 뱅킹과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추가 신청했다.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치고 ID와 초기 비밀번호가 적힌 뱅킹 서비스 가입 신청서를 손에 꼭 쥐고 은행을 나온 직후. 병호가 가영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이게 네가 할 일이다.”


 그렇게 박가영은 얼렁뚱땅 <박가네 불고기>의 결산 담당자가 되었다. 이제 가영은 집에서 놀긴 하지만, 마냥 놀지는 못했다. 가영의 역할이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다. 


 식당 거래처에서 발행한 세금 계산서를 확인하고, 인터넷 뱅킹으로 거래 대금을 지불하는 간단한 일부터 노무사에게 인건비를 신고하고 직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까지 갑자기 가영의 역할이 되었다. 

 평일 한낮인 지금도 가영은 홈택스에 들어가 <박가네 불고기>에 발행된 세금계산서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통장 지출 내역과 세금계산서의 매입 내역을 날짜 별로 맞춰보던 그녀는 문득 이 상황이 어이가 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천하의 박가영이 재무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다니.’


 가영은 회사를 다닐 때 재무팀이나 감사팀만 보면 괜히 쫄아서 피해 다니곤 했다. 그런데 가영이 바로 ‘그’ 재무팀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좋든 싫든 이제 그녀는 <박가네 불고기>의 회계 담당이 되었고, 어딜 가든지간에 항상 OTP를 들고 다녀야 했다. 이것들만 있다면 가게 통장에서 한 번에 돈을 몽땅 인출해서 튀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물론, 박병호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박가영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는 않았다. 이 외에도 병호가 가영에게 부탁한 일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카운터의 현금 시재를 맞추는 것이었다. 


 작년 연말에 홀 매니저가 그만둔 뒤로 병호는 매일 그날그날 카운터에 쌓인 현금을 집으로 들고 와서 일일이 계산하고 직접 맞춰봤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루종일 주방에서 일한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 온 60대의 남자가 하기에 영 적합한 일은 아니었다.


 이제 병호는 집에 들어오면 POS에서 뽑은 그날 메뉴별/결제수단 별 매출이 적힌 일 정산 영수증과 함께 흰 봉투를 하나 들고 왔다. 거기에는 그날 POS에 쌓인 현금이 몽땅 들어 있었다. 그러면 가영은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 테이블 위에 봉투를 까고 돈을 세고, 다음 날 시재인 30만 원에 맞춰 돈을 다시 넣어두었다. 그러면 병호가 그 시재 봉투를 들고 출근해서 또 하루 장사를 하는 형태였다. 


 시재를 제외한 수익은 수익은 적게는 20만 원에서 많을 때는 60만 원을 넘을 때도 있었다. 병호는 가영에게 그 돈을 어디 따로 잘 보관해두라고 했다. 


“가게 통장에 있으면 자꾸 이것저것 돈 쓸 일이 생겨서 빠져나가니까, 현금 수입은 따로 잘 보관해 둬.”


 그 말에 가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말이 ‘보관’이지. 이건 그냥 가지고 있으라는 거 아닌가?


그런 가영의 표정에 병호는 뭔가 위험한 낌새를 챘는지 황급히 덧붙였다. 


“너 그거 따로 모아 두라는 거지 그냥 막 써버리라는 거 아닌 거 알지? 어느 정도 모이면 다시 가게 통장에 입금해야 돼. 혹시 가게 일로 급하게 쓸 일 있을 때 대비해서 비상금으로 따로 모아두는 거라고.”

“아빤. 내가 돈 쓸 데가 어딨어? 걱정 마.”


 이제 와서 말이지만 사실 이때의 병호는 완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그래도 병호는 이때까지만 해도 근수의 의견을 따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근수 말대로 가영이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를 잘 다루는 것은 사실이었다. 회계 담당으로서 가영은 꽤 효율적이었다. 병호가 하나하나 계산기를 두들기고, 손으로 일일이 써서 해결했던 것을 그녀는 노트북을 조작하여 한번에 다 끝내 버리곤 했으니까.


 처음에는 ‘이걸 왜 갑자기 다 날 시키는 거야?’라고 툴툴대던 가영도 막상 일을 맡게 되자 본인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이 일을 맡았을 때 그녀는 병호가 여태까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나하나 수기로 처리하고 있었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 하필이면 그것들이엑셀로 계산하면 1분도 걸리지 않을 일들이어서 더 그랬다. 


 이토록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것을. 그동안 병호가 혼자 A4 용지에 하나하나 글씨로 써서 계산기를 두들겨 대고 있었을 것을 생각해 보니까 마음이 좀 짠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가영은 아버지가 가게를 운영하면서 수기로 기록해왔던 모든 것 - 일별/월별 손익 계산, 세금 관리, 거래처 관리, 인건비 관리 등등 - 을 전부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자동화 작업으로 전환했다. 다행히 회사 다니면서 일하던 쪼가 있어서 문서 작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병호가 처음 이 일을 맡긴 이후로 한 달 정도가 지날 때쯤엔, 가영 또한 이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였다. 그렇게 가영에게 잡무를 맡기기 시작한 뒤로는 병호도 나름대로 여유가 생겼는지 일에 대한 부담을 한결 덜게 되었다. 


그래서 병호는 홀 매니저가 그만둔 이래로 가게와 관련하여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빠서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던 사회생활을 조금씩 시작했다. 가게가 바쁘지 않을 때는 잠시 주방과 홀을 직원들에게 맡겨두고 친구들과 잠깐 스크린 골프도 치러 가고, 사우나도 하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근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님, 잘 지내셨어요?]

“어, 근수야. 덕분에 잘 있다.”

[제가 뭘요. 가영이가 그래도 일 잘하나 봐요?]

“응. 솔직히 못 미덥긴 한데 그래도 훨씬 편해졌어.”

[하하, 그거 잘 됐네요! 그럼 형님 오늘 혹시 시간 되세요?]

“오늘?”

[네. 오랜만에 정식이가 한번 보자는데, 형님도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정식 또한 근수와 같은 병호의 고향 후배였다. 근수만큼 병호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에 오다가다 몇 번씩은 본 사이였다. 얼마 전 정년 퇴임하고 다시 고향에 내려갔다고 들었는데, 다시 올라온 모양이었다. 


“그래, 그러지 뭐.”


병호는 흔쾌히 허락했다. 오늘따라 왠지 날씨도 좋은 것 같았다. 여전히 딸년이 백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모든 상황이 이 정도로 순조롭게만 흘러간다면 병호는 그 사실조차 그럭저럭 견딜 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그 사이, 가영은 웹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다만, 그녀가 최초에 예상했던 것에서 상황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지금 그녀가 텍스피아에 연재하고 있는 소설은 초기에 구상했던 대로 아이돌 오디션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얼마 전에 발생했다.


 한참 인풋을 하던 가영이 연재를 마음먹고 방 안에서 벽만 보며 하루에 5 천자씩 꾸역꾸역 쓰며 겨우 15편 정도의 비축분을 완성했을 무렵.


 그 정도까지 쓰고 나니 가영은 더 이상 벽보고 쓰는 것은 힘들어서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바로 그 날 텍스피아에 글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녀가 사이트에 들어가자마자 현대판타지 베스트 순위에 떠 있는 한 소설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간 잠시 못 들어온 사이, 베스트 순위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 작품의 제목은…


『메타돌을 프로듀스! 아이돌 서바이벌 참가자로 살아남기』


 제목을 읽는 박가영의 등줄기로 사악 소름이 끼쳐 올라왔다. 가영은 다급하게 그 제목을 눌러서 작품 소개와 키워드, 연재된 회차들을 살펴보았다.


 비록 연재된 지는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매일 2~3연참씩 거듭했는지 벌써 17화 정도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꼼꼼히 읽는 가영의 눈빛에 점점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그 소설은 가영이 지난 몇 주간 비축분을 만들겠답시고 기를 쓰고 노트북에 저장해 둔 그 소설과 세계관과 내용이 무척 비슷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메타버스와 연계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린스 메이커>를 참고한 구성이 그러했다. 이외에 메인 캐릭터의 성격이나, 주변 인물 캐릭터에 대한 설정도 대략 가영이 생각한 것과 비슷했다. 가영의 추측으로는 아마도 이 작가도 가영처럼 <프린스 메이커>를 보다가 삘이 와서 이 소설을 쓴 것 같았다. 


가영은 탄식했다.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은 이 세상에서 한 3명은 동시에 하고 있는 생각이라더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럴 수가 있는 거냔 말이다. 


하필 기껏 마음먹고 바로 '출발!'을 외치려고 하는데 딱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이야. 


가영은 우울한 기분으로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웹소설’ 폴더의 비축분 파일을 열었다. 

이대로라면 연재를 시작해봤자 기존에 베스트까지 올라간 작품의 아류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슴 아프지만 이 스토리는 폐기다.’


그렇게 여태까지 쓴 모든 글을 충동적으로 휴지통에 넣고 삭제해버린 뒤.

박가영은 한동안 충격을 받은 채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워 있었다.


 정성껏 준비한 플랜 A가 뒤집어지고 나니 이제 이 다음 스텝을 어떻게 밟아야 할지 너무도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희망을 잃은 동태눈깔을 한 채 스마트폰으로 SNS를 들여다보고 있던 가영의 눈에 기사 타이틀 하나가 스쳤다.


 『아이돌 오디션 <프린스 메이커> 출신 조윤성, 비연예인 여친과 럽스타 논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린스 메이커>는 이미 2월에 종방된 상태였다. 당시 박가영의 픽이었던 조윤성을 비롯한 8명의 프린스들은 데뷔조가 되어 4월에 있을 데뷔를 앞두고 열심히 트레이닝을 받는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데뷔도 안한 이 그룹에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그 대상이 하필이면… 박가영의 픽이었던 조윤성이었다.


 솔직히 이 나이가 되어서 남돌 덕질을 하면서 뭐 그들이 순결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연애도 한번 안 하고 수도승처럼 살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단순히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는 것과, 럽스타는 좀 다른 문제였다. 가영도 식스틴즈를 본진으로 두고 사이드로 수없는 남돌들을 스쳐가며 덕질을 했지만, 럽스타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팬들 보라고 운영하는 공식 SNS에서 팬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척 은근슬쩍 연애를 티 내는 행위를 보면, 아이돌로서의 직업의식 운운하기 이전에 지능이 좀 낮아 보였다. 그리고 박가영은 멍청한 놈들을 보면 정이 뚝뚝 떨어지는 인간이었다.


 <프린스 메이커> 최종 데뷔조의 소속사에서는 다급하게 '사실 무근'이라는 해명 기사를 냈다. 그렇지만 이미 너무 신빙성 있는 증거들이 많아서 거의 눈 가리고 아웅 수준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조윤성에 대한 가영의 마음도 차갑게 식어 버렸다. 


‘소속사가 안티가 아니고서야….’


 이제 박가영은 SNS에 올라오는 조윤성의 사진을 봐도 전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쯧쯧거리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직 데뷔도 안 한 새끼가. 꼭 그렇게 티를 내야만 속이 시원했냐?’


 문제는, 조윤성이 박가영의 뮤즈였다는 것이다. 웹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리고 꾸준히 벽을 보고 비축분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조윤성에게서 얻은 영감 때문이었다. 가영이 첫 작품의 설정을 짜는데 그토록 공들였던 이유도 바로 조윤성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조윤성만을 위한 가상의 세계관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순수한 덕후의 마음이었다.


그랬던 자신이, 이제는 뮤즈를 봐도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다니. 


 그렇게 가영은 한동안 모든 열정을 잃고 그냥 놀았다. 물론, 병호가 추가로 준 일에 적응하느라 한 달 정도를 보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마냥 논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동안 무언가를 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평일에는 원격으로, 주말에는 현장에서 식당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가영은 다시 서서히 웹소설을 쓰기 직전의 상태로 초기화되었다. 그녀는 이제 남는 시간에는 빈둥빈둥거리면서 인터넷 커뮤니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영의 눈에 한 게시물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K남돌 역대급 병크 랭킹 TOP 10』


 굵은 글씨로 표기된 게시글 제목 옆에는 지금 핫한 게시물이라는 표시가 빨갛게 띄워져 있었다. 가영은 제목을 터치하여 글을 열었다. 열린 페이지에는 한국 돌판 역사를 장식한 남돌들의 역대급 병크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커뮤니티 게시글 특유의 익살스러우면서도 냉소적인 말투와 함께 말이다.

글은 시상식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남돌들의 병크 순위가 사진과 동영상 등의 시청각 자료와 함께 낮은 순위부터 높은 순위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수록 드러나는 병크의 레벨이 더 심해지는 형태였다. 


 가영은 엄지로 화면을 쭉쭉 아래로 내리며 읽어 보았다.


 태업, 빠혐, 열애설, 양다리, 음주운전, 도박, 마약….


 읽다 보니 거의 다 가영이 아는 아이돌에, 아는 사건들이었다.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가영 자체가 벌써 2N년차 돌판 고인물이라 거의 KPOP의 산 증인이나 다름 없으니.


 가영은 스크롤을 내리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래, 이런 일들도 있었지. K돌판 진짜 다이내믹하다니까?’


 이런 상황에도 아직 KPOP 탈덕을 못하고, 또 새로운 남돌 유망주를 잡았다가 바로 뒤통수를 때려 맞다니. 가영은 그 사실에 살짝 자괴감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시선이 게시글 아래의 댓글창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박가영은 혼자가 아니었다. 온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핫한 게시글의 댓글에선 이미 가영처럼 연차가 찰만큼 찬 KPOP 고인물들의 불행 배틀이 펼쳐지고 있었다.





- 나 같은 사람 있어? 

정연승(10위) 태업 꼴 보기 싫어서 참다 참다 탈덕하고 노현제(8위)로 갈아탐 

⇒ 바로 일주일 만에 열애설 + 럽스타 터짐. 심지어 양다리 ㅋㅋㅋ

⇒ 마상 입고 다시는 K돌 안 판다 결심했는데 당시 에코 엔터에서 갓 데뷔한 신인그룹 귀여워서 좀 보다가 필립(7위)이 잡아버림. 근데 시발 ㅋㅋㅋㅋ 이 새끼 대기실에서 빠혐 녹취 터졌네? 바로 탈덕함. 

⇒ 너무 지쳐서 ‘그래, 그냥 오래 활동 잘하고 있는 군필돌이나 빨자. 오래가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오랜만에 완전체 컴백한 식스틴즈 신주원 잡았는데 나 입덕 한 달 만에 음주운전 걸림…. 그게 이 글 4위. 내가 가는 곳마다 완전 폐허였음….

 └님 진짜 대단하다. 다음에 누구 꽂히는 사람 있으면 꼭 알려줘. 공익을 위해서 제보해 줘야 된다.

 └ㅇㅋ

 └아니 근데 이 와중에 1,2,3위는 다 피했잖아. 그래도 마약 아닌 게 어디임? 안목 개그지는 아닌 듯.

└맞아, 솔직히 쟤네 병크 다 합쳐도 1위 못 이김 ㅋㅋㅋ 마약을 어찌 이기냐곸ㅋㅋㅋㅋㅋ

└평생 덕질 딱 한번 해봤는데 그게 마약 사범이었던 경우에 대하여….(또르르)

이런 걸 보면 역시 한국인은 한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민족이 맞는 것 같았다.




 가영도 그럭저럭 웃픈 마음으로 댓글들을 읽고는 있었지만, 읽다 보니 가슴 한편이 조금씩 따끔거려 오는 것이 어째 남일 같지가 않았다. 특히 대낮에 강남 도심 한복판을 음주 상태로 질주하여 당당히 4위에 이름을 올린 신주원을 보니까 더 그랬다.


 신주원은 가영의 식스틴즈 최애는 아니었다. 그래도 식스틴즈의 멤버인 이상 나름 정은 들었던 멤버였다. 다만, 그에 대해서는 마냥 곱게 보긴 힘들었다. 하필 그 음주운전 사건이 일어난 것이 오랜만에 완전체로 진행한 15주년 콘서트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고, 때문에 식스틴즈는 신주원의 공식 자필 사과문을 발표한 이후로 멤버 전원이 기약 없는 휴식기에 들어갔다. 사실상 가영은 신주원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최애 민혁을 볼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신주원 때문에 식스틴즈 공백기가 길어졌고, 가영은 본진을 잃었다. 이후 한동안 마음 둘 곳 없이 쓸쓸하던 가영의 마음속을 파고든 것이 바로 <프린스 메이커>였다. 그러니 신주원은 애초에 가영이 이 오디션에 과몰입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던 셈이다.


 가영은 다시 손가락으로 화면을 쓱쓱 올려 ‘4위 : 식스틴즈 신주원’의 사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거기엔 한 7년 전쯤 활동할 때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신주원의 전성기 시절 사진이 함께 게시되어 있었다. 탱탱했던 시절의 신주원을 보며 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주원 요즘 뭐하나?  SNS도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내후년이면 식스틴즈 데뷔 20주년인데, 정말 이대로 아무 이벤트도 없이 지나가려나? 

 올해까지는 멤버들 각자 뮤지컬이나 드라마나 찍지 가수 컴백 일정은 없는 것 같던데….


 아니, 차라리 안 나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요새 남돌들이 얼마나 컨셉 세고, 파릇파릇한데. 괜히 컴백한다고 댄스곡 들고 나왔다가 새파랗게 어린애들 사이에서 퇴물 취급당하고 조롱당하면 왠지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식스틴즈 멤버들은 대부분 가영의 동년배였단 말이다.

 그런 걸 생각해 보면, 그들도 참 고생이었다.


 물론, 남들은 아직 한창 학교에 다닐 나이에 데뷔해서 일찍부터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삶은 부럽긴 했다. 다만 사람은 누구나 늙기 마련이었다. 그들 또한 평생 아이돌 가수로 남는 것은 불가능하니, 조금이라도 인기가 떨어지기 전에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연기를 하든, 라디오 DJ를 하든, 뮤지컬을 하든 말이다. 멤버 전원이 30대 중후반이 된 식스틴즈도 아마 그런 인생의 제2의 커리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 30대 중반 백수 박가영처럼 말이다.


그 생각을 하니 어쩐지 기분이 씁쓸했다. 


그 잘 나가던, 반짝이던 본투비 아이돌 식스틴즈는 다 어디로 갔나? 


세월이 무상했다. 


‘그들이 다시 컴백한다 해도 또 잘 나갈 수 있을까?’


그때였다. 그렇게 잠시 또 구오빠들에게 과몰입하여 그들의 현재와 앞날을 걱정하던 중. 

문득 가영의 눈에 번쩍 하고 빛이 들어왔다. 


 ‘어쩌면…. 뭔가 이런 소재로 한번 써볼 수 있을지도?’

 그 생각이 등 즉시 가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는 바로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허벅지 위에 노트북을 올리고는 뭔가를 타닥타닥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후 가영은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 반 동안 꼼짝 않고 글을 썼다. 그녀가 마침내 마지막 온점을 찍고 모니터를 향해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화면에는 공백 포함 5천 자 분량의 글자가 채워져 있었다. 


 웹소설의 딱 한 회차 분량인 그것은, 어떤 작품의 1화이자 프롤로그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주인공은 한 30대 초반의 여자 오타쿠이다. 주 종목은 남자 아이돌. 

 그녀는 최애를 위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 상태다. 친구도, 애인도 없다. 직장에서 버는 월급은 족족 최애 굿즈를 사는 데 쓰고, 새 싱글이나 앨범이 발매되면 사인회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100장 이상을 일시불로 구매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최애의 공항 마중을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대로 기절했던 그녀가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이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그녀의 몸이 그녀의 몸이 아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빙의한 몸의 주인은 한때 인기가 있었으나 전성기가 지난 뒤 음주운전 병크를 터뜨린 노답 남돌이었다. 


 ...여기까지가 가영이 삘받아서 한순간에 다 써버린 1화의 내용이었다.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 내며 몇 주 동안이나 벽 보고 비축분을 준비했던 플랜 A와는 달리, 이 플랜 B에는 어떤 설정도, 플롯도 없었다. 


 그저 딸랑 1화만 썼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가영의 마음속에는 뭔가 활활대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이렇게 강렬한 계시를 내리는 것 같았다. 


‘NOW OR NEVER.’


때를 기다리면 늦는다고.


 가영은 강한 직감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삘이 팍 꽂혀서 첫 화를 갈겨버린 이 작품을 지금 당장  올리기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절대 연재를 시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마음을 굳힌 가영은 텍스피아에 로그인하여 필명을 설정했다. 그다음 ‘작품 등록하기’ 버튼을 누른 후 제목과 소개, 키워드를 입력했다. 모든 입력이 완료된 뒤, 바로 한글문서에 써둔 1화를 복사 붙여 넣기했다.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바로 ‘발행하기’를 눌러버렸다. 


 박가영의 웹소설 무료 자유 연재 데뷔작이자, 지름작인 <역대급 병크를 터뜨린 남돌에 빙의했다>.

미친 라이브 연재의 시작이었다. 









***






그렇게 가영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웹소설 연재를 시작하긴 했지만…. 

그 성적은 결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써지는 대로 휘리릭 써진 1화를 텍스피아에 처음 발행한 뒤. 


가영은 솔직히 조금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아, 이거 너무 기발한 것 같아. 재밌어서 대박 나는 거 아냐?’


 그렇지만 이렇게 설레발을 치며 두근거려하던 가영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놀라울 정도로.


그 아무도.


가영의 소설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독자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차가웠다. 가영은 그야말로 굴비처럼 짜게 식었다. 나름대로 매일매일 5천 자 씩을 짜내어 주 5일 연재를 한지 이제 열흘 남짓 된 참이었다. 


 나름 하루도 안 빼먹고 10화 정도까지 성실하게 올리고 있는데도 선호 작품 등록 수는 세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심지어 댓글은 0개였다. 10화 연재할 동안 댓글이 0.개.라는 얘기였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상상도 못 했던 무관심에 가영은 살짝 의기소침해졌다. 


 심지어 그녀에게는 나름 식스틴즈 2차 창작 쪽에서는 소소하게 인기를 누렸던 과거도 있지 않나. 그 과거의 영광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에겐 지금 상황이 한층 더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가영이 보기엔 본인 소설이 재밌었다. 물론 지금은 아직 소설 초반이라 설정과 전개를 빌드업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빵빵 터지는 구간이 나오진 않았다.  


 그렇지만 가영은 간과하고 있었다. 요즘 웹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빌드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웹소설 독자들은 한 편 한 편 서사를 쌓아 나중에 터뜨리는 이야기 구성을 좋아하지 않았다. 매 화 사건이 있어야 했고 매 화 기승전결이 존재해야 했다. 


 가영도 인풋을 많이 한 만큼 그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역시 직접 써보니 그렇게 쓰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영의 소설은 연독률이 처참했다.


 1화를 읽는 사람은 그래도 꽤 됐지만, 2화 정도부터는 연독률이 30% 아래로 떨어졌다. 작가 소개에 ‘첫 작품입니다 ^^’ ‘신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썼던 게 아무래도 좀 별로였던 것 같아서 지워봤는데도 연독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가영이 매회 조회수를 따져보니 현재 10화까지 따라오며 읽는 독자가 한 50명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쭉 이 상태로라면 베스트 순위에 오르기는커녕… 완결을 낼 때까지 심해에 묻혀 허우적거릴 것 같았다.


 보통 현대판타지는 컨택으로 매니지먼트와 계약한다는데.

 과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가영을 발견하고 컨택해줄까?


 가영은 새 회차를 올릴 때마다 박살나는 연독률을 보며, 자신의 웹소설 상업 데뷔 확률 분모가 무한대에 수렴하고 있는 것 같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와, 진짜 어떡하지 나?’


그래도 나름 글 실력도 있고 2차 창작 경험도 있어서, 웹소설 쓰기만 하면 데뷔까지는 어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텍스피아에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편의 소설이 쉼 없이 올라왔다. 심지어 매일 연재하면서 2편, 3편 연참까지 갈기는 작가들도 많았다. 신기하게도 그런 소설들 모두 하나같이 재미있었다. 베스트 순위에 오르는 소설에는 다 오를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치열한 전쟁터에서 가영은 출사표를 내밀자마자 된통 깨진 셈이었다. 그러면서 가영은  솔직히 본인이 약간은 웹소설을 만만하게 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가영에게는 나름대로 글쓰기에 대한 오래된 원칙이 있었다. 

바로 ‘일단 한 번 시작한 스토리는 꼭 완결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영이 먼 옛날 책가방을 매고 학교에 다니며 2차 창작을 할 때부터 꾸준히 지켜온 원칙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는 자신의 원칙을 고수할 예정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간다. 

지표가 안 좋더라도, 아무도 안 보는 것 같더라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완결을 내보는 거야.


 가영은 매일 같이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며 연재를 지속했다. 

 물론 생각보다 낮은 조회수에 의욕이 스르르 빠져나갈 때도 많았지만, 그때도 가영은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뭐,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결국 가영은 동기 부여를 위해 제 책상 앞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인용구를 써서 붙여두었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노인과 바다.」











***




  생애 첫 연재를 시작한 웹소설의 성적이 생각보다 부진한 것은 가영에게는 분명 서글픈 일이었다. 그래도 가영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웹소설이 잘 안 풀린다 하더라도,  아직 그녀의 인생에는 또 다른 희망이 남아 있었다.

 

바로 무나틱 코인이었다. 


 그녀는 반응 없는 글을 쓰다 힘이 빠질 때마다 한 번씩 구글 검색창에 무나틱 코인 일 시세를 검색해 보았다. 가영이 혜진과 만나서 처음 무나코인을 100만원 어치 매입했던 그 날. 당시 개당 8천 원이었던 그 무나틱 코인은 지금 12,000원으로 올라 있었다. 그 사이 가치가 50%나 오른 것이다. 


 무나틱 코인 시세 차트의 곡선은 가영이 무나틱 코인을 소액 매수하여 첫 스테이킹을 했던 시점 이후로 계속해서 상승 곡선을 타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영이 그 과정에서 스테이킹으로 얻는 수익은 크지 않았다. 씨드가 고작 100만 원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영은 CMA에 넣어 보관해 두었던 자신의 퇴직금 절반과 오피스텔 보증금을 반씩 나누어 무나틱 코인을 추가로 매수했다. 9,500원일 때 절반을 샀고, 11,000원일 때 절반을 더 샀다. 가영은 그렇게 총 1,600만 원을 MOONATIC Base에 더 투입했다. 그리고 매번 돈을 더 넣을  때마다 바로바로 스테이킹을 했다.


 씨드가 1천만 원대로 좀 커지니 그제야 스테이킹을 할 맛이 났다. 가영에게 무나틱 코인에 대해 처음 알려줬던 혜진이 가영에게 ‘큰돈으로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던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분할 매수에 대해서는 혜진에게도 일단 비밀로 해둔 상태였다. 


 혜진의 걱정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가영이 사고 나서 무나틱 코인의 시세가 저렇게 팍팍 오르는 것을 보니 자꾸만 욕심이 나는 걸 어쩌란 말인가.


100만 원의 50%면 50만 원이지만, 

2천만 원의 50%면 1천만 원 아닌가?


 게다가 어차피 스테이킹을 해 두는 것은 은행에 예금을 해두고 이자를 받는 것 같은 거니까, 무조건 원금이 큰 게 좋다고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어차피 CMA 계좌에 넣어놔도 이자는 연 2%다. 그러니 단순히 연 6% 정도의 이자만 생각해 봐도 그냥 무나틱에 몰빵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물론 무나틱 코인은 가상화폐라는 리스크가 있긴 했지만, 이 시점에서 가영은 그 사실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코인 시총 7위라잖아. 안정성도 있고, 이자도 은행 이자보다 많이 준다 하고.’


 가영은 이외에 지금 현재 자신의 주식과 코인 계좌에 묶여 있는 돈은 그냥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돈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둘 다 수익률이 -40% 이상이었다. 극악한 수익율에 얽매여 있는 것은 가영이 회사 생활을 하며 피같이 모은 원금이었다. 다만 그녀에겐 지금 원금 구출 작전을 펼칠 용기가 없었다. 대신, 그녀가 선택한 것은 회피였다. 


 투자자들 사이에는 이런 격언이 존재한다. 


「실현하지 않은 투자 수익은 사이버 머니일 뿐이다.」 

그렇다면, 실현하지 않은 손실도 그냥 사이버 머니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혼자서 애써 정신승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지금 현재, 가영의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전 재산'이라 부를 만한 것은 그녀의 CMA 계좌에 있는 단돈 300만 원 뿐이었다. 그마저도 혹시 몰라 약간 남겨둔 것이었다. 


 그것도 한동안 통신비와 가영의 문화생활비, 그리고 보험 영업 일을 하시던 구남친 준성의 어머니에게 든 월 30만 원짜리 보험비로 나가고 나면 금방 없어질 것이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그녀에겐 매월 병호의 식당에서 일하는 대가로 받는 수익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었다.


 비록 혜진에게는 아직 말을 못하긴 했지만, 가영은 무나틱 코인을 추가 매수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영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나틱 코인의 매입 단가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단이 너무 아쉬웠다. 


 가영이 혜진을 만나서 처음 무나틱 코인을 매수한 날의 무나틱 코인의 단가는 개당 8천 원이었다. 그 이후로 무나틱 코인의 가치가 나날이 오르다 보니 왜 그 날 딱 100만 원어치만 매수한 건지 점점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박가영 본인이 끌어서 넣을 돈은 다 넣어 버렸기 때문이다. 더 사고 싶어도 이젠 돈이 없었다.


그런데, 가영이 그렇게 결심하기가 무섭게.

한동안 12,000원대로 고정되어 있던 무나틱 코인의 시세가 갑자기 8,000원으로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금 현재 가영의 무나틱 코인 매입 평단가는 10,000원이었다. 

최초 100만 원 어치를 매수한 이후 각각 800만 원씩 불타느라 평단이 조금 오른 것이다. 

 그런데, 다시 8천원 대가 온 것이다.


 지금 가격에 무나틱 코인을 추가 매수하여 물을 타면, 평단도 낮추고 스테이킹할 물량도 늘릴 수 있었다.

 가영으로서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안타깝게도 수중에 가진 돈이 없었다. 가영은 화면에 뜬 무나틱 코인의 시세를 보면서 아쉬운 듯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괜히 오를 때 불탔잖아? 막상 내려올 때 물 탈 돈이 없네.’


그때였다. 고민하는 가영의 눈이 순간 번뜩했다.


어느새 그녀의 시선은 책상 첫 번째 서랍을 향해 있었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아야만 열 수 있는 그 첫 번째 서랍 안에는, 그동안 그녀가 정산을 마치고 따로 모아둔 가게 현금을 보관하는 봉투가 있었다.

그것도 어느덧 거의 한 달 반 정도의 금액이 쌓여 꽤 두둑해진.


 ‘저거 얼마 정도 되려나…?’


가영은 가만히 그 서랍을 바라봤다. 잠시 서랍을 향했던 그녀의 시선이 다시 위로 올라와 모니터를 향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여태까지 아빠가 저 돈 얼마나 쌓였는지 확인한 적 한 번도 없었지?’


 그랬다. 가영이 가게 회계 업무를 맡으며 현금 정산을 시작한 지도 거의 한 달 반이 되었지만, 그 사이에 병호가 모인 현금이 얼마나 되었냐고 가영에게 확인을 하거나 따로 입금하라고 지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살짝 갈등하는 듯한 그녀의 시선이 책상 위의 모니터와 책상 첫 번째 서랍 사이를 몇 번 더 왔다갔다 오갔다. 한참을 그렇게 생각하던 그녀는 결국 마음의 결심을 내렸다. 


‘일단 지금 물타고 스테이킹 좀 해뒀다가 나중에 달라고 할 때 다시 주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이자도 더 받으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렇게 손을 뻗어 첫 번째 서랍의 잠금을 해제하는 순간.


가영의 머릿속엔 오직 이 한 가지의 생각 뿐이었다. 

NOW OR NEVER.

매수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라고.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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