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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ug 28. 2022

16. 님아, 그 코인을 사지 마오

What's after MOONATIC?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16. 님아, 그 코인을 사지 마오



“정말? 진짜 그랬다고?”

“말도 마라. 어디 가서 쪽팔려서 말도 못 해.”


 직장인들은 한창 회사에 매여 있을 이 평일 오전의 여유로운 시간. 브런치 카페의 창가 쪽 자리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가영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가영의 대학 동기 혜진이었다. 그녀는  지금 라떼를 막걸리처럼 들이켜며 깔깔 웃고 있었다. 가영의 망한 소개팅 이야기를 안주 삼아서 말이다. 


 가영은 아직도 자신의 톡방에 남아 있는 HJK와의 대화창을 켜서 혜진에게 보여주었다.


"잘 봐봐, 이게 개지, 사람이냐고!"

"아하하학!!! 아 그만해. 나 진짜 너무 웃겨서 죽을 것 같다니까?"


  혜진은 이제는 배까지 부여잡고 있었다. 하도 웃다보니 복근이 땡기는 듯 했다. 

그녀는 가영이 대학 동기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 연락 빈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학 졸업 후에도 1~2년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얼굴을 보는 사이였다.


  가영이 인생의 첫 남자친구를 만났던 스물 여덟의 나이에 혜진은 이미 직장 동료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이른 나이에 결혼한 그녀에겐 벌써 유치원에 들어가는 딸이 한 명 있었다.  오늘 만남은 혜진이 제안한 것이었다. 명절 전후로 친 어머님이 고향에서 올라오셔서 한동안 시간이 여유로워졌다고 한 번 얼굴이나 보자고 연락한 것이다. 


“하여튼, 박가영. 네가 내 친구들 중에 제일 골 때리는 것 같아.”

“영광이다.” 


 겨우 웃음을 가라앉힌 혜진의 눈가에는 어느덧 살짝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그런 혜진의 모습을 보며 가영은 지금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혜진이 아이를 낳은 뒤로 저렇게 웃는 것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혜진은 늘 씩씩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육아에, 시댁 스트레스에 지치고 힘들어 보이기도 했다. 가영은 그런 친구의 얼굴에 오랜만에 핀 밝은 미소가 무척 반가웠다.


 가영은 생각했다. 

 홍진규인지 홍준규인지. 하여튼 HJK의 헛짓거리도 영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가영에게는 끔찍한 기억이었지만 그래도 그 상황이 지나가고 나니어쨌든 제 친구를 이렇게 배꼽 빠질 정도로 웃기는 이야기로 남았으니까. 


모르지 뭐. 애초에 그 인간의 진짜 역할은 이것이었는지도.


 가영이 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긴 사이 혜진은 어느새 HJK의 개짓거리가 남긴 감동의 여운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가영에게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하여튼. 넌 요새 어때? 퇴사하니까 좋아?”

“음… 뭐, 노니까 좋긴 한데. 아빠가 엄청 뭐라고 해.”

“왜? 나는 네가 퇴사한 거 너무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혜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영은 본인이 퇴사를 선언한 이후로 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받아 보는 긍정적인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어떤 사람들한테는 회사 다니는 게 시간 낭비일 수도 있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혜진의 당당한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사실 혜진이라면 그렇게 말할 만했다.

 혜진은 직장 동료와 결혼한 뒤 임신과 출산을 계기로 회사를 그만둔 케이스였다. 소위 ‘경단녀’ 라 불리는 루트를 탄 것이다. 다만, 그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회사랑 잘 안 맞았던 것 같아. 애는 하나만 낳고 사업 시작해 보려고. 남편 하고도 다 합의됐어.'


 실제로 혜진은 대학에 다닐 때부터 항상 ‘난 나중에 사업할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실 혜진이 처음에 가영과 친해졌던 계기도 가영의 아버지가 자영업자라는 점 때문이었다. 가영의 아버지가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된 혜진은 가영을 따라 몇 번 병호의 식당에 가서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병호는 혜진이 감탄한 눈으로 병호를 바라보면서 가게 영업 노하우 이것저것을 물어볼 때마다 무척 기특해했다. 그래서 가영 앞에서 늘 혜진을 이렇게 추켜 세우곤 했다.


'봐라, 가영아. 돈은 이런 애들이 버는 거야.'


 병호는 혜진을 정말로 높이 평가했다. 일찌감치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은 혜진의 야망에 비하면 가영의 야망의 스케일은 그저 한없이 작고 귀여울 뿐이었다. 사업은 커녕 평생 직장에 다니며 남이 주는 월급이나 받아먹고 살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혜진은 그렇게 어릴 때부터 항상 자신이 원하는 바가 뚜렷했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 전에 남편과 ‘딜’을 했다. 둘 사이에 자식은 아들, 딸 상관없이 하나만 가질 것이며, 임신하면 바로 퇴사를 할 것이라고. 이후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쯤에는 본인은 사업을 하겠다는 선언까지 명확히 했다. 


 실제로 혜진은 2년 전 쯤에 딸이 어린이집에 들어가자마자 창업을 했다. 그녀가 선택한 아이템은 바로 무인으로 운영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밀키트 매장이었다. 혜진이 처음 이 사업에 관심을 가졌을 때에는 아직 이 시장 자체가 초창기였을 무렵이었다. 아직 사람들의 관심이 적을 무렵 남들보다 빠르게 시작한 덕분에 그녀는 첫 가맹점의 가맹비를 절반이나 할인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혜진이 시작한 첫 점포는 생각보다 장사가 무척 잘됐다. 월세와 관리비를 다 내고도 월에 몇 백 씩은 안정적으로 남았다. 그녀는 최근에는 근처에 두 번째 점포까지 내서 총 2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집안 형편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던 혜진이 대체 그 사업 자금을 어디서 구했는가, 하면.


 바로 주식 투자였다.


 사실 혜진은 가영이 주식 투자를 시작하게 만든 사람이기도 했다. 가영은 본인이 언제 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하게 됐는지 똑똑히 기억 했다. 그것은 바로 2년 전 혜진의 첫 점포 개업 축하식에서 혜진이 한 말을 듣고 나서였다.


'가게 자리 빌린 건 대부분 빚낸 거긴 한데, 가맹비랑 권리금 등등은 주식해서 번 거야. 회사 다닐 땐 월급 받을 때마다 적립식 투자를 했었는데, 퇴사하고 나서는 퇴직금까지 붙여서 좀 더 적극적으로 굴려봤거든.'


 이전까지 가영은 그 긴 시간 동안 남자친구였던 강준성이 아무리 권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었다. 준성이 허구한 날 들여다보며 일희일비하는 주식 투자는 그저 한심해 보일 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혜진은 달랐다. 그녀가 한 주식 투자는 전혀 한심해 보이지 않았다. 혜진이 어린 시절부터 꿈었던 ‘창업’이라는 꿈을 이루어 준 것은 그녀가 주식 투자를 통해 불린 돈이었다. 그래서 가영도  주식 투자를 시작했던 것이다.


  혜진의 덕분에 시작하게 된 주식 투자로 가영은 또다른 신세계를 맛봤고, 종종 용돈 수준의 수익도 벌었다. 어쩌면 그것이 정말 본인 인생의 반전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비록 지금은 수익률이 -40% 이상으로 죄다 물려 있지만 말이다. 


 가영은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을 주식 투자의 길로 인도했던 혜진의 수익률은 지금 얼마일까?


“너는 요새 잘돼? 장사도 주식도.”

“나? 가게는 잘 되지. 근데 요새 주식은 안 해.”

“어?”

“작년에 장 안 좋아지기 전에 다 뺐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혜진에게서 고수의 스멜이 폴폴 풍겼다. 가영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너 타이밍 쩐다! 나는 지금 그냥 다 물려 있는데.”

“얼마나?”

“글쎄…한 -40% 됐던가?”

“뭐? 너 설마 지금도 계속 물 타고 있는 건 아니지?”


혜진의 말에 가영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음… 쪼끔…?”

“뭐?”


혜진이 화들짝 놀랐다.


“야, 하지 마! 지금 국장 투자할 타이밍 아니야. 아마 올해 말까지는 계속 장 안 좋을 거야.”

“퇴직금 받고 한 절반 정도만 물 타려고 넣었어. 근데… 물 타고 나서도 계속 떨어지길래 그냥 안 보고 두고 있어.”

“아이고야…”


 혜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눈을 질끈 감는 그 모습이 어쩐지 심각한 두통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나머지 돈은?”

“그냥 CMA 통장에 넣어놨어. 이자가 매일매일 붙는다고 해서.”

“흠… 그렇단 말이지….”


혜진은 잠시 턱에 손을 올리고는 생각에 잠긴 듯한 눈으로 가영을 훑어보았다.


“너, 코인도 한댔나?”

“어? 응.”


예상 밖의 질문에 가영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웬 코인?’


 그러고 보니 혜진도 작년에 코인으로 소소하게 돈을 좀 벌었었다고 하긴 했던 것 같다. 위험성이 크다며 소액으로만 투자해서 주식만큼 크게 번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왜? 요새 뭐 괜찮은 거 있어?”


가영이 눈을 빛내며 묻자, 혜진이 대답했다.


“음… 내가 봤을 땐 너 더 이상 뻘짓 하지 말고 남은 돈이라도 그냥 어디 파킹해 놓고 이자라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응, 나도 그래서 CMA 통장에 넣어 둔 거긴 한데…”

“그거 이자 몇 프론데?”

“연  2%. 그래도 매일 주니까 복리 효과 노리고 넣은 거지 뭐. ”


혜진은 가만히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뭔가를 말해줄까 말까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 표정에 가영의 촉이 발동되었다.


‘저거, 분명히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괜히 마음이 조급해져서인지, 가영의 입에서 뭔가 조르는 듯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왜, 뭔데?”

“음…. 이걸 너한테 얘기해줘도 될지 잘 모르겠다.”

“아니, 왜? 말해줘!”

“나 사실 요새 가게 수익 쌓이는 것 중 일부는 디파이 코인으로 바꿔서 스테이킹해두고 있거든. 수익률 6% 정도라 이자도 꽤 괜찮은 편이고, 그동안 코인 가치가 조금씩 오르기도 해서. 좀 더 넣어볼까 고민하는 중이야.”


 솔직히 고백한다. 방금 박가영은 대학 동기 김혜진이 하는 말이 뭔지 100%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뭔지는 몰라도 똑순이 혜진이가 한다니까 일단 그냥 괜찮아 보인다. 그러니까 묻는다.


“6%? 그런 게 있어?”

“응. 나는 좀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업체를 선정해서 스테이킹해서 그 정도인데 공격적으로 투자해서 많이 받는 사람들은 8%까지도 받는 것 같더라.”

“그 코인이 뭔데?”


가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마음도 그 눈처럼 와이드하게 오픈되어 있었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무나틱 코인.”

“무나틱? 처음 듣는데…”


 가영이 눈살을 찌푸리자 혜진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어플리케이션 앱을 열어 보여주었다. MOONATIC Base 라는 앱이었다.


“무나틱(MOONATIC) 코인이라고, 최근 핫한 스테이블 코인 있어. “

“스테이블 코인?”

“음…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코인의 가치를 달러의 가격에 맞춰서 고정하는 거야. 아예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구조로 설계된 코인이라서 다른 코인에 비해 안정성이 있거든. 스테이킹을 하면 이자를 받을 수도 있어.”

“스테이킹?”

“코인을 예치하는 걸 말해.”


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코인을 예치한다니? 예금한다는 건가?’


 다행히도 혜진은 인내심이 좋은 사람이었다. 혜진은 누가 봐도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이 명백한 가영을 보고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생각해 봐. 일반인들이 은행에 예금을 하면 은행에서 어떻게 이자를 줘?”

“투자해서…?

“그치? 그거랑 똑같아. 내가 일부 체인이나 단체에 내가 가진 코인을 위임하면, 거기서 그 코인 자산을 활용해서 수익을 내. 그럼 그 이윤을 분배해서 코인을 위임한 사람들에게 은행 이자처럼 제공하는 거야. 보상 차원에서 다른 코인을 드롭해 주기도 하고.”

“그런 게 있었단 말이야…?”


 완전히 신세계 아닌가?


 감탄하는 가영의 머릿속 한편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근데 굳이 왜 스테이킹을 해? 그냥 다른 코인 사서 가치 오르면 팔고 떨어지면 줍고 오르면 또 팔고… 그렇게 반복하는 게 낫지 않아?”


 가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여태까지 가영에게 있어서 코인은 코인 거래소 어플리케이션에서 대충 메이저인 비트코인 사고, 이더리움 사놓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차트 예쁘거나 이름이 좀 땡기는 거 사서 쏘길 기다렸다가 익절 하고…. 그런 도박에 가까운 놀음이었다. 가상 화폐 자체가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닌가. 그런데 가상자산을 안정적으로 예금처럼 예치하며 이자를 받아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자 혜진은 가상화폐 거래소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가영에게 다시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무나틱(MOONATIC) 코인의 최근 1년 시세 차트가 나와 있었다. 


 가영은 입을 떡 벌린 채로 차트를 쳐다봤다. 


 한참이나 바닥을 기던 시세가 여름의 한 시점을 기점으로 수직으로 솟구쳤다. 마치 1천 년 묵은 이무기가 용이 되며 승천하는 것 같은 엄청난 급경사였다. 보기만 해도 투ㄱ…아니 투자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아름다운 차트였다.  


“… 뭐야, 이게?”

“작년 이맘때쯤 무나틱(MOONATIC) 코인 1개가 170원이었는데. 가을에 14,000원까지 올랐었어. 지금은 좀 떨어져서 8,000원이지만. 그래도 1년 새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져서 지금은 시총 7위야.”


과연.

시세 변동 내역을 들으니 그제야 이 차트의 미친 듯한 급경사가 이해가 갔다.


“네 말대로 일반 은행 계좌에 적금 넣고, 예금하는 것도 괜찮지. 근데 그 돈의 가치라는 게 가상화폐처럼 드라마틱하게 가치가 오르진 않잖아.”

“그건… 그렇지.”

“사실 나는 작년에 무나틱(MOONATIC) 코인 14,000원 찍었을 때,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이걸로  30억 정도 벌어서 퇴사한 케이스를 봤거든. 그 사람 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서 나도 소액씩 넣기 시작했어. 그러다 보니 이제 한 500만원 정도 넣은 것 같고.”


 어느덧 혜진은 다시 MOONATIC Base 어플리케이션을 열어서 가영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화면에는 그녀가 보유한 무나틱(MOONATIC) 코인의 개수와 위임한 코인의 개수, 위임한 코인으로부터 얻은 이자 수익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근데 이건 가상자산이라 투자 위험성이 많이 큰 편이야. 이 코인 가치도 작년에 14000원까지 갔다가 지금 8천 원이니까 사실 거의 반값으로 떨어진 거잖아? 그때 들어간 사람들은 손해도 많이 봤고. 더 떨어질 수도 있고.”

“그렇구나….”

“그래도 만약에 네가 관심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는지는 알려줄게. 네 돈 그냥 전부 다 CMA에 넣어두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분산해서 이런 것도 해보면 좋을 것 같아. 한 번 그냥 경험 삼아서.”


 가영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든 알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응. 대신에 너무 큰돈으로는 하지 말고, 그냥 당장 없어도 되는 소액으로만 시작해봐. 100만 원 이내 정도? 나도 이 이상 돈 더 넣을 생각은 없거든.”

“음… 알았어.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


 혜진은 가영의 스마트폰에 이것저것을 설치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혜진은 가영에게 일단 코인 거래소에서 무나틱(MOONATIC) 코인을 사서 MOONATIC Base라는 개인 지갑에 송금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송금까지 전부 완료된 이후에는 코인을 스테이킹하는 이런저런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모든 세팅에 이어 스테이킹까지 마쳤다. 가영이 MOONATIC Base로 보낸 금액은 총 100만 원이었다. 가영의 CMA 잔고에서 빼낸 돈이었다. 


“다 됐다.”

“고마워, 혜진아.”

“응. 꼭 이자 수익이 아니더라도 코인 가치가 오를 수도 있는 거니까. 좀 지켜봐 봐. 산 김에 공부도 좀 하고.”

“응, 그럴게!”


 미션을 달성한 두 사람은 어느덧 깨끗하게 비워진 브런치의 접시를 치우고, 음료와 디저트를 추가 주문하여 2차를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화제는 어느덧 다시 30대 중반 박가영의 대책 없는 백수 생활로 돌아와 있었다. 누가 뭐래도 박가영은 백수였다. 좀 더 너그럽게 봐준다면,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줄 순 있겠지만 말이다.


가영은 치즈 케이크 일부를 잘라 올린 포크를 입 속에 넣으며 살짝 한숨을 쉬었다.


“노는 게 좋긴 한데, 가끔은 모르겠어. 내가 이 시기를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건지….”


 가영의 앞에 놓인 음료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였다. 그녀의 앞 투명한 유리컵에 담겨 있던 아이스 바닐라 라떼는 어느덧 절반이 비어 있었다.  그것을 보니 문득 퇴사를 통보하기 직전 서 팀장과 함께 갔던 카페에서 그녀의 앞에 놓여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생각났다. 당시 가영은 그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카페를 나올 때까지 그 음료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었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가영의 말에 혜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이 마치 여장부처럼 쾌활하고 씩씩했다.


“너, 살면서 이런 좋은 시기가 언제 또 올 줄 알아?”

“그건 그렇지만….”

“내가 봤을 땐 아직 부족해. 너 좀 더 놀아도 되니까 맘 놓고 놀아!”


 그렇게 말하는 혜진의 눈빛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일종의 사명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가영은 긴가민가한 기색을 시원하게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혜진이 한번 더 강하게 말했다.


“하여튼, 너 그렇게 계속 놀다 보면 한 번씩 ‘내가 이렇게 대책 없이 놀아도 되나?’싶을 때가 올 거거든?”

“응.”

“그때 더 놀아!”


 그 말에, 가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뭐야, 그게!”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가영의 큰 목소리에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두 사람의 테이블을 흘끔거렸다. 그러나 혜진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지금 그녀가 가영에게 해야 할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어차피 좀 더 나이 들면 인생은 다 존나 바빠지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놀 수 있을 때 최대한 놀아버려.”

“응.”

“진짜, 이거 내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다. 나도 임신해서 퇴사하고 나서 출산 직전까지는 인생 황금기였다고. 막상 사업 시작하고 나니까 왜 이전에 좀 더 안 놀았나 후회된다니까? 너, 내 말 믿지?”

“응.”


 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깔깔거리던 폭소는 잦아들었지만, 아직 얼굴에 남은 웃음기를 미처 지우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와 마주 앉아 있는, 어느새 애엄마가 된 혜진의 얼굴에도 16년 전 대학 캠퍼스를 누비던 천진하고 개구진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렇게, 가영과 혜진은 서로를 마주 보며 또다시 폭소했다. 가영은 어딘지 속이 후련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만나보기도 전에 망해버린 소개팅의 여파는 가영에게서만 그치지 않았다. 애초에 가영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 소개팅을 물어왔었던 근수는 병호를 통해 소개팅 파투의 전말에 대해 듣고 나서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형님, 정말 죄송해요! 저는 그냥 저희 아들놈 직장에 마침 가영이랑 나이대 맞는 남자가 있다고 해서, 혹시나 잘되면 좋을 것 같아서 소개해 주려고 한 건데….”

“아니야. 네가 죄송할 게 뭐 있어? 너도 그놈이 그런 놈인 줄 어떻게 알았겠어.”

“그렇지만…”

“아니야. 생각해 보니 둘 다 도긴개긴이야. 내 딸도 금수(禽獸)처럼 살잖아.”

“형님….”

“정말로. 낼모레 마흔인데도 아직 사람이 덜 된 것 같아. 저래서야 뭐 어디 시집이나 갈런지…”


 병호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병호를 보는 근수의 표정에도 착잡하고 송구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잠시 고민하던 근수가 병호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형님, 그럼 혹시요.”

“응?”

“가영이 시집보내는 건 좀 천천히 생각하더라도요.”

“응.”

“지금부터라도 가영이한테 가게 일을 조금씩이라도 맡겨 보시는 것은 어떠세요?”


근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뜻밖의 안건이었다. 병호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치켜떴다.


“뭐? 걔한테?”

“네. 형님 아직도 가게 정산 보고, 시재 맞추는 거 다 형님이 직접 하고 계시죠?”

“그건… 그렇지.”


 그렇잖아도 병호는 최근 주방 관리에 가게 현금 관리 및 각종 대금 결제, 인건비 신고에 세금 신고까지 도맡아 하느라 죽을 노릇이었다.


 그것들은 원래대로라면 홀 매니저가 하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급한 사정으로 퇴사한 뒤로 병호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다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새로 사람을 뽑으려고도 했지만 요새 구인난이라 그런지 괜찮은 사람을 뽑기도 쉽지 않았고,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을 다시 찾는 것도 어려웠다. 근수도 그런 병호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거라도 가영이한테 시키시면 어때요?”

“뭐, 정산?”

“네. 어차피 주말마다 가게 나와서 가게 보니까 식당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가영이도 잘 알 거고요. 형님이 지금 다 수동으로 하시는 그런 일들도 가영이가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흠…”


 병호가 미심쩍은 듯이 제 손가락을 들어 턱을 쓸었다. 어딘지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근수는 포기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결제만 해도 그래요. 형님, 아직도 거래처에 대금 결제할 때 텔레뱅킹으로 결제하시잖아요?”

“…!”


“요즘 누가 그렇게 하나하나 일일이 결제해요? 인터넷 뱅킹으로 한 번에 하면 되는데.”


그 말에 병호는 뜨끔했는지 흠흠 헛기침을 했다.


“솔직히 형님한테는 조금 어려우시겠지만 가영이 또래한테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제가 봤을 땐 형님이 지금 괜히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시는 것 같아서 그래요.”

“… 그래 보이냐?”

“네.”


 오늘따라 근수의 태도가 유독 단호했다. 그만큼 병호와 가영이 걱정되는 듯했다.


“한번 가영이한테 시범 삼아 맡겨 보세요. 걔가 형님이 보시기엔 영 못 미덥겠지만, 제가 봤을 땐 애도 똘똘하고 맡겨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

“무엇보다 가게에 가영이 또래의 젊은 애가 하나 있고 없고 가 달라요. 특히 가영이는 회사 일 오래 했던 애니까 컴퓨터도 잘할 거고요.”

“그래도 걔가 가게를 물려받으려고는 안 할 텐데….”


 병호는 ‘가게를 물려받는 게 어떠냐?’는 얘기를 꺼낼 때마다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하는 박가영의 차가운 반응을 떠올렸다. 식당 일은 자기 적성에 안 맞는다는 둥, 자기는 아빠처럼은 못 살겠다는 둥…. 그 이유는 다양했으나 결론은 언제나 하나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생각 없다.’


 사실 가영이 마음만 먹었다면 병호로서도 왜 물려줄 생각이 없었겠는가. <박가네 불고기>는 개인이 창업한 식당으로서 누릴 수 있는 거의 탑 티어 급의 경지에 오른 식당이었는데. 심지어 가끔씩은 체인점 가맹 문의도 들어왔다. 병호가 여력이 안되어서 일일이 응대를 못하고 있지만.  


 사실 최근까지도 병호는 나름대로 주기적으로 가영을 찔러보고는 있었다. 다만 가영의 입장이 너무 완고하다보니 큰 기대를 걸진 않고 있을 뿐이었다.


병호의 미간이 근심을 담고 찌푸려지자, 근수가 차분히 말했다.


“걔가 아직 경험을 안 해봐서 그런 거 아닐까요?”

“뭐?”

“장사해서 좋은 게 뭐예요. 회사원으로 살 때는 수입에 한계가 있지만, 장사는 잘 되면 회사원의 한 달 월급을 하루 이틀 만에도 벌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거 아닌가요?”


 그건 그랬다. 가영이 아직 직장인이던 시절, 병호도 종종 그런 논리를 사용하여 가영을 가끔씩 놀리곤 했다.


 ‘회사 다니면서 푼돈 벌면서 뭔 생색을 그렇게 내냐?’


 그러면 가영은 약이 올라 부들대곤 했다. 


“제가 봤을 땐, 가영이가 실제로 돈 만지는 맛을 먼저 좀 봐야 할 것 같아요.”


근수가 말했다.


“일단 돈을 먼저 쥐어주면 가영이도 조금씩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요? 본인이 회사 다닐 때는 한 달을 일해야 만질 수 있었던 돈을 매주 직접 다루게 된다면요.”


“흠….”


 병호는 조금씩 근수의 논리에 설득되고 있었다. 병호가 거의 넘어왔다는 것을 확신한 근수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아 넣었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돈맛을 보게 하면서 조금씩 마인드를 바꾸다 보면… 지가 먼저 나서서 식당을 물려받겠다고 할지도 몰라요.”


병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생각해 볼 만한 가치는 있는 일이었다.








***





그날 저녁. 병호는 집에 오자마자 가영을 불러 앉혔다.


“가영아.”

“왜?”

“너 스마트폰 뱅킹 이런 거 할 줄 아냐?”


그 말에 가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거? 당연히 알지. 왜?”

“그럼 너, 내일 나랑 은행 좀 같이 가자.”

“뭐야… 은행은 갑자기 왜?”


가영의 표정이 불안함을 느낀 듯이 굳었다.


“너, 일 하나 더 주려고.”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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