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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Jun 09. 2019

좌충우돌 상경기

그래도 어쩐지 ‘서울 사람’이라는 말은 참 멀고 어색하기만 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지리 선생님은 말했다.

“요즘 말이야,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고. 너네 촌놈들! 특히 서울로 대학 가는 놈들,

지하철 탈 때 꼭 신발 벗고 타라. 안 그러면 촌놈인 거 단박에 들킨다고.”

우리는 선생님께 뻥치지 말라며 야유했다. 우리를 물로 보나 싶어서 어이가 없었다. 선생님은 황당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 참, 몰랐어? 아니, 아무도 몰라? 뻥 같지? 서울 한 번 가봐라. 느네만 신발 신고 지하철 타지 이 촌놈들아”      


고향을 떠나 학교 근처의 고시원으로 가던 날. 난생처음 타보는 지하철을 잔뜩 긴장한 채로 기다리고 있을 때. 왜 하필 그때 선생님의 어이없는 거짓말이 떠오른 건지 모르겠다. 선생님의 말이 백 프로의 확률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모른다는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리플레이되었다.

‘느네만 신발 신고 타지 이 촌놈들아..’

엄마가 싸 준 반찬 보따리를 쥔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초조하게 지하철을 기다리며 서울 사람처럼 지하철을 타기 위해 머리를 굴려 작전을 짰다.     


전략 1. 지하철 문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으며 들어간다.

전략 2. 지하철에 타기 직전 신발끈을 묶는 척하고 쪼그려 앉아 사람들의 동태를 살핀다.

전략 3. 선생님의 말은 거짓말이므로 신발을 신고 당당하게 지하철에 오른다.     


터널의 어둠을 뚫고 지하철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운동화 뒤축을 구겨서 뒤꿈치를 반 정도 빼놓았다. 사람들이 신발을 벗을 경우 뒤처지지 않고 따라 벗기 위함이었다. 마침내 지하철이 멈췄다.

자, 이제 몇 번째 전략을 실행할 것인가!

지하철 문이 열렸을 때, 전략은커녕, 지하철에서 내리려는 자들과 지하철에 오르려는 자들 사이에서 반찬 보따리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니 이미 지하철 안에 들어와 있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신으려고 얼마 전에 마련한 새 운동화만 괜히 구겨 신은 셈이었다.

작게 혼잣말을 했다. “아.. 씨, 한국지리.. 그럴 줄 알았어.”     


서울의 대학에 붙은 고등학교 동창과 강남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강남에 가서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밥을 먹기도 전에 체한 기분이었다.

강남의 밥값이 무척 걱정됐기 때문이다. 나는 혹시 몰라서 버스에 타기 전 은행에 들러 30만 원을 인출했다.      


코가 뭉개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 창문에 딱 붙어 강남을 구경했다. 자꾸만 턱이 벌어졌다. 옆자리에 사람이 앉아있다는 것을 까먹고 육성으로 감탄사를 뱉을 정도로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말도 안 되게 높은 빌딩들이 말도 안 되게 많았다. 말도 안 되게 넓은 차도에 말도 안 되게 많은 차들이 있었다. 사람도 말도 안 되게 많았다. 강남은 그냥 말이 안 되는 도시였다.

그러다 불안해졌다.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도시의 밥값은 얼마일까. 밥값까지 말도 안 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도 강남 간다고 30만 원씩이나 가져왔는데, 설마 밥은 먹을 수 있겠지 생각하며 여유를 가지려고 애썼다. 그러나 여유는 애쓴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안해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 얼마 가져왔어? 강남 밥 값 많이 비쌀까?>

친구는 40만 원을 들고 나왔다고 했다.     


정류장에 내려서 친구를 만났다. 우리 둘의 눈은 평소보다 훨씬 커져있었다. 목소리도 평소보다 두 톤은 높았다.

“이슬아 사람 진짜 많지 않아?”

“야! 너 건물들 봤어? 와 영화 같지 않냐? 미국 같아! 왜 이렇게 높고 많아?”

“어어 진짜 미국 같아!”   

  

우리는 혹시라도 큰돈이 든 지갑을 잃어버릴까 봐 수시로 가방 속을 더듬으며 식당을 찾아 걸었다.

밥값을 우려하며 몇 분쯤 걸었을 때 우리 지갑 사정으로 배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식당을 발견했다.

제일 잘 팔리는 메뉴로 추정되는 음식 사진이 식당 벽에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우리는 그 메뉴를 주문했다.

     

“와퍼 세트요”

주문을 마친 뒤 나는 30만 원이 들어있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버거킹 아르바이트생에게 건넸다. 친구는 40만 원이 들어있는 지갑을 꺼내 계산했다.

생각보다 저렴한 강남 밥값에 안도하며 햄버거를 먹었다. 친구가 입 안 가득 햄버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슬아 서울 사람들은 좀 짜게 먹나 봐”

“그니까 좀 짜다. 나는 롯데리아 불고기버거가 더 맛있는 것 같은데”

“나도”

버거킹이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햄버거를 먹는 내내 서울도 별거 없다는 얘기를 했다.      


햄버거를 다 먹은 우리는 동대문에 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각자의 집에서 한 시간씩이나 걸려 도착한 강남에서 한 거라곤 버거킹에서 와퍼 세트를 먹은 것이 다였고, 이제는 강을 건너 강북에 있는 동대문에 갈 참이었다.

그때 우리는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희한한 계획인지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동대문에 도착한 우리는 밀리오레에 갔다. 야외무대에서 댄스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걸 조금 구경하다가 쇼핑센터로 들어갔다.

“서울 사람들은 다 동대문에서 쇼핑한대, 여기가 옷값이 싸대.”

친구의 말에 나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노라고 맞장구를 쳤다.

     

쇼핑센터에 들어간 우리는 가진 돈을 다 털렸다.

사방에서 들이대는 계산기와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이모 삼촌들의 ‘언니’ 호칭에 혼이 빨려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질스러운 재질의 반팔티를 6만 원과 맞바꾸면서도 ‘서울에서 이 정도면 싸게 잘 산 거지’하고 생각했다.      


쇼핑을 닮은 강매에 한바탕 시달린 뒤 잔뜩 지친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카드를 찍은 후 버스 맨 뒷좌석에 옷 보따리를 끌어안고 앉았는데 뒤 따라 탄 친구가 소곤거리며 물었다.

“이슬아, 왜 너랑 나랑 버스요금이 다르게 찍히지? 네 요금이 몇 백원 더 비싸”

“정말? 너 혹시.... 교통카드 티머니야?”

“응, 너는?”

내가 가진 교통카드는 마이비카드였다. 익산에서는 모두가 마이비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부터 사용해 온 카드였고 무엇보다 충전을 몇만 원이나 해 놓아서 얼마간은 별 수 없이 사용해야 했다.

나는 화가 났다.

“아 진짜 서울 놈들! 되게 치사하네, 나 마이비카드라고 돈 더 받나 봐 시골에서 왔다고”

“너무한다 진짜. 티머니 카드랑 요금을 다르게 받냐.”     


잔뜩 툴툴대다 보니 종착점이었다. 친구가 버스에서 하차하기 전에 단말기에 카드를 대었다.

나는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그냥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친구에게 물었다.

“카드 왜 찍어?”

친구가 말했다.

“너는 안 찍어?”

내가 말했다.

“내가 왜 찍어?”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환승할 것도 아닌데 왜 카드를 또 찍어야 한다는 말인가.

친구가 서울버스는 내릴 때도 카드를 찍어야 한다고 알려줬다. 아무래도 하차할 때 카드를 찍지 않아서 추가 요금이 붙었던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급 피로함을 느꼈지만 어쨌거나 마이비카드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청소를 하다가 서랍 구석에서 빛바랜 마이비카드를 찾았다.

코팅지가 벗겨진 초록색의 촌스러운 카드를 보고 있자니 10년 전의 어리바리하던 내가 떠올라서 비실비실 웃었다.

그러다가 새삼 10년이나 서울에서 살았구나 싶어 멍해졌다. 인생의 3분의 1에 달하는 시간 동안 서울의 공기를 쐬고 서울의 물을 마시고 서울의 음식을 먹었으니 이제 나도 3분의 1쯤은 서울 사람이라고 봐야 할까.


그래도 어쩐지 ‘서울 사람’이라는 말은 참 멀고 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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