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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건넨 위안

박서보 PARK SEO-BO _국제갤러리

by 인생은 아름다워



2018년, 상하이 파워롱 뮤지엄에서 <한국의 추상미술:김환기와 단색화> 전시를 준비하면서 박서보 선생님의 대작을 열심히 들여다봤었다.


2019년, 조선일보미술관 기획전을 올렸을 때, 박서보 선생님이 미술관을 찾아 주셨다. 프랑스 페로탕 갤러리 개인전 때문에 파리에 갔다가 돌아온 다음날 후배의 전시 마지막 날을 축하해주시려고 홀로 택시를 타고 오셨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긴 시간 비행에 지치셨을 법도 한데 멋진 옷과 모자 그리고 지팡이를 짚으시고는 정정한 모습으로 전시장에 들어서서 말없이 작품부터 보셨다.


그때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국 미술계를 걱정하시던 모습, 단색화 다음 세대의 후배들을 독려하며 조언하시던 모습, 이탈리아에서 산 재킷과 반지를 자랑하시던 패션에 진심인 모습.


최근 몇 년간 박서보 열풍이 대단했고, 대단한 중이다. 그렇게 한국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대가는 생각보다 소탈하고, 카리스마 속 천진난만함이 있었으며, 예술의 열정은 전성기라 불릴 만큼 진행형이었다.


재작년 국현에서 대규모 회고전 이후, 이번 국제 갤러리의 개인전에 나는 큰 호기심이 없었다. 열풍의 연장선일 뿐 특별할 게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개인전에서 선생님은 “치유”의 키워드를 꺼내며 후기 색채 묘법의 절정을 보여주셨다.


사진에 다 담기지 못한 따뜻한 색감은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인한 여러 형태의 불안과 공포에 깊은 위로를 주는 느낌이다. 미술치료라는 말이 있듯, 작품의 깊고 따뜻한 색감이 딱딱해진 마음에 경계를 풀어주었다. 로스코 작품 앞에서 웅장함과 깊은 고요를 느낀다면, 박서보 선생님 작품 앞에서는 부드러움 속 굳은 심지 같은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전시를 보고 난 후에도 긴 여운이 있었다. 여러 생각을 했고, 여러 다짐을 했으며, 두루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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