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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 호 Mar 11. 2022

인생도 여행도 처음인 것을

프라하

처음은 늘 우리에게 찾아와  

다른 나라보다 가격이 착하기도 하고, 날씨 운이 따라준 덕분에 예전부터 바랐던 스카이다이빙을 프라하에서 하게 되었다.

외국인 3명과 한국 여성 한 분, 언니와 나까지 6명을 태운 봉고차는 외곽을 향해 1시간 힘차게 달렸다. 여섯 의 설렘을 싣고 도착한 그곳에서 안전 교육을 받고 도톰한 다이빙 옷으로 갈아입었다. 비행기 한 대당 세 명씩 탈 수 있다고 해서 한국에서 온 세 사람은 그렇게 같은 조가 되었다.

언니-> 한국 여성분-> 나 순으로 비행기에 올랐는데, 나는 마지막으로 뛰고 싶어서 가장 마지막에 탔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줄도 모른 채 담당 다이버와 여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해맑게 웃었다.





막상 비행기에 올라타니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조금 전까지 웃음을 머금었던 입술이  말라갔다. 가장 먼저 뛰어내릴 언니는 뒤쪽에 앉아 보이지 않았고, 내 옆엔 한국에서 온 여성분이 자리했다. 서로 긴장 섞인 웃음을 나눈 뒤 강한 바람에 신발이 벗겨지지 않을까 걱정도 하며 신발 끈을 단단히 묶었다.

뛰어내릴 때 착용해야 하는 눈 보호 안경을 하나씩 받는데 써보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다. 광대뼈를 납작하게 뭉개 팔자주름이 돋보이게 만드는 안경이었다. 우리 셋은 그것을 쓴 채로 하늘길에 올랐다.




마지막에 탑승한 나는 가장 먼저 떨어질 언니 모습을 상상했고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런 생각으로 여유가 생길 무렵, 비행기는 해발 4300m에 멈춰 섰고 아래를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아득한 높이에 도달했다.

그 순간, 내 담당 다이버가 준비됐냐며 뛰어내릴 채비를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란 나는 "응?? 우리가 먼저야??" 하고 물었다. 상황 파악을 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비행기는 문이 한 개인데 나는 왜 두 개라 생각했을까, 타는 순서대로 떨어질 거라 생각하다니..

'먼저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괜찮아!.... 근데 너무 무서워!' 음이 둘로 나뉜 바보 한 명은 결국 문 끝에 다다랐다. 다리가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목을 최대한 뒤로 젖히고 무릎은 힘껏 접어야 한다!' 이 생각만 되뇌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의 쿵쾅거리는 떨림이 온몸에 퍼졌다. 쿠웅쾅



잡을 것 하나 없는 파란 하늘에 툭 떨어지면 바람에 몸을 맡긴 채로 온전히 즐겼으면 좋겠어. 낙하산이 제대로 펴질까 괜한 두려움이 앞선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힘을 빼고 새가 된 듯 하늘 위에서 훨 날아보길.

-언젠가 스카이다이빙을 마주할 너에게-

 




앞사람 고막을 위해 비명을 속으로 꾹 참아야만 했던 바이킹과는 달리, 하늘 위에선 목이 터져라 소리 질러도 눈 하나 깜짝하는 이 없다. 땅으로 떨어지는 속도가 아주 빨라서 귀를 스치는 거센 바람에 웃음이든 비명이든 모두 묻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떨쳐내려 지른 외침이 정말로 마음에 위안이 될 때 비로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볼 여유가 생긴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동그란 지구본 일부를 보는 것 같았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잠시 떨어져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느낌.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였다. 가슴이 뻥 뚫려 시원해진 심장에 공중에서 본 세상을 꾹꾹 눌러 담았다.





탁! 부웅-

낙하산이 펴지자 몸이 다시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강한 바람 소리는 사라지고, 지금까지 내지른 비명이 머쓱해질 만큼 깊은 고요함이 찾아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처럼 시원한 바람 사이를 가르며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닐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 앞에서 나는 정말 작은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이 너무도 고요해서 영화 오디오를 잠깐 끈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미움, 증오, 시끄러움 하나 없는 세상.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무엇이 우릴 고통스럽게 만들까. 좋은 것만 보고 들어도 부족한 인생인데. 누군가 많이 힘든 날 왔더라면 눈물샘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었다. 조금 힘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저마다 나름의 슬픔을 삼키며 사니까. 나는 낙하산에 대롱대롱 매달려 그런 생각을 하며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햇살에 반짝이던 순간들을 눈에 담고서 비행을 끝낸 두 발은 다시 땅에 '풀썩' 닿았다. 긴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마지막 만찬


스카이다이빙이 끝나고 시가지에 도착하자 프라하 전통 음식인 꼴레뇨를  식당 갔다. 고함을 하도 질렀더니 허기가 졌다. 어두운 조명 아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사 중이었다. 우리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벨벳 맥주가 맛있다는 이곳에선 고민할 여지없이 맥주 두 잔, 꼴레뇨 그리고 치즈 튀김을 주문했다. 늘을 날아본 순간에 대한 여러 감정이 음식보다 먼저 테이블 위를 채웠다.

처음으로 나온 치즈 튀김은 마치 감자가 주인공 같았다. 치즈 튀김은 겨우 두 조각이지만 감자튀김은 산더미였다. 뒤이어 꼴레뇨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올랐고, 우리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크고 묵직했기 때문이다.

꼴레뇨는 우리나라 족발과 비슷해 보였다. 두툼한 살코기를 베어 물자 육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고 쫄깃한 껍질은 식감의 즐거움을 더했다. 이렇게 크고 맛있는 음식이 저렴하기까지 하다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위가 기름으로 코팅될 때쯤 맥주 한 모금 마시니 크으!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가히 벨벳이라 부를만한 크리미 함이었다.

고기벨벳으로 가득 찬 배를 두드리며 블타바 강 둑을 걸었다. 멀리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성이 보였다. 배는 부르고 날씨는 좋고, 그렇게 프라하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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