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팔렸다고요?

by 슬슬

알고리즘은 세계 각국의 집과 인테리어에 이미 점령당한 지 오래다. 뭐든 관심이 생기면 책부터 찾아보는 성격이라 밀리의 읽고 있는 책 목록과 도서관 대출 목록도 집과 관련된 책으로 가득 차고 있다. 단독주택에 사는 누군가의 에세이부터 ‘집짓기 A to Z’ 같은 실용서까지 가리지 않고 읽고 있다. 선무당이겠지만 아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눈은 한껏 높아지고 있었다. 집을 짓는다는 설렘과 함께 ‘정말 이게 맞나? 잘 결정한 건가? 그래도? 혹시나? 만약에?’라는 두려움으로 감정은 매 순간 널을 뛴다. “오빠, 그 땅 사자.” 결국 내뱉고야 말았다. 지난주 금요일, 우리는 정말로 결심하고야 만 것이다.


부동산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이 샜다. 얼마 후 걸려온 전화에 또 한 김이 샜다. 주말에 시험이 있어서 일요일에 다시 전화를 준단다. 기다릴 수밖에. 그 와중에 나의 촉이 발동했다.

“혹시 그 실장님 토요일에 공인중개사 시험 치는 거 아니가? 내 생각엔 그 공인중개사 이름은 실장님 딸인 것 같던데?”

“아 그런가? 하긴 그 분이 소장이라기에는 좀 어리바리하긴 하더라.”


우리는 웃으며 그동안 부동산 실장님의 수상했던 행적을 돌아보았다. 도시관리계획 입안 중이라는 토지이음 지도를 보며 구체적 내용 확인도 없이 “좋게 바뀌면 바뀌었지 나쁠 건 없지 않겠어요?”라고 했던 일, 집을 지어 살 생각으로 땅을 산다는 우리에게 “투자하세요. 아파트 들어온다 하면 대박이지 대박.”이라고 무작정 땅을 권한 일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부동산과 계속 거래를 이어 가려는 이유는 땅 주인과 부동산이 약간의 연이 있다는 점과 같은 땅이 매물로 나와 있는 다른 부동산보다 조금 더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약속한 일요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땅이 팔렸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분할해서 팔기로 했던 땅이 우리가 들은 금액보다 더 높게, 9월에 이미 팔렸단다. 3개월의 고민과 발품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전화를 받은 남편은 연신 “어이없다”를 반복했다. 어떻게 그게 팔렸지. 이성을 찾자. 땅이니까 언제든 팔릴 수 있지. 우리랑 인연이 아니었나 봐. 어쩔 수 없지. 다른 땅을 다시 찾아보자. 49프로의 T성향을 발휘하며 애써 아쉬운 마음을 가라앉혔다. 당근 부동산에서 봐두었던 매물과 교차로를 다시 한번 살펴보며 너무 아쉬워하는 남편의 마음에 드는 땅을 다시 찾기가 쉽지 않겠다는 걱정을 했다.


열두 시가 다 되어 가는 늦은 밤 문득, 어리바리한 실장님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이건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먼저 부동산 실거래가 사이트에 들어갔다. 등록된 실거래가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와서 이거 봐봐.” 남편과 나는 셜록과 왓슨이 되어 추리를 시작했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했지만, 소유주의 변동이 없었다. 검색을 하다 보니 공인중개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디스코'라는 실거래가 확인 사이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들어가 보았다. 찾았다! 실장님이 내게 말했던 평당가 그대로 9월에 전체 땅이… 매물로 등록되어 있었다.


월요일 아침 등원길에 부동산 문이 열린 것을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한 시간 후 걸려온 전화에서 우리가 추측한 모든 정황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장님은 본인이 토요일에 중개사 시험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땅 주인에게 확인하기 전에 ‘디스코’에서 확인을 하니 올라와 있길래 땅이 팔린 줄 알았다고 했다. 어쩐지 다른 실거래 매물들이랑 색깔이 다르더라는 말까지. 원래 땅은 하루아침에 팔릴 수도 있는 거라는 핑계같은 말도 덧붙였다.


어이가 없었다. 땅이 팔려버리면 우리랑 연이 아니구나 하는 건 당연하지만, 팔리지도 않은 땅을 중개사(실은 중개사도 아닌 실장)의 잘못된 정보에 의해 놓쳐버리는 건 말이 다르지 않은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났지만, 우리는 그 땅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성을 붙잡았다. 땅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도 아쉬워 한 남편의 반응과, 그 땅이 아직 팔리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내가 느낀 안도감은 그 땅을 사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 미덥지 못한 부동산과 거래를 해야 함이 내심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실제 중개사는 그 실장님이 아니라 뒤에 앉아있던, 무심하지만 실장님보다는 야무져 보이던 딸이라고 하니.


“실장님, 저희 그 땅 사려고요. 땅 주인 분이랑 연락해 주세요.” 이제는 결심이 아니라 진짜 진행이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2화군청, 은행, 아무튼 전부 내 편이 되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