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간 큰 고민, 화장실과 현관

by 슬슬

시공사를 선정하고 나니 잠시 멈춰있었던 도면 작업도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시공사 대표님과 건축사님이 협의하며 평면에 머물렀던 우리 집의 단면 계획을 시작하신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음 주에는 두 분이 함께 실제 시공 내용 확인을 위해 세종시의 중목구조 현장을 방문하고, 프리컷 공장에서 자재 품질도 직접 보고 오신다고 한다. 우리 집을 위해 선뜻 먼 길을 나서시는 두 분께 감사하다. 이제 너무 어려운 구조, 기능적인 부분은 두 분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공간의 구성과 인테리어를 고민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안방은 잠만 자는 공간으로 계획했기에 침대 크기나 머리를 두는 방향, 창문의 크기와 위치 정도만 결정하면 될 것 같다. 아이방도 미래에 두 개의 방으로 나누겠지만, 지금은 다다가 원하는 이층 침대를 두고 놀이방 겸 공부방으로 사용할 거라 어떤 가구를 놓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주방과 거실도 많은 가구를 둘 건 아니라서 tv를 거는 벽면 보강, 싱크볼을 두 개 넣는 싱크대 구성, 거실창의 모양과 크기를 천천히 정하려고 한다. 남편의 로망 공간인 다락은… 남편이 알아서 하겠지?


가장 고민되었던 건 화장실과 현관의 구성이었다. 사실 화장실과 현관은 메인 공간을 서브해 주는 보조 공간이다. 머물지 않고 필요할 때만 들르는 공간이고, 부여된 기능에 충실해야 하는 공간이다. 메인 공간들에 비하면 크기도 작으니 대부분 집에서 볼 수 있는 그대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집에서 가장 작은 공간을 고민하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게 되었다.


고민의 흔적 1


먼저 화장실. 가족 화장실이라고 부르는 큰 화장실은 서쪽 제일 안쪽에 배치했다. 아파트는 대부분 안방에 화장실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먼저 일어난 사람이 화장실을 쓸 때 사부작거려 잠에서 깰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게 싫었다. 화장실을 안방에서 꺼내고 화장실-세탁&드레스룸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만들었다. 가족화장실의 안쪽에는 욕조를 넣고, 욕조 옆으로 목욕탕 같은 좌식 샤워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세면대와 변기가 있는 입구 쪽 공간은 건식으로, 욕조가 있는 안쪽은 습식으로 사용할 거다.


공용 화장실은 위치가 조금 독특하다. 현관에서 중문을 거치기 전에 공용 화장실을 두었다. 산책을 하고 와서 콩이 발을 바로 씻겨서 거실로 들어가는 게 편할 것 같았다. 거실에서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으면 누구든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콩이를 씻겨야 하기 때문에 세면대 자리에는 작은 사이즈에 주방용 싱크볼을 두고, 수전도 길게 뺄 수 있는 걸 설치하려고 한다. 대략 2m×1.5m로 작은 데다가 문 위치도 좀 애매하다. 일단 문이 열리는 공간이라도 아끼기 위해 포켓도어를 달기로 했고, 변기와 세면대, 샤워공간을 모두 배치하는 가장 합리적인 배치를 계속 고민 중이다.


가족 화장실은 큼직한데 창문도 있기 때문에 밝고 화사하고 컬러감이 있는 포인트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그에 비해 공용 화장실은 작고 창이 없는 데다가 콩가루때문에 늘 문을 열어둘 거니까 현관과의 조화를 고려해 단정한 우드톤으로 맞추려고 한다. 매립형 선반, 슬라이딩 거울장, 유리블록을 활용한 가벽, 변기의 방향과 바닥의 단차 등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루에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겠지만, 디테일을 살릴수록 생활은 편안해진다. 적어도 아무 생각 없이 밟은 화장실 바닥에 양말이 젖어 기분을 망치는 일이 없게, 좁은 세면대에서 발을 씻기다가 콩이가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고민의 흔적 2


우리 집의 특별한 포인트 중 하나는 현관이다. 지금 사는 집의 현관은 너무 좁아서 온 가족이 다 같이 귀가할 때면 자동으로 기차놀이 시작이다. 늘 일등으로 들어가 새치기하지 말라면서 신발 벗는 데는 한참이 걸리는 다섯 살 뒤로 쪼로록 줄을 서 기다릴 때면 넓은 현관이 절실해진다. 그래서 새집의 현관은 나란히 앉아 신발을 신고 벗을 수 있게 크고 넓게 만들었다.


단차를 높게 두어서 한옥 마루의 느낌을 주고, 디딤석도 두기로 했다. 현관문을 닫고 마루에 올라서 정면의 중문을 열면 대청마루를 거쳐 마당까지 시선이 연결되도록 했다. 한옥은 아니지만 현관에서는 한옥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화장실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팬트리를 거쳐 주방이 연결된다. 서양의 머드룸처럼 옷을 걸고 밖에서 가져온 짐을 둘 수도 있다. 집터에 텃밭을 꾸며두고 자주 다녀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자주 다녀가신다. 집을 지어도 종종 왕래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 간단한 대화는 현관 마루에 앉아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화장실과 현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집을 지을 땐 어떤 자재를 쓸지, 어떻게 해야 예쁠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기서 무엇을 할지를 상상해야 된다는 것이다. 화장실과 현관의 타일과 마룻바닥을 볼 땐 떠오르지 않던 것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 우리 생활을 생각하니 펼쳐졌다. 신발을 신는데 한 세월이 걸리는 다다가 걸터 앉을 현관 마루, 외출 준비를 끝내고 손에 묻은 헤어오일을 닦느라 까치발로 화장실에 들어서는 나를 위한 건식 공간, 손님이 와있을 때는 화장실 사용을 불편해하는 남편을 위해 사적인 화장실 배치. 서브 역할의 작은 공간일수록 가족의 생활이 반영되어야 한다.


이렇게 고민한 공간들을 건축사님께 전달했다. 건축사님이 기존에 그려두신 아이디어에서 달라진 부분이 많았는데,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수정사항을 대부분 도면에 반영해 주셨다. 한두 가지 건축사님이 꼭 추천하고 싶은 부분은 구체적인 그림으로 대안을 보여주면 선택하기로 했다. 완성된 집에 살게 될 것은 건축주이기 때문에 건축주가 충분히 고민하고 원하는 것을 제대로 설명해야 결국에는 건축사도, 시공사도 만족하는 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릴 위해 만들어진 집이 아니라 불편할 수밖에 없던 부분들을 잊지 않고 잘 반영해서 우리에게 착 맞는 옷 같은 집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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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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