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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돈 Jun 27. 2023

이 밤을 지키는 우리

숙직

숙직이라 늦은 시간 출근했다.


“공영방송이 우리 같은 비인기 종목을 중계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입사한 지 30년째. 그 사이 너무도 여러 번 들은 이야기다. 백번 맞는 말씀이고 나 또한 그와 같은 일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은 이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재원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큰 행사는 많이 벌이지 않나요?"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지 않게 광고 수입으로 수지를 맞추다 보니 광고가 잘 따라붙는 큰 행사는 실컷 벌일 수 있을지 몰라도 광고가 잘 붙지 않는 공영방송 본연의 일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수신료를 받지 않습니까?"


40년 넘게 한 푼도 오르지 않은 월 2,500원의 수신료를 매달 악착같이 다 받아 긁어 모아도 그것만으로 공영방송이 공영방송으로 온전히 구실하며 대한민국 국가기간방송으로서 경쟁력을 갖고 제 위상을 지켜나가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공영방송의 기본원칙에 완전히 배치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지금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재정의 2/3 이상을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공영방송은 원칙적으로 공영방송이 아니라고 해야 하기도 하고..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세우려면?"


애초에 국영방송이었던 것이 그래도 일찍이 공영화된 것은 민주사회의 발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 근간에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 또는 압박에 덧없이 좌우되지 않는 독립된 공공 매체가 든든히 서 있어야 한다는 상식적 사고가 깔려 있을 것이다.


“비가 많이 오네요.”


이른바 ‘프리’ 할 생각 없이 살다 이제 몇 년 뒤 닥쳐올 정년을 향해 그저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공영방송 아나운서는 오늘밤 혹 재난방송이 긴급히 편성되면 아마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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