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의 꾸준함과 그 장엄함을 생각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떠올렸다. 그분의 선하심은 언제나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자연 속에서도, 그분의 말씀 가운데서도, 그분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 주위의 사람들 속에서도.. (Living Life ‘생명의 삶’ 영문판 2016년 9월호 61페이지)
수십 년을 살아도 일출 한 번을 제대로 보지 않고 사는 우리들. 필자는 어느 날 참으로 아름다운 일출을 보고 난 뒤 '내가 관심을 갖고 애써 찾아보지 않았을 뿐, 거의 매일 이 같은 장관이 끊임없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었다!’고 또 적었다.
우리는 그다지 자연을 바라보며 살지 않는다. 흔히는 파괴한다. 말씀? 말씀은 정말 읽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주위의 사람? 그런 게 있었나? 도무지 누구에게도 기대가 없다. 이 와중에 우리에게 솔깃하게 다가오는 존재가 혹시 있다면?
정말 객관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사람 누군가를 내가 담담하게 소개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금방 합당한 관심을 가질까? 큰 목소리로 좀 더 힘있게 또 멋있게 소개를 하면? 그러나 별로 유명하지 않더라도 하여튼 연예인 누구라면? 아마도 반응이 크게 다를 것 같은데..
언뜻 들으면 대중문화는 대중이 주인인, 대중의 문화일 것만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중은 오히려 소외된 객체일 뿐이다. 오늘날 대중문화의 주인은 바로 대중매체에 등장해 각광을 받고 돈을 버는 연예인, 스타, 이른바 아이돌(우상)들이다.
대중문화가 이처럼 만연한 세상 속에서 자연과의 교감, 말씀에 대한 갈망, 이웃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매우 저조하거나 희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 혹 오늘날 흔히 거론되는 아이돌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일관되게 금해오신, 잘못된 섬김의 대상, 바로 그 아이돌인지도 모르겠다.
매체에서 눈을 떼고 하늘을 보자. 말씀을 읽자.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기대를 회복하자.
들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 아이들이 바로 작가요 철학자요 가수였던, 그야말로 그 모든 것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다시 그 모든 것이 되는 날, 대중들이 주인이 되는 참 대중문화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