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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Feb 19. 2022

익숙지 않은 길

취향의 태도


2년째 거의 빠짐없이 만보 걷기를 하며 몸과 정신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작년 여름, 한강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와서 아주 춥거나 덥거나 미세먼지가 심할 때 빼고는 무작정 강변을 따라 걸었고, 몸을 움직이는 그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나 음악을 들으며 생각 정리를 하며 나를 챙기는 시간이다.

나의 집에서 7분 정도 걸어 나서서 토끼굴을 지나면 넓은 한강이 펼쳐져 보이는데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습관을 발견했다. 오른쪽과 왼쪽의 길 중에 선택하여 걸을 수 있는데 자꾸만 오른쪽 길을 다니고 있었다.

오늘도 오른쪽 길로 갔고, 그 이유를 생각을 해보니 오른쪽 길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고(코시국에 저절로 거리두기가 몸에 밴 것이 한몫을 하는 듯하다.), 고가 도로의 그늘이 있어서 눈이 부실 일이 없어서 인 거 같다.

하지만 이 이유뿐일까? 더 깊게 생각해봤다.

매일 걷는 오른쪽 길

따지고 보면 왼쪽 길이 더 넓고 볼거리도 다양한데, 고루 호기심을 갖고 탐험하기보다 익숙한 관성의 길을 따라가려는 나의 심리와 성향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더 편하고 익숙한 길을 가는 게 뭐 어떤가- 대수롭지 않게 볼 수 있지만 평소 안 하던 것, 안 하던 생각, 안 쓰던 근육을 쓰는 것을 불편해하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환경에 대해 생각했다.


취향의 태도

요즘 시대의 환경은 취향이 점점 좁아지도록 설계되어 돌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큐레이션이 지나칠 정도로 발전해서 유튜브 등 많은 미디어에서 내가 몇 가지만 보고 들어도 계속 유사한 것들만 알고리즘에 따라 찾아준다. 아주 편하고 취향 존중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같은 취향의 것들만 즐기다 보면 결국은 아주 좁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동전만 한 하늘을 보면서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나의 생각, 나의 취향만이 신성한 거라고 믿게 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인간 관계도, 취향도, 생각도, 나이를 먹으면 점점 구심력 같은 게 생겨서 좁아지기 마련이다.

사람의 뇌엔 가소성이 있어서 계속 가던 길로만 가면 뇌의 회로에 불이 붙는 것처럼 다른 길은 점점 돌아보기 어렵게 된다.

(-‘톡이나 할까’ 김이나, 이동진의 대화 부분 인용)




의도적으로 좁은 시각들을 넓히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좁은 취향과 사고 속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고, 그렇게 나를 내버려 두고 싶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곧 다가오는 대선의 후보 현수막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대선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근미래에 녹색 기와집에 있을 그분이 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문득 누가 되든 간에 우리의 취향과 사고를 편하게 설계된 세상에 맡기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꾸준히 자발적인 생각을 하며 나의 저변과 레이더망을 더 넓힐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6번 후보는 6번째 출마.. 내 핸드폰으로 전화좀 그만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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