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이런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누군가 던진 이 말에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이런 사람이 대체 누구지? 착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나를 먼저 좋아해 주는 사람? 머릿속으로 조건들을 하나씩 세어보다가, 문득 이 문장을 다시 읽게 됐다. '이'런 사람을 사랑'해'야. 어? 이해. '이해'가 숨어 있었다. 사실 이해라는 말은 하루에도 수없이 쓴다. "내 말 이해했어?", "이해한 내용 다시 설명해 봐", "쟤는 원래 저러니까 네가 이해해", "오늘 수업 내용 다 이해했어?", "내 자식이지만 이해를 못 하겠어." 그렇게 쉽게 말하면서도, 정작 진짜 이해가 뭔지는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사람마다 이해받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게 최고의 이해이고, 어떤 사람은 "힘들겠다",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방법인데 결과가 달랐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실수를 했는데, 팀장님이 "괜찮아, 누구나 실수하지"라고 말했다. 고마웠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용서보다 함께 원인을 찾아주는 게 필요했던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같이 봐볼까?"라는 말. 그런데 후배가 똑같은 실수를 했을 때,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후배는 불편해했다. "괜찮다고만 해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아, 이해가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이런 사람을 사랑해야"가 "이해하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이라면, 그건 나를 완벽하게 알아주는 사람을 찾으라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런 사람 있기나 할까.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른다. 아마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자기 방식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너는 이런 게 필요해?"라고 물어볼 줄 아는 사람. 오늘 못 알아줘도 내일 다시 물어보는 사람. 그런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아직 잘 못한다. 서툴다. 아내의 침묵을 보면 아직도 가끔 답답해한다. 말로 표현해 달라고 하고 싶어진다. 아이들이 떼쓸 때도, "이해해"보다는 "빨리 진정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이해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내 방식대로 상대가 반응해 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상대가 원하는 이해 방식을 물어본다. "지금 이야기 들어줄까, 아니면 그냥 옆에 있을까?", "조언이 필요해, 아니면 공감만 해주면 돼?" 이것도 처음엔 어색했다. 너무 직접적인 것 같아서. 그런데 직접 물어보니까 훨씬 쉬워졌다. 혼자 고민하다 엉뚱한 방식으로 위로하는 것보다 낫다.
그리고 나도 말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지금 조언보다는 공감이 필요해", "말없이 있어줘도 괜찮아." 처음엔 이런 말 하는 게 민망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근데 내가 먼저 말을 하니 훨씬 편하다. 상대도 나도.
어떤 사람을 사랑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완벽하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나는 너를 잘 모르겠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원하는 방식을 물어보고, 자기가 원하는 것도 말해주는 사람.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를 메우려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한다.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툴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서로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다시 물어볼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이제 이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이해하려 애쓰는 이런 사람을. 이해받고 싶은 것도 용기 내어 말하는 이런 사람을.
사랑은 이해의 완성이 아니다. 이해하려는 시도의 반복이다. 오늘도 실패하고, 내일 다시 시도하고.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배워가는 것. 뭐든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이해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