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과 따봉충 너머의 '무대'

by 고승혁

*헤더의 사진은 '큐오피'님의 블로그에 게시된 사진을 편집한 것입니다.

새정치연합 당대표회의실의 영상·사진·취재기자(나 있음~)/출처 뉴시스

지난달 20일 오후 2시.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회의실.


사람 어깨 높이까지 오는 새까만 삼각대가 죽 늘어선다. 지상파와 종편 그리고 보도 종합채널의 카메라 기자들이 육중한 방송용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얹는다. 이들이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는 사이 신문사와 통신사 카메라 기자는 회의석 맞은편에 진을 친다. 취재기자는 재빠르게 간이의자를 차지하고서 노트북을 켠다. 인터넷을 연결한다. 이제 막이 오른다. 당대표회의실 천장에 설치되어있는 방송용 LED조명이 새하얗게 빛난다. 방송사의 와이어리스 마이크 체크와 신문·통신사의 녹음 준비까지 끝나면 시작이다.


문이 열리고 문재인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가 걸어온다. 이날 한 전 총리는 대법원에서 정치자금법 위반죄가 확정됐다. 그는 자신이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라고 담담히 말한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반짝이던 카메라 플래시가 멎는다. 취재기자들이 노트북을 챙겨 나간다. 소떼처럼 몰려든 기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회의실 천장에 붙어있는 방송용 조명도 꺼진다. 눈이 아리도록 빛나던 조명이 몸을 식힌다.

조명도 카메라도 마이크도 꺼진 새정치연합 당대표회의실/출처 한국일보

국회는 거대한 무대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회의실에는 방송국에나 있을 법한 조명이 설치돼 있다. 하루 종일 당과 의원들은 기자회견·간담회가 있을 예정이니 기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핵심은 '관심을 부탁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국회는 관종(관심종자)의 세계다. 사회부 동기인 홍간기자의 기획기사에 따르면 국회에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따봉충'이다. 문제는 '관심'과 '따봉'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삼을 때 나타난다.


얼마 전 오찬 자리에서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상임위에서 스타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감사에서 스타가 나와야 의원들도 더 열심히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나는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퍼먹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동시에 모 의원실 비서관의 하소연이 생각났다. "요즘 신문에는 야당 내보낼 지면이 없다면서요" 씁쓸하게 웃으며 그는 국정감사 자료를 훑어보고 있었다. 보름이 넘도록 신문에는 극단으로 치닫는 새정치연합의 친노·비노 내부 다툼이 보도되던 참이었다.


문 대표는 지난 달 까지도 친노가 없다고 했다. 1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과거와 달리 '친노'의 존재는 인정했다 /출처 JTBC


야당 의원들은 예리한 질문으로 정부의 실책을 꼬집어도 모자랄 판에 날카로운 언설로 같은 당 사람들을 찔러대고 있었다. "문재인 재신임 투표 결정은 유신" "싫으면 탈당해서 신당 차려라"란 말이 툭툭 쏟아져나왔다. 당연하게도 새정치연합은 관심을 얻는데 성공했다. 다만 '관심'만을 얻었다.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정치인의 목적은 '선거 승리'가 되어야 하고 '관심'은 그 수단인데 어느새 새정치연합은 선거는 잊고 오로지 '관심'받기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관심이라면 손가락질이라도 좋은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욕을 뱉었다. 표가 떠나더라도 관심만은 붙잡을 요량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어느 날 대변인은 "이 당은 참 대변(代辯) 하기 힘든당이야"란 말을 남긴 채 홀연히 샤워실로 걸어갔다. 고개를 내저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13일 오후 10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가 끝났다. 국회 본청을 나서는 문재인 대표에게 녹음기를 들이밀며 재신임을 강행할지 물었다. 복도를 지나 현관을 나갈 때까지 아무런 답이 없었다. 새까만 세단을 타고 문 대표는 떠났다. 다른 의원들도 저마다 피곤한 얼굴을 한 채 차를 탔다. 텅 빈 국회에는 몇몇 기자들만 남았다. 나는 당대표실 앞 복도에 내팽개쳐둔 노트북과 이어폰을 챙기러 터덜터덜 본청으로 들어갔다. 깜깜했다. 현관부터 계단까지 붉은 주단이 깔린 로텐더홀이 어두웠다. 종일 시끌벅적했던 국회도 이젠 다 멈춘 채 정적만이 남아있었다. 현관 보안요원은 이제 다 끝났냐고 물어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요원은 복도 끝에서 마지막까지 희미하게 빛나던 등을 껐다. 고생하셨어요. 지친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기자 서너 명과 보안요원 둘이 무대를 닫으며 서로를 토닥였다. 통신사 선배 한 명이 내일 보자고 인사했다. 나는 기자실에서 짐을 챙긴 뒤 뒷문으로 나갔다. 앞 뜰이 넓어 도심에서 한 걸음 정도 물러난 국회 경내는 조용했다. 창마다 밝은 고층 건물이 먼 곳에서 환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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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北 “핵뢰성으로 대답”… 핵실험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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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X아장아장 정치부>

아장아장 정치부 '하나'

아장아장 정치부 '둘'

아장아장 정치부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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