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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22. 2022

[M :신과 악마의 내기] #4. 과거

커다란 동굴 안에서 일정 간격을 두고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소리는 동굴에서부터 울려서인지 제법 크게 들려, 동산에 있던 남자와 여자의 귀에도 들어갔다. 남자의 이름은 아담, 여자의 이름은 하와였다. 그들에게는 많은 것이 부족했다. 옷이 없어 벗고 다녀야 했고,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녀야 했다. 집을 짓는 방법은커녕 ‘집’이라는 개념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가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이 생활에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집이나 신발 따위 같은 것들이 딱히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신은 항상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보살폈다. 어디서든 잘 수 있고, 옷을 벗고 다녀도 춥거나 덥지 않을 완벽한 날씨를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혹여 맨발로 걸어 다니다 다칠까, 바닥은 전부 구름처럼 생긴 푹신한 땅으로 만들어두었다. 신은 그만큼 아담과 하와를 사랑했다. 그가 만든 첫 인간이었기에 더 애정이 갔다.           

울리는 바람 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것은 하와였다. 아담과 같이 자고 있을 무렵에 들려온 바람소리는 하와가 다시 잠들 수 없게 했다.

“일어나 봐.”

아무리 흔들어도 아담은 깨지 않았다. 하와는 그녀도 모르게 일어나 동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가 시끄러워 잠에서 깬 것이 짜증이 나서가 아니었다.

‘호기심’

단지 그 하나 때문이었다. 울창한 숲을 지나 소리가 나는 동굴 쪽으로 걸어갔다. 동굴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점점 커졌다. 숲은 아담과 하와가 사는 곳과는 정반대였다. 어두웠고, 습기가 많았다. 바닥은 구름 위에서 자란 덩굴과 식물들로 인해 맨발인 하와가 걷기에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호기심은 결국 하와를 동굴 앞까지 이끌었다. 동굴 앞에 다다랐을 때 하와를 놀라게 한 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와 함께 동굴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바람, 그것이 하와를 서있기조차도 버겁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하와의 호기심은 그녀 스스로를 동굴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동굴 내부는 밖의 날씨와는 전혀 달랐다. 한기와 싸늘함이 느껴져 하와도 모르는 사이 팔짱을 끼게 만들 정도였다. 동굴 내부는 깊었다. 계속 걸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고, 조용했다.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그렇게 큰 소리가 자신의 걸음을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동굴 안에 누구도 없다는 듯 조용했다. 아차 싶은 나머지 동굴을 나가기 위해 뒤를 도는 순간 하와 앞에 있는 거대한 생명체가 나타났다. 나타난 생명체가 내뿜는 포효에 하와가 뒤로 나자빠졌다. 소리가 얼마나 큰지 동굴 위에 매달려있던 거대한 종유석이 무더기로 떨어져 내렸다.

“누군가 했더니 인간이구나.”

커다란 생명체가 하와를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와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서서히 생명체를 쳐다봤다. 거대한 나무와도 같은 검은색 다리 네 개, 꼬리에는 스치기만 해도 죽을 것 같이 날카로운 가시 여러 개가 달려있었으며, 꼬리를 타고 올라간 등에는 그 큰 생명체를 휘감고도 남을만한 큰 날개가 달려있었다. 가시나 뿔이 달려있을 것 같은 머리는 삼각형 모양의 매끈한 모양이었고, 하와를 쳐다보는 두 눈동자는 얼마나 깊고 검은지 그녀의 본능이 그녀에게 도망치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하와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해서였는지 그 생명체는 다시 자리에 엎드렸다. 단지 자리에 엎드리는 것만으로도 동굴이 흔들릴 정도큰 몸집이었다. 그제야 하와는 조금 안심이 됐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그 생명체에게 다가갔다. 검은 생명체는 하와가 오는 걸 알면서도 귀찮은지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하와가 가까이에서 생명체를 보았다.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피부는 더 두꺼웠고, 강해 보였다. 그녀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 피부를 만지려는 순간 커다란 목소리가 또 한 번 동굴을 울렸다.

“난 너희 신만큼 너희에게 호의적이지 않아.”

“하나님께 들은 적이 있어요. 뱀 맞죠?”

“할 말이 그렇게 없나.”

말을 마치고 뱀은 자신의 팔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당신은 강하다고 했어요. 모든 생물을 아끼지만 특히 당신을 아낀다고도 했고요.”

하와가 말을 하는데도 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와가 조금 적응됐다는 듯 계속 뱀을 만졌다. 어두웠고, 무서웠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욱 끌렸다. 하와와는 반대로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물어 죽이고 싶었지만, 절대 그럴 수 없었다. 하와 뒤에는 신이 있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창세기 1장 중)>          

신이 빛과 어둠, 바다와 땅을 만든 후에 창조한 것은 생물이었다. 그들 자체로 보기에 좋았지만, 이들을 관리하고 돌볼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뱀’이었다. 알려진 뱀과는 그 모습이 많이 달랐다. 머리는 비슷했지만 크기 자체가 달랐고, 어떤 칼도 상처를 내지 못할 것 같은 피부와 거대한 날개가 등에 달려 있었다. 특히나 가장 다른 점은 다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훗날 사람들이 책에서 읽고, 전설적인 존재로 믿고 있는 ‘용’은 사실 태초의 뱀이었다. 전해지고 전해져 오며 그 이름이 바뀐 것뿐. 신은 뱀을 생물들 위의 존재로 만들고서 그만한 권한을 부여했는데, 그게 바로 ‘언어’였다. 언어는 뱀을 다른 생물과는 다르게 신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것으로 다른 생물을 다스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뱀은 이 특권이 좋았다. 다른 생물들과 다르다는 점, 강하다는 점. 자신만이 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점. 이것이 그를 자만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자만에 빠진 뱀은 다른 생물들을 돌보기는커녕 그들을 상처 입히며 자신의 발아래 두는 것을 즐겼다. 신이 보기에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신은 곧 뱀을 대신할 관리자를 만들었다. 신과 가장 유사한 모습으로 만든 인간. 그들은 뱀이 아닌 다른 생물들과 비교해도 약해 보였다. 강하지 않은 다리와 팔, 날카롭지 못한 이, 어떤 공격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딘 손톱. 하지만 신은 그 무엇보다 강력할 수 있는 지혜를 그들에게 주었다. 그들이 가진 지혜는 곧 뱀과는 다르게 모든 생물들에게 진정한 관리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신이 인간을 만들어 지혜를 주었다는 것은 곧 뱀의 귀에도 들어갔다. 뱀은 반발해 큰 날개를 이용해 당장 신 앞으로 날아갔다. 자신에게만 주어진 특권을 어떻게 다른, 그것도 저렇게 나약한 인간에게 줄 수 있느냐고 따지기 위함이었다.

“특권은 생물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돌볼 수 있는 기회를 먼저 가진 것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뱀도 이미 자신이 잘못한 일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동산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 주변은 밝고, 항상 빛이 있는 곳이었지만, 뱀이 그곳에 머무른 후부터 동굴의 주변은 항상 한기가 돌았다. 곧 그곳에 빛이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 만들어졌다.           

하와는 그 뒤로도 거의 매일 뱀을 찾아갔다. 매일같이 뱀에게 와서 자신이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부터 아담과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자주 보면 미운 정이라도 들기 마련이었지만, 뱀에게는 하와는 그저 자신의 이런 비참한 처지에 이유가 되는 존재였고, 분노이자 증오의 대상이었다. 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하와는 말을 듣지 않았고, 멋대로 계속 동굴에 찾아왔다.

“오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만 저쪽은 너무 심심한걸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뱀의 얼굴이 빨개졌지만, 문득 뱀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만족한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후, 뱀은 180도 변했다. 하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했다. 가끔씩 장난도 치며 서로 친해져 갔다. 그러면서 뱀은 조금씩 조금씩 하와에게 접근해갔다.

“손톱이 무디구나.”

“제 손톱이요?”

“다른 생물이나 나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있으면 좋을 것을.”

“괜찮아요. 전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걸요.”

뱀은 하와 잘 대해주는 듯했으나, 하와에게 없는 점들을 하나둘씩 말하며 마음을 흔들기 위해 노력했다. 날카로운 손톱, 튼튼하지 못한 피부, 위협적이지 않은 이빨. 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하와에게 이렇다 할 자극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뱀이 포기할 무렵 하와가 뱀에게 뜻밖의 말을 건넸다.

“날개로 하늘을 날면 어떤 기분이에요?”

뱀의 눈이 커졌다. 입가엔 미소가 번졌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궁금해?”

“네. 아담이랑 전 한 번도 날아 본 적이 없거든요.”

“올라와.”

뱀이 꼬리를 내려 하와에게 자신의 등까지 길을 내주었다. 하와는 망설이더니 이내 뱀의 등에 탔다. 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두껍고 강인해 보이는 네 다리로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관리자라는 직책에서 물러나고 동굴에 들어간 후 처음이었다. 뱀은 오랜만에 본 빛이 눈부시다는 듯 날개 한쪽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하지만 이내 자리에서 몸을 움직이더니 하와에게 말했다.

“꽉 잡아.”

하와가 다시 물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처음엔 그 속도가 너무 빨라 하와가 뱀을 놓칠 뻔했지만, 다행히 뱀의 등에 날카롭게 나있는 가시가 하와를 지탱해주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에 뱀의 등에서 본 동산은 아름다웠다. 하늘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었고, 동산을 이렇게 높은 위치에서 본 것도 처음이었다. 다른 동물들과 함께 있는 아담이 손톱만큼 작아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뱀의 등에 앉아 하늘을 날아다녔다. 이렇게 더 날고 싶었지만, 뱀은 곧 동굴 앞으로 착지했다.

“왜 벌써 내려온 거예요? 엄청났어요! 처음이에요 이런 기분은!”

그런 하와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뱀은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또 태워줄게.”

하지만 뱀은 다음날, 그다음 날도 하와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날개가 아프다는 핑계였다. 그 덕에 하와는 매번 기대가 무너져 풀이 죽었다.

“네가 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전 날개가 없는걸요”

“날개가 생기는 법을 모르는 거야?”

“날개가 생기는 법이요?”

“하늘을 나는 모든 동물들은 다들 선악과를 먹어. 너희가 자는 나무 그늘, 그 나무 열매 말이야.”

하와의 눈이 동그래졌다. 처음 안 사실에 놀란 아이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건 절대 먹지 말라고 했는걸요?”

“그래? 그거 이상하군”

하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날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고, 왜 하나님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야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뱀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와에게 신이 내린 명령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한 것. 그것 하나로 충분했다.         

하와는 며칠을 고민했다. 아담과 잘 때도 잠들지 못하고 머리 위에 있는 열매를 쳐다보았다. 다른 동물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선악과에서 눈을 떼지 못다. 마치 먹으면 자신에게 날개가 생길 것만 같은 착각 속에 결국 하와는 아담에게 뱀과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 후 선악과가 둘의 입으로 들어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등에 날개가 돋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이 벗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끄러움, 수치심, 두려움 같은 모든 감정을 알게 된 그들은 재빨리 무화과 나무의 잎을 떼어 그들의 몸을 가렸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빛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 그곳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것은 그들의 신 하나님이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신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아담에게 물었다.

“제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너에게 알려주었느냐. 네가 먹지 말라 말한 선악과를 먹었느냐.”

“하와가 주어... 하와가 제게 그 열매를 먹어보라 하여 먹었습니다.”

인간의 첫 번째 거짓말이었다. 하와가 먹어 보라 한 것은 핑계였고, 거짓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같이 선택한 결과, 그뿐이었다.

“하와야, 어찌하여 선악과를 아담에게 주었느냐.”

“뱀이 먹으면 날개가 생길 것이라 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먹었습니다.”

신이 눈 깜짝할 사이, 뱀이 있는 으로 이동했다.

“뱀은 내 앞으로 나오라.”

그 말 한마디에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숲은 여전히 고요했다. 잠시 기다리던 신이 곧 걸음을 옮겼다. 그가 숲 안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빛을 막고 있던 덩굴과 나무들이 바닥에서 뜯겨 공중으로 날아갔고, 그 거대한 몸집을 숨길 수 있었던 큰 동굴도 바닥에서 뜯겨 나갔다. 곧 뱀의 모습이 보였다.

“뱀은 내 앞으로 나오라.”

이번엔 뱀의 몸이 강제로 신 앞에 옮겨져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다. 뱀은 떨고 있었다. 신이 그토록 자신에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었지만, 죽음보다 더한 것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네가 하와를 꾀어 선악과를 먹게 했느냐.”

뱀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 신은 이미 모든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흙을 먹을 것이다.”

차분했지만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였다. 뱀의 몸집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날개도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어떤 공격이 와도 뚫을 수 없을 것 같던 피부는 매끈해졌다. 날카로운 발톱과 튼튼한 다리 역시 떨어져 나갔다. 뱀은 이제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도, 튼튼한 다리와 피부도, 날개도 없는 그저 작은 동물에 불과했다.

“너의 그 사악한 혀가 결국 널 이렇게 만드는구나. 그 혀만은 살려줄 테니, 평생을 짓밟히며 그 잘난 혀로 살아보아라.”

뱀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이내 아담과 하와 역시 하늘 밖으로 떨어졌다. 동산에 먹구름이 끼어 빛 한줄기 들지 않았다.           

세상에서 다리 없이 배로 기어 다니며 사는 것은 지옥이었다. 자신이 하찮다 생각했던 동물들에게 짓밟히며, 땅에 있는 동물의 사체들을 먹으며 지냈다. 나중에는 직접 사냥을 하기도 했지만, 이가 없어 통째로 배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무려 100년. 100년 동안을 그 낮은 곳에서 살다 그토록 싫어하던 인간의 발에 밟혀 죽었다. 마치 예고한 죽음처럼. 그가 죽고 난 후 신은 그를 불쌍히 여겨 천국으로 불러들였고, 그를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로 만들어주었다. 세상의 첫 번째 천사, ‘무어’였다. 무어는 천사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인간을 증오하는 건 여전했다. 겉으로는 인간을 보살피는 척했지만, 그저 신의 눈 밖에 나 다시 땅에 떨어지지 않기 위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아들이라 부르는 예수까지 세상에 보내 죽게 하는 것을 보고, 인간에 대한 헌신과 특권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무어는 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인간은 천사와 신, 악마의 개입이 없다면 자연스레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운명입니다. 고작 그런 인간들을 위해 이런 희생을 치루어야 합니까”

질문이었지만. 동시에 불평이었다. 천사가 되었지만, 무어는 결국 변하지 않았다.

“진정 그렇게 생각하느냐.”

“확신합니다. 인간의 그 어떤 생물보다도 악하고 탐욕스럽습니다.”

무어는 대답이 없는 신에게 몰아치듯 말을 이어갔다.

“저와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한 인간을 선택해 그 사람의 일생에, 신마저도 그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가 과연 타락할지, 선하게 살지. 만약 그가 타락하지 않고 선하게 산다면 더 이상의 불평 없이 제가 맡은 소임을 다하며 평생을 살겠습니다. 단, 그가 타락한다면 제게 100년, 딱 100년만 인간들의 세상을 다스리며 살도록 해주십시오!”

정당하지 못한 거래였다. 이미 무어는 신에게 배려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지금의 천사 자리 역시 신이 그에게 내린 축복이자, 배려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조건을 걸며, 자신이 원하는 것만 추가로 말한, 오직 그에게만 좋은 내기였다. 무어의 그 잘난 혀는 뱀이었을 때도, 천국 밖에 떨어졌을 때도, 그리고 천사가 된 지금도 살아있었다. 신은 그런 무어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서 사라졌다.

“자신이 없으십니까. 인간을 그렇게 믿으며 자신이 없으신 겁니까?!”

소리치는 무어의 외침을 뒤로한 채 하늘에 무지개가 드리웠다. 내기에 응한 신의 대답이었다. 무어는 하와를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었을 때와 같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인간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무어가 담당했다. 공정하게 인간을 선택한다고 신에게 말했지만, 가장 불우한 환경의 가족을 찾았고, 폭력적이며, 부모로서 부족한 인간들을 찾았다. 그리고 거기서 한 인간을 태어나게 했다. 신과 무어는 그 인간이 태어날 때 그의 양쪽 손에 ‘M’이라는 손금을 새겼다. ‘THE MIDDLE’ 중간이라는 뜻이었다. 그 인간은 미드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동시에 ‘M’이라 불렸다. 내기의 승패는 쉽게 갈렸다. 미드는 폭력적이고 술에 찌든 아버지 밑에서 폭력을 당하며 자랐고, 미드 역시 자신의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자랐다. 그나마 신을 믿는 어머니 밑에서 그 이상 타락하지 않고 잘 지내는 듯했지만,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도 그 사실에 미쳐 자살을 택하는 사건을 계기로 미드는 완전히 타락했다. 어머니가 믿던 신을 부정하고 욕했으며, 강도, 폭력, 강간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미드는 돈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다 이내 마을 사람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다. 신과 무어의 내기는 채 30년도 되지 않아 그렇게 끝이 났다. 무어는 그 내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인간들의 세상으로 내려왔다. 무어의 100년간의 인간 세상의 통치가 시작된 것이었다. 신조차 인간 세상에 개입할 수 없었다. 100년 동안 크고 작은 전쟁들은 끝없이 계속되었고, 지옥에 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자연히 늘었다. 질병은 물론이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조차 빈번했다. 흑사병, 백년전쟁. 큰 사건들로 무수히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나갔다. 사람이 죽지 않는 날이 없었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지옥만큼 고통스러운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약속한 100년이 지나고, 무어는 천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갈 수 없기도 했지만, 스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무어는 스스로 대천사를 상징하는 날개를 떼어버리고 지옥으로 들어가 그곳을 관리하는 왕이 되어 군림했다. 사람들은 이런 무어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타락 천사, 루시퍼, 바알제불. 모두 무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무어가 떼어버린 하얀색 날개 끝부분에서 무어가 뱀이었을 때 있던 날개가 자라났다. 그 뒤로도 무어는 인간 세상에 개입했다. 인간들은 너무도 나약해서 무어가 그들의 귀에 바람만 불어도 쉽게 살인을 저질렀고, 범죄 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인간을 꾀어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무어가 관리할 때처럼 많은 개입을 할 수는 없었다. 그중 가장 큰 차이는 신도 인간 세상에 개입한다는 것이었다. 신의 개입은 그만큼 지옥에 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수많은 전쟁을 내고, 인간들의 죽음을 이끌어냈지만, 무어는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무어는 신에게 다시 한번 내기를 제안했고, 그 내기에 선택된 사람이 바로 ‘율’이었다. 무어는 자신에 차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봐온 인간의 모습은 악하고, 나약하고, 범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에. 그렇기에 적당한 부모 밑에서 자란 적당한 인간을 선택했다. 처음으로 시작된 공정한 내기다. 하지만 무어의 예상을 엎고, 율은 선하게 자랐다. 돈이 없어도, 사는 것이 힘들어도 율과 그의 부모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무어는 문득 불안해졌다. 이대로 율이 선하게 자란다면, 100년간 인간 세상에 작은 개입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무어는 율의 인생에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했다. 분명한 규칙 위반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엔 작게 시작했다. 가뜩이나 없는 율의 가정에서 돈을 빼앗았고, 직업을 잃게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율의 가족의 유대는 더욱 끈끈해졌다. 급기야 무어는 율의 부모를 죽게 만들었다. 명백한 위반이었지만, 신은 아무런 제제도 없었다. 그것이 율이 처음으로 신에 대해 분노한 일이었다.           

율은 그 뒤로 6년 동안 신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부족했다. 분노는 했지만, 신을 부정하진 않았다. 여전히 그의 마음 한편에는 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애써 그것을 무시하고 있을 뿐. 더욱 강력한 것이 필요했다. 쉽게 타락하지 않는 율을 타락시키기 위해 무어는 그에게 하린의 존재를 알게 해 주었다. 율을 지치게 만들고, 그리움에 빠지게 만들어 율을 하린이 일하는 가게로 들어가도록 했다. 율과 하린은 무어가 의도한 대로 그들의 힘이자 사랑이 되었다. 하린을 만나고 이것이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율을 바라보며 무어는 때를 기다렸다. 지금 당장은 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나, 자신에게 원하는 결과가 올 것이라 믿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그들이 가장 행복해질 무렵에 때가 되었다고 느낀 무어는 하린이 아닌 율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율이 죽어가면서 신을 향해 분노하고 부정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무어의 생각은 한참을 빗나갔다. 율은 오히려 죽기 전 하린을 위해 기도했다. 하린의 행복을 위해 기도를 하는 율의 모습에 무어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살려야 했다. 율의 심장에 두 손을 찔러 넣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율은 이미 죽었다.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신과 무어의 내기가 그렇게 끝나고 곧 무어의 발밑이 꺼지며 천국에서 쫓겨날 때와 같이 지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어의 잘못된 계산이, 아니 인간에 대한 그의 잘못된 확신이 그를 내기에서 패배로 이끌었다. 무어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탁’

더그가 잔을 책상에 내려놓는 소리만이 술집 안에 울렸다. 율의 눈에서 무거운 눈물이 흘렀다. 결국 정말 자신의 인생에 신은 없었다. 신은 자신의 인생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신이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투정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신은 자신의 인생에 없었고, 있던 것은 무어였다. 그토록 사랑하던 하린을 만나게 해 준 것도 결국 무어였음에 눈물이 흘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신에 대해 원망하고 불평해야 할지, 왜 하필 그 대상이 나였는지, 하린은 어찌 되었는지. 묻고 싶은 말은 많았다. 아니 원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율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원망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어떻게 되셨죠?”

신에 대한 원망을 예상했고, 더그 본인에게 소리를 치며 주먹을 날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율은 자신이 죽을 때 신을 향해 기도 했을 때처럼 예상 밖의 질문을 던졌다.

“두 사람 모두 이곳 천국에 있어. 천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지. 너에 대한 소식은 알렸어. 슬퍼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하더군. 죽을 때 얼마나 아팠을지 걱정하며 눈물을 쏟으면서도, 자신의 아들이 타락하지 않고 본인들과 같은 천국에 왔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넌 내기의 주인공이기 전에 그들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으니까.”

다행이었다. 율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생각하니 신에 대한 원망도 지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만날 수 있나요?”

“천사가 되는 교육을 받으면 만날 수 있지.”

더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난 너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어. 이건 그동안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신의 미안함이 담긴 배려이기도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네가 받아들여야 할 짐이기도 해.”

또 무엇일까. 무엇이 자신을 위한 배려이면서도 짐일지 알 수 없었다.

“그게 무엇이죠?”

“내 자리, 이승을 관리하는 자리를 네게 주려고 해. 나름 파격적인 제안이야. 쉽게 말해 이등병이 한 번에 한 부대를 관리하는 장군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 뒤로 이어진 더그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생각한 것보다 더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천사장, 천인장, 천군장은 신 바로 밑의 존재들인데, 무어가 천국에서 쫓겨나고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자리였다. 그 오랜 시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자리를 제안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율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자신은 그저 부모님을 보고 싶을 뿐, 그런 자리에는 욕심나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정확히 천국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자신이 맡기에는 너무나도 큰 자리였다.

“천인장은 인간 세상에서 일하는 천사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 악마들과의 다툼이나 분쟁에서 그것을 해결해주는 일을 하지. 또한 천사들과는 다르게 인간들의 세상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도 하고.”

시큰둥한 율의 얼굴에 대고 더그가 말했다.

“네가 사랑한 하린이도 인간이고.”

율의 눈이 커졌다. 하린을 만날 수만 있다면,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천인장의 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를 만날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되죠? 지금 당장 다시 내려가면 되나요?”

더그는 흥분한 율의 잔에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당장은 안돼. 천인장이 그렇게 쉬운 자리도 아니고. 천사들을 관리하고 인간과 천사를 보호하려면 네가 가진 그 힘, 통제할 수도 있어야 하고.”

“당장 시작하죠. 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빨라야 백 년.”

맥이 빠졌다. 더그가 자신과 장난을 치는 건가 하는 의아한 표정과 실망감이 율의 얼굴에 동시에 드러났다. 백 년이라면 하린이 죽고 만나는 것이 훨씬 빨랐다. 그런 율의 표정을 읽고 더그가 말을 이어갔다.

“인간이 죽을 때 인간 세상의 시간은 잠시 멈춰. 인간들은 모르지만, 모든 천사나 악마들은 알고 있지. 하루에 죽는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다고.”

“그럼 이곳에서의 백 년은 인간 세상에서 얼마간의 시간이죠?”

“1년.”

1년이면 해볼 만했다. 1년이라면, 하린과 추억할 것도, 하린에게 남은 시간도 충분했다. 단 한 번이라도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율에게는 정말이지 소중한 시간이었다.

“백 년간 바뀔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하린에 대한 사랑만으로 이 자리를 맡으려고 한다면 내가 너에게 이 자리를 맡기지 않을 거야. 또 빨라야 백 년이야. 네가 하는 것에 따라 그 시간이 달라질 수도 있어. 하린이 널 잊고,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고, 이 선택이 앞으로 하린이나 너한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건지 역시 아무도 몰라.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기에 부족함 없는 사안이야.”

하린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그녀를 지켜만 볼 수 있어도 율에게는 충분한 행복이었다.

“하겠어요.”

그렇게 율과 더그는 말없이 각자의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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