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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22. 2022

[M :신과 악마의 내기] #5. 미가엘

한 남자가 아무도 없는 평상에 걸터앉아 가만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거의 다 비워진 포도주 한 병을 들고 조선의 왕이 살았던 궁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 사람들이 출근 준비로 바빴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이제 막 떠오르는 붉은색의 태양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는 대천사 율이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어둠은 빛 속에서 어두운 법이지.”

율이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하기 전, 더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마치고 율을 한 남자에게로 데려갔다.

“이게 얼마만인가. 더그!”

그는 더그를 만난 것이 정말로 반가운 듯 더그를 끌어안고 위로 들어 올렸다. 더그도 분명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사람 앞에선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숨 막혀 미가엘”

“아 미안하네. 너무 반가워서 말이야! 그러니까 자주 좀 오라고!”

말을 마치고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까마득하게 넓은 공간 전체가 울리는 것 같았다.

“소개할 사람이 있어. 이쪽은 율.”

“오 드디어 왔는가 자네! 아주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어. 혹시나 오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잘 찾아왔군!”

그의 성격을 대변하듯 율의 등을 퍽퍽 치며 말했다.

“이쪽은 미가엘, 나와 같은 대천사이자 천군장이야. 천국의 군대를 관리하지.”

"안녕하세요."

미가엘. 성경에도 종종 나오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미가엘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그의 모습은 율의 상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3m는 되어 보이는 체구. 덥수룩하게 자란 긴 머리와 수염이 그의 얼굴과 잘 어울렸다. 이승의 사람들이 그린 미가엘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더그는 미가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곧 율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지금 네 옆에 이렇게 따라다녀서 한가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 굉장히 바쁜 사람이야.”

사실 율은 더그의 친숙한 모습을 봐서 그런지 그가 높은 지위에 있는 천사임을 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의 천사가 되는 교육은 천군장인 미가엘이 맡아줄 거야.”

본격적으로 교육이 시작되려고 하니 문득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 듣기만 했을 뿐 아직 사용해 본 적도 없는 힘이었다. 그런 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그는 계속해서 율에게 이야기했다.

“미가엘이 잘 가르쳐줄 거야. 유능한 천사거든.”

더그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 미가엘이 미소를 지으며 콧바람을 내쉬었다. 율은 그런 미가엘의 모습이 조금은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이 친구랑 같이 있느라 일도 많이 밀렸고, 위에 양반이 잔소리를 하도 해서 말이야.”

더그는 미가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율에게 가까이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미가엘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말로 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

더그는 율에게 윙크를 하고 날개를 펴더니 다시 무서운 속도로 날아 감쪽같이 사라졌다. 더그가 날아가고 미가엘과 율 사이에 한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미가엘을 따라 도착한 곳은 엄청난 수의 천사들이 각자의 빛을 들고 서 있는 곳이었다. 빛의 형태는 모두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무리는 방패를, 어떤 무리는 창과 칼을 들고 절도 있게 움직였다. 미가엘이 그곳에 등장하자 모든 천사들이 그에게 자세를 갖추고 예를 차렸다. 그 모습이 꽤나 장관이었다. 미가엘은 이내 한 천사를 불러 별다른 소개도 없이 말을 시작했다.

“자네 나 좀 찔러보지.”

“네?”

다짜고짜 자신을 찔러보라는 미가엘의 말보다 더 놀란 것은 천사의 행동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천사가 곧 그의 몸을 아무렇지 않게 찔렀다. 너무 놀란 율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하지만 미가엘은 늘 있는 일인 것처럼 태연하게 자신의 몸에서 칼을 빼내었다.

“봤지?”

“뭐를요.”

“찔렀는데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래서 그게 뭐요!”

확실히 설명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미가엘 나름 몸으로 쉽게 보여준다는 것이 오히려 율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니 그니까! 빛은 같은 빛에게 상처를 내거나 피해를 줄 수 없어. 천사는 천사를 죽일 수 없다고!”

그제야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걸 꼭 직접 보여주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물음은 떠나지 않았다.

“네가 강한 이유는 네가 가진 힘의 크기도 크기지만, 빛과 어둠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건 우리 대천사들도 가능하지 않아. 오직 태초의 천사이자 악마인 무어와 ‘M’, 그리고 너 이렇게 세 명만 가능해.”

그제야 빌이 왜 자신에게 달려들었고, 율이 가진 힘이 대단하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율은 마음만 먹는다면 천사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미가엘은 말을 마치고 어딘가로 율을 데려갔다. 적막한 방.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진 벽이 방을 감싸고 있었다. 방의 한가운데에 빌에게서 본 어둠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잘 봐”

미가엘이 말을 마치더니 자신의 손을 어둠에 가까이 가져갔다. 곧 미가엘의 손에서 빛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미가엘의 몸 전체를 감싸 그를 보호했다.

“봤지?”

자신의 설명이 대단했다는 듯 만족한 미가엘의 얼굴이 보였다. 다시 드는 생각이었지만, 확실히 설명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직 이해를 못 하겠다는 율의 표정을 보고 답답하다는 듯 미가엘이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봐봐. 어둠에 가까이 다가가니까 내 몸에서 빛이 알아서 나오지? 그건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지만, 빛이 어둠에 반응해서 그런 거라니까!”

잠시 생각을 하던 미가엘이 번뜩이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아! 스콥이 네 힘을 개방해줬지?”

“네. 스콥이 충격으로 날아가기도 했어요.”

“사실 스콥은 네가 가진 빛만 열어준 거야. 하지만 그 힘이 나오자 너의 다른 손에 있는 어둠이 반응해 활성화가 되었고, 결국 네가 그 두 힘을 컨트롤하지 못해서 충격파가 생긴 거지.”

이제야 그동안의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자신이 가진 힘의 개념이 율의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네가 강력한 동시에 위험한 거야. 두 힘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어느 한쪽이 커진다면 그 강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널 다치게 하고, 심하면 소멸까지 갈지도 몰라.”

막연히 자신이 강하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던 율에게 조금 두려움이 생겼다. 하린을 보지 못하고 이대로 다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기본적인 설명은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교육을 해주겠다며 율을 데리고 간 곳은 천사들이 모여있는 장소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높은 곳이었다. 위에서 보니 천군들의 모습은 더 장관이었다. 절도 있었고, 강해 보였으며, 그 수가 너무 많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천군들 모두를 관리하고 지휘하는 자가 율의 옆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아래와는 다르게 이곳은 조용했다. 다른 천사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으며, 오직 미가엘과 율 그리고 널찍한 집 한 채가 전부였다. 미가엘은 율에게 이곳이 자신의 집이라며 소개하고는 율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딱딱해 보이는 나무 의자에 앉자 나무가 아닌 듯 푹신하게 꺼졌다. 곧 미가엘이 차를 내왔다. 따뜻한 차가 긴장된 율의 몸을 조금 풀어주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지?”

갑자기 하린에 대해 질문하는 미가엘에게 잠시 망설였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그가 말했겠지만 단지 그 여자를 위해서 천인장이 되려고 하는 거라면, 네가 아무리 강하고, 능력이 있다 해도 내가 반대할 거야.”

확실히 율이 맡기에는 버거운 자리였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대천사의 자리가 바뀐 적은 없었다. 그런 자리를 이제 막 천사가 된 율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쉽게 생각할 일 아니었다. 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말없이 찻잔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미가엘은 말을 마치고 집 밖으로 율을 데리고 나왔다. 밖으로 나온 미가엘의 손에 전에 봤던 빛이 있었다. 미가엘은 곧 빛을 이런저런 모양으로 변화시키며 말했다.

“전투는 상상력이야. 그것만 알아둬.”

“상상력이요?”

“그래 빛은 네가 상상하는 모든 모양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 너의 능력에 따라 그 크기나 강함에는 차이가 있지만, 상상력이 있다면 그걸 극복할 수도 있지. 내가 자주 이용하는 모양은 이 도끼.”

곧 미가엘 손에 있던 빛이 커다란 도끼로 변했다. 도끼는 3m가 되는 그의 체구와 비교해도 작지 않았다. 날카롭게 서있는 날과 거대한 크기. 이렇게나 큰 도끼를 휘두르며 싸울 수 있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처럼 이렇게 큰 형태의 무기를 만들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해. 이 정도 크기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천사는 흔치 않아."

미가엘은 약간 으대며 율에게 무기를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 방법은 몰랐으나 율의 몸에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빛을 꺼내 들었다. 율은 눈을 감고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그려나갔다. 곧 빛이 움직이고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창을 만들어내었다. 미가엘의 도끼와 비교해도 작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고, 강해 보였다. 놀란 건 미가엘만이 아니었다. 정작 그 창을 만든 본인 율도 놀라서 그 자리에서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확실히 평범한 힘은 아니군”

미가엘이 혼잣말로 속삭였다.

“이번엔 같은 방법으로 어둠을 활성화시켜보게나.”

어둠은 곧 율의 다른 손에서 나와 빛으로 가득한 밝은 공간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내뿜더니 곧 방패로 변했다. 이번에도 미가엘이 놀랐으리라 생각하며 미가엘이 있는 곳을 봤지만, 미가엘은 자리에 없었다. 기척이 난 곳을 쳐다봤을 때 수천 개의 창이 미가엘의 방패에 꽂혀있었고, 셀 수없이 많은 천사들이 공중에서 율과 미가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천군장님. 어둠이 느껴져서 그만..”

“괜찮네 부대장”

말을 마치고 미가엘이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율이 어둠의 힘을 쓰자마자 밑에 있던 천사들이 미가엘과 율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그곳이 미가엘의 집이라는 건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어둠의 힘에 본능적으로 날아와 공격한 것뿐이었다.

“한동안 여기서 계속 이런 일이 있을 테니 신경 써주지 않아도 된다네 부대장. 그리고 웬만한 놈은 나에게 상처도 못 낼 테니까 말이야.”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함께 천사들을 내려보낸 후 미가엘은 율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잠깐 소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네가 만든 무기는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어. 왜 그런지 아나?”

“글쎄요”

“빛은 빛에게, 어둠은 어둠에게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빛 어둠 상극이라는 거고, 서로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뜻하지. 네가 싸우게 될 상대는 악마일 텐데, 어둠으로 방패를 만들고, 빛으로 무기를 만드는 편이 낫겠지?”

“그렇네요.”

“천사나 악마 모두 무기는 하나밖에 만들지 못해. 각자 빛과 어둠 둘 중 하나씩만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넌 빛과 어둠 두 가지 모두 가지고 있으니 그것 또한 강한 이유 중의 하나이고 말이야.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커질 수 있다는 거지.”

미가엘의 설명이 끝나고 율은 자신의 양 손바닥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율의 손에서 다시 작아진 빛과 어둠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은 앞의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겔 1:10)>          


율과 미가엘의 수련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달이 율의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다가오면 미가엘과 함께 집에서 만나와 포도주를 먹으며 휴식을 취했고, 천국에 있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휴식도 불안하고 조급한 율은 쉬지 않고 나가 자신의 힘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가엘은 그런 율을 볼 때마다 화를 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가엘의 목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그렇게 들리는 것이었다. 미가엘은 교육 이후 시간에 율이 철저히 쉬도록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미가엘과 둘이 있는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말이 많은 미가엘의 말 상대가 되어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율도 미가엘의 말을 듣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주로 천국의 이야기, 태초의 이승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들을 때마다 재밌고 새로웠다.           

미가엘은 거의 집에 있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천군장의 지위는 그렇게 한가한 지위가 아니었고, 율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 중에도 천사들이 심심치 않게 미가엘에게 날아와 말을 전하기도, 물건을 주고 가기도 했다. 급한 일이 있노라면, 잠깐 쉬고 있으라며 자신의 날개를 펴 더그처럼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율은 쉬지 않고 자신의 힘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날은 특히나 한계인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무리 천사가 지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율의 손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율의 힘은 강력했다. 그럼에도 율은 미가엘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빛과 어둠을 꺼내 형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잠시 방심한 사이 왼손에 있던 어둠의 형태가 커졌다. 즉시 오른쪽에 있는 빛으로 균형을 맞추려고 했지만, 이미 율의 몸은 한계였다. 빛은 오히려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에 반해 어둠은 계속해서 커졌다. 빛이 있는 공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미가엘이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놓은 탓에 어둠이 커지고 있음에도 천사들은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시작한 어둠이 점점 율의 왼쪽 손을 타고 올라오더니 곧 어깨까지 번졌다. 정신이 희미해져 갈 무렵 무엇인가 율의 손을 찔렀다. 꽤 날카로운 물체로 찔렸음에도 아프다기보다는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희미한 물체를 앞에 두고는 율의 눈이 감겼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보인 것은 미가엘의 집 내부였다. 서서히 일어난 율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무언가 율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와 율을 덮쳤다. 눈을 질끈 감은 율이 눈을 떴을 때 무언가 율의 얼굴을 핥고 있었다. 범이었다. 그것도 새끼 범.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주방에서 익숙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미가엘이었다. 율은 자신도 모르게 죄지은 사람 마냥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케루빔. 그룹이라고도 부르지.”

성경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날 때 ‘불칼‘로 무장하고 그들이 돌아오는 길을 막은 존재. 사람의 얼굴, 사자의 얼굴, 독수리의 얼굴, 그룹의 얼굴 4가지 얼굴을 가진 존재. 하지만 율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단지 날개를 가진 작은 새끼 호랑이었다.

“성경에서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네요?”

“환각”

“네?”

“그룹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 하나야. 환각을 걸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것.”

그제야 성경에서의 내용이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내가 쉬라고 할 때 쉬었어야지.”

“죄송해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율의 마음이 급한 건 사실이었다. 아무리 이승에서의 시간이 1년이라고는 하지만, 율에게는 빨라야 백 년이라는 시간이었다. 미가엘도 그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율을 다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또 다른 인연이 율의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          

미가엘은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율의 옆에서 훈련을 도왔다. 율이 가진 특별한 힘을 통제하고,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자신의 힘을 통제하게 된 율 미가엘과의 대련을 준비 중이었다. 여느 때처럼 대련을 시작하려는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더그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본 더그였지만 율에게는 인사도 건네지 않은 채 미가엘과 꽤나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둘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는 곧 율에게 다가와 말을 꺼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이야.”

백 년. 자그마치 백 년의 기다림이었다. 율은 자신도 모르게 뛰는 심장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제야 드디어 하린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보통의 천사들이 자신이 가진 힘을 완벽히 통제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천년이었다. 아무리 율의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고는 하나, 자칫 잘못 힘을 썼다가는 소멸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특히나 이승에서는 힘의 균형을 맞춰 줄 미가엘이 없었다. 그런 율의 표정을 읽었는지 미가엘이 말을 꺼냈다.

“네 힘을 통제할 수 없었던 때 기억해?”

“네. 그때 늦게라도 미가엘이 와서 다행이었죠. 안 그랬으면 소멸됐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거 내가 한 거 아니야.”

알 수 없다는 율의 표정에 미가엘은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룹은 상대가 가진 힘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어. 그 힘이 빛이든, 어둠이든. 지금은 귀여운 모습이지만, 태초부터 천국을 지키던 영물이야. 웬만한 천사나 악마도 그룹에게는 안된다고.”

그런 범이 율의 옆에 바싹 기대 있었다. 범이 있다면 미가엘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힘이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 율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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