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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22. 2022

[M :신과 악마의 내기] #3. 천국

율이 눈을 뜨고 쳐다본 풍경은 주변이 온통 하얀 곳이었다. 더그는 어디에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넓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 율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주섬주섬 무릎에 손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난 율이 천천히 그곳을 둘러봤다. 땅과 하늘이 모두 하얗게 도배된 곳.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이 하늘 그 자체인 것만 같았다. 발이 닿는 땅은 구름처럼 푹신했으며, 하얀색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답답하고 숨 막히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마음이 편해본 적이 있을까 할 정도로 깊은 안정감을 느꼈다. 어디로 걸어야 할지 몰라 일어난 방향 그대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가다 보면 더그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중 멀리 하얀 공간 속에서 빛나는 빛이 보였다. 눈부셨지만 따스했고, 강한 빛이었지만 이끌렸다. 그곳으로 점점 발걸음을 옮기면서 율은 그것이 자신이 믿는 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까이 갔다고 다른 무언가가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율의 느낌이, 본능이, 확신에 차 그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끌리듯 더 가까이 갔다. 가까이 갈수록 형체는 짙어졌고, 눈앞까지 다가갔을 때 비로소 형체를 볼 수 있었다. 신의 키는 굉장히 컸다. 율보다 배는 커 보였고 몸집 역시 거대해 보였다. 옷은 커다란 천을 두른 것 같았다. 하반신을 따라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뒤에 있는 빛 때문에 그의 얼굴을 정확히 볼 수 었지만, 그의 표정에서 나오는 감정이 느껴졌다. 언젠가 천국에 가면 웃으며 그를 반겨주는 신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율의 기대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서는 슬픔이 느껴졌다.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왼쪽을 쳐다봐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돌려 왼쪽을 쳐다봤다. 율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구름과 같던 땅이 갈라지더니 곧 어둠이 보였다.         


검붉은색의 불이 가득한 곳. 땅이 걷힐수록 더욱 자세히 보이는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붉은색이라고는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강렬한 붉은색의 불이 어둠 사이사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안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얼굴과 신음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몸은 이미 찢기고, 피가 나고 있었지만, 뒤에 있는 악마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사악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찌르고 있었다. 한 악마는 그런 인간을 웃기다는 듯 시뻘건 색의 불속으로 던졌다 꺼냈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가시가 매섭게 박힌 채찍을 든 악마가 수레를 밀고 있는 인간들을 향해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채찍질을 한 번 할 때마다 인간의 등에서는 피와 살점이 떨어져 나왔다. 다른 악마는 손에서 익숙한 검은색 막대를 꺼내더니 곧 칼과 도끼의 중간적 모습으로 형태를 변환시키고는 사람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잘린 팔과 다리들이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녔다. 이미 지옥이었지만, 지옥보다 더한 지옥 그 자체였다. 구역질이 났다. 율이 시선을 잠시 돌리자 구름 같던 땅이 재빨리 지옥의 모습을 덮어버렸다. 잠시 땅을 향해 헛구역질을 하던 율에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신이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지만 신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율을 부르는 목소리는 점점 사방에서 들리며 그 소리가 더욱 커졌다.   

‘흐억’

신음소리와 함께 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엘리베이터 타면서 기절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너무 격하게 일어나는 거 아니야?”

꿈이었다. 엘리베이터의 빠른 속도에 잠시 기절을 한 율이 꾼 꿈이었지만,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생생하여 아직도 지옥의 장면을 생각하면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런 율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더그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이내 괜찮다며 더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일어나서 본 광경은 율이 꿈에서 본 천국의 광경과는 좀 달랐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고, 하늘에 가끔씩 지나가는 구름들이 그 넓음을 더 잘 표현해주었다. 넓은 들판에 있는 몇 개의 나무들에는 새들이 짝지어 지저귀고 있었고, 들판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냇물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어울렸다. 아름다웠다. 문득 하린의 생각이 났다. 이 광경을 함께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율은 죽었고, 하린은 산사람이었다. 이제 자신의 기도대로 하린이 더욱 행복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따라와”

더그는 율에게 따라오라 말하며 들판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더그와 나란히 걸어가며 율은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처음 보았던 들판과 나무, 새들, 냇물 말고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평화로웠지만 천사나 사람들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하며 계속 걸어가던 율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더그였다. 더그는 들판 한가운데에 멈춰 서더니 허공에 손을 올렸다. 곧 웅장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 커다란 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은 얼마나 큰지 하늘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위로 높게 뻗어있었다. 문의 기둥은 빛으로 되어있었고, 문은 천년도 더 된 나무로 만든 듯했다. 어떤 공격이 와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두껍고 강해 보였다.

“들어가자고”

더그가 말을 마치고 닫힌 문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율이 더그 뒤에 바짝 붙어 따라 들어갔다. 문안의 풍경은 바깥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나무로 지어진 집들이 들판과 함께 펼쳐져 있었고, 마을 사이에는 여전히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냇가에는 아까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는데, 발목까지 오는 냇가에 발을 담그고 장난치는 아이들의 미소에서 이곳이 천국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그늘에 사람들이 앉아 이야기를 하고, 특이하게 생긴 도구로 노래를 부르며 웃고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하나같이 나무로 지어져 들판과 잘 어울렸으며, 지붕이 없는 집들 사이로 새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모두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였고, 누가 천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더그를 따라 문 안쪽으로 걸어가는 율에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입니다. 더그!”

목소리는 문 양옆에서 났다. 더그와 같은 빛이 창으로 변하여 그들 손에 있었기에 이들이 천사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천국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목소리에는 더그에 대한 반가움이 섞여있었다. 더그가 천사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행동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망자를 인도하러 왔네.”

“직접요?”

말을 마친 천사들이 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어째서 더그가 직접 율을 천국으로 인도했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율 본인도 알지 못했다. 더그가 얼른 화제를 바꾸려는 듯 율에게 천사들을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경비 천사 숀과 이안, 소속은 천군.”

율이 숀과 이안을 향해 조금은 뻘쭘한 듯 꾸벅 인사를 했다. 숀과 이안도 웃으며 율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아한 표정 숨기지 못다. 숀과 이안을 지나처 걷던 중 더그가 멈춰 서며 율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급한 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네가 혼자 해야 할 일이 있어.”

이제 막 천국에 온 율의 눈이 커졌다.

“천천히 구경하다가 다 지워져 가는 간판과 허름한 집을 찾아 그곳에 들어가. 그 이후엔 안에 있는 사람이 다 알아서 해줄 거야.”

무엇을, 어떻게,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는 율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말을 마친 더그의 등에서 이내 커다란 날개가 나타났다. 날개는 2m 훌쩍 넘을 정도로 거대했다. 곧 더그의 날개로 인해 빛으로 가득하던 공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천국은 조금 구식이라서”

더그는 율에게 윙크를 한 후,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모르긴 몰라도 율이 타고 기절한 엘리베이터보다 배는 빠른 것 같았다. 잠시 자리에 멍하니 있던 율이 천천히 마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을 안쪽의 풍경은 조금 전 율이 보고 느꼈던 것 그대로였다. 평화로웠고, 아름다웠다. 계속해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저 말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마을은 너무 넓어 다 돌아다닐 수 없었기에, 냇가를 중심으로 한 가게들을 집중해서 찾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간판이 흐릿하거나 허름한 집은 없었다. 아니 간판 있는 가게 하나조차 없었다. 잠시 냇가에라도 앉아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율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티 없이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뛰노는 아이들의 미소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 근심, 걱정 없는 평화 그 자체의 존재들이었다. 잠시 아이들을 보다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본 율의 눈에 띈 것은 아까 지나온 큰길 사이 골목에 있는 가게였다. 더그가 말한 간판이 흐릿하고, 허름한 가게였다.  

'끼익'

문은 꽤 오래된 문인지 나무 특유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하지만 문의 요란한 소리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율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책장 가득한 책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다들 오래된 책 같아 보였지만 먼지 하나 없는 것을 보니 가게 주인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다른 진열장 한쪽에서는 다 꺼져가는 빛과 어둠이 있었다. 서로 일정 공간을 두고 공중에 떠있었다. 신기한 듯 만지려고 할 때 낯선 목소리가 율의 귀에 박혔다.

“가치가 사라져서 그런 거라네.”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음성에 율은 고개를 휙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소리가 난 곳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명이 서있었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이 꽤나 친숙했다. 율의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 더욱 그랬다. 그 남자는 율이 왜 이곳에 온 건지 알고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로 와서 앉지.”

말을 마치고 남자는 조용히 율의 맞은편에 앉았다.

“가게에 누가 오는 것은 꽤 오랜만이라서 말이야.”

남자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사실 천국에 오기 전 마주쳤던 빌 비슷하지만 다른 말을 했었다. 요즘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신을 믿지 않고, 범죄가 늘어가는 세상의 이야기가 곧 천국과 지옥으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무서웠다.

“일단 손 좀 볼까?”

“손이요?”

“자네 담당 천사가 아무 이야기도 안 해주던가?”

“네”

“자네 담당 천사가 누구지?”

“더그입니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안경을 벗더니 이리저리 율을 쳐다보다가 손을 낚아채듯 채가며 율의 양 손바닥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놀란 표정과 함께 이내 껄껄 웃었다.

“자네였구먼. 자네가 ‘M’이었어!”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고, 흥분이 섞여 있었다. 율이 채 뭔가를 물을 시간도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스콥’일세. 조각가지”

말을 마친 스콥은 여전히 껄껄대며 웃고 있었다.

“자네가 저 가게 문을 언제 열고 들어올지, 아니 과연 이곳에 올 수 있을지, 어떤 얼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네. 가게 문만 열고 들어오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모두 착각이었군그래!”

호탕하게 웃는 스콥의 모습에서 그의 나이대가 아닌 젊은 청년과 같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스콥이 천국에서 늙은 모습으로 있는 것도 궁금했지만 더 궁금한 건 사람들이 그토록 말하는 ‘M’이었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율을 보는 사람들마다 율에게 ‘M’이라고 하는지 알고 싶었다.

“‘M’이 도대체 뭐죠? 아까 밑에서 만난 빌도 그렇고 저를 보고 계속 ‘M'이라고 부르더군요.”

잠시 생각에 빠진듯한 스콥이 이내 율에게 말했다.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모습이었다.

“더그가 아직 말하지 않았으면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게야. 하지만 곧 말해줄 것 같군. 숨겨질 일도, 숨겨서도 안 되는 일이니까. 조급해하지 말라고.”

율이 다른 말을 할 겨를조차 주지 않고 스콥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럴 게 아니지. 잠깐만 있어보라고.”

스콥은 곧 율이 가게에서 본 책장으로 뛰어갔다. 여기저기 책장을 뒤지기를 한참, 찾았다는 말과 함께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책을 율의 앞으로 가져왔다. 그 책은 다른 책들과 다르게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스콥이 책의 겉표지에 입김을 불자 쌓여있던 먼지들이 공중에 흩뿌려졌다. 표지를 넘기는 것조차 힘겨워 보일 정도로 무거운 책을 한 장씩 넘기며 스콥은 책에 집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의 정적 후에 스콥이 책을 테이블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손바닥을 마주 보게 하고 손을 붙여보게.”

갑자기 이런 것을 시키는 것이 의아했지만 지금까지 의문 없는 일은 없었다. 매 순간이 의문이었다. 율이 시키는 대로 손을 붙였고, 곧 스콥의 손에서 더그에게서 봤던 익숙한 빛이 나왔다. 빛은 이내 동그란 원 형태로 바뀌더니 율의 손을 감쌌다.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잠시 율의 양손에서 서로 밀쳐 내려하는 힘이 느껴지더니 이내 율의 몸 주변으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파장이 생겼다. 파장은 얼마나 강력한지 가게 안에 있는 유리를 깨는 것은 물론, 맞은편에 있던 스콥을 순식까지 문 앞까지 날려버렸다. 놀란 율이 문 쪽으로 몸을 틀었을 때 더그가 한 손으로 날아가던 스콥의 등을 받치고 있었다.

“거 노인네, 조심 좀 하라니까.”      

더그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스콥은 자신을 날려버린 율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원망이나 두려운 눈빛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점점 율에게 흥미가 생긴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런 거군. 그 힘은”

여전히 율에게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분명해진 것은 자신은 ‘M’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남들과는 다른 존재임과 동시에 자신이 가진 힘이 조금은 특별하다는 것이었다.

“이제 가지.”

“오랜만에 왔는데 벌써 가는 건가?”

“알잖아요. 바쁜 거.”

스콥이 빨리 자리에서 뜨려는 더그에게 대놓고 섭섭한 티를 냈다. 하지만 이내 이해한다는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가던 중 고개를 돌려 율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가웠네. 율”

천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들어본 것이 처음이었다. 율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는, 죽었지만 그래도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더그가 눈치라도 챌까 재빨리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모르는 건지 더그는 가게 밖으로 향했다. 익숙한 마을을 지나면서 더그는 한 가게로 율을 데리고 들어갔다. 사람이 많은 거리에 있어 사람이 많을 법도 한데 테이블은 모두 비어 있었다. 한 여자만이 더그를 반겨줄 뿐이었다.

“오랜만이네 더그?”

“오늘 하루에만 그 말 얼마나 들었는지 몰라.”

“그러니까 자주 좀 올라오고 그래.”

“위에 있는 양반이 잔소리를 하도 많이 해야지.”

율이 본 것 중 더그가 가장 많이 그리고 편하게 말했다. 더그의 미소도 볼 수 있었다.

“이쪽은 누구?”

“자기가 ‘M’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이제 조금은 불만과 궁금증이 생겨가는 남자.”

역시 더그는 다 알고 있었다. 율은 처음부터 자신의 마음을 읽었던 더그를 상기했다.

“이야기하기 딱 좋은 곳이네. 그럼 가게 좀 봐줘. 잠깐 나갔다 올게.”

“손님 온 적은 있고?”

더그의 말에 미소로 화답한 여자는 그렇게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더그와 율을 배려해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테이블에는 그녀가 나가기 전 마련해준 잔에 담긴 포도주와 작고 동그란 열매들이 있었는데, 생긴 것은 꼭 금감처럼 생겨 색은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율은 궁금한 점이 많아 오히려 쉬운 질문부터 시작했다.

“이건 포도주 같은데, 천국에서도 술을 마시나요?”

그런 율의 질문이 우습다는 듯 더그가 대답했다.

“저 위의 양반도 술을 마셔. 인간들은 신을 믿으면 술을 마셔도 되니, 안되니 하고 툭하면 다투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본질은 술을 마신 후에도 그 사람이 신을 믿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느냐지.”

율은 그 말을 이해하면서도 조금 웃겼다.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는 그 문제로 아직까지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렇게 간단한 답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었다.

“그럼 이 열매는 뭐죠?”

“만나”

들어본 적 있었다. 인간들이 광야에 있을 때 신이 내려준 음식. 꿀 섞은 과자처럼 맛있다고 표현한 것을 성경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율은 성경책에서나 보던 만나를 실제로 보고 있자니 퍽 신기했다. 당장 입에 가져다 넣은 만나는 실제로 달았다. 열매가 익어가는 나무에 끝까지 매달려있어 그 달콤함이 축적되고 축적되어 달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맛이었다.

“여기선 만나만 먹나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율에게 더그가 말을 이어갔다.

“만나만 먹긴 하지만 먹는 방법이 잘못됐다고 해야겠지. 만나를 입에 넣고 네가 먹고 싶은 음식을 상상하면 그 맛이 나게 돼있어. 물론 그러지 않으면 지금처럼 만나 본연의 맛이 나고. 더그의 말을 듣고 만나를 입에 넣어 스테이크를 상상한 율은 실제로 스테이크 맛이 난다며 신기해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섭게 조용했던 침묵을 깬 것은 율이었다.

“이야기해주세요. ‘M’부터, 이 알 수 없는 힘까지.”

줄곧 율의 손에서 빛나던 어둠과 빛이 강렬해졌다. “

더그는 앞에 놓인, 꽤 많이 담겨있던 포도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과거에 너와 같은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지. 결과만 조금 달랐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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