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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22. 2022

[M :신과 악마의 내기] #7. 망자 그리고 재회

하린을 침대에 조심히 눕히고 한참을 쳐다봤다. 그토록 그리던 여인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율의 손이 하린의 얼굴로 다가가다 이내 멈칫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하린을 영영 잃는 것은 아닐까. 불현듯 떠오르는 좋지 않은 생각이 율의 행동을 가까스로 멈춰 세웠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이승의 시간으로 2년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옆집의 시끄러운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왔다. 거실벽 가운데에 있는 가족사진과 한쪽에 자리 잡은 액자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으며, 율이 베란다 밖 멋지게 펼쳐진 산을 보며 글을 쓰던 책상마저 그대로 있었다. 2년간의 시간 동안 하린은 율의 물건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간직해주었다. 집을 천천히 둘러보다 이내 거실 소파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그래. 이만하면 되었다.”

율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린도 무사했고, 지금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있으니 이 정도면 되었다며 스스로의 욕심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랜만의 상쾌한 아침이었다. 매일이 피곤했던 다른 날의 아침과는 달리 하린은 제법 개운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출근 준비를 하던 하린이 문득 지난밤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카페 문을 나선 후부터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요즘 몸이 좋지 않긴 했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다른 날에 비해 몸상태가 좋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면 될 일이었다.

“좋은 아침!”

하린의 밝은 인사로 카페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하린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제야 직원들이 하린을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왜 무슨 일이야?”

“부점장님, 사실 점장님이 오늘부터 안 나오신대요.”

“왜?”

어제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하린에게는 꽤나 놀라운 소식이었다. 치근덕대던 점장이 안 나와서 좋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유가 먼저였다.

“모르겠어요. 수술을 한 것 같기도 하던데.”

“수술?”

“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나긴 한 것 같더라고요.”

이상했다. 아무리 지역구 의원의 아들이지만 그렇게 갑자기 그만둘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쩍 하린에게 치근덕대고 있는 참이었다.

“에이 뭐 잘됐죠. 부점장님한테도 얼마나 껄떡대던지. 그런 인간 차라리 없는 게 나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급여, 복지. 모든 것이 좋았지만, 점장 하나로 인해 힘든 생활이었다. 그런 점장을 앞으로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하린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인지 오늘은 아침부터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율은 하린의 그런 모습을 거리의 맞은편에서 지켜보더니, 이내 카페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격하게 반기는 범 때문에 가라앉아있던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습관처럼 팩스기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런 종이도 없었다. 오늘은 카페에 방문할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간만의 휴식이었다. 최근 들어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아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위에서 그걸 아는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머신 앞으로 걸어갔다. 머신을 예열시키는 동안 원두가 들어있는 봉투를 열었다. 원두의 고소한 향기가 1층에 짙게 퍼졌다. 천천히 원두를 갈아 적당한 힘으로 템핑 한 후 예열된 머신에 넣었다. 27초. 율이 제일 좋아하는 추출 시간이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2층 테라스로 올라갔다. 자그마한 평상 위에 자리 잡고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어 내려갔다. 오랜만의 여유였다. 범도 그런 상황이 좋은지, 율의 옆에 바싹 자리 잡고 눈을 감았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율의 얼굴을 스쳤다.          

저녁이 되어 용주가 찾아왔다. 율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전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도 했다. 오늘은 예전처럼 같이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기로 했다. 언제 봐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다만 범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첫 만남부터 용주를 보고 경계하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괜찮아. 나쁜 사람 아니야.”

율의 말에도 범은 쉽사리 경계를 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범을 1층에 놔둔 후 용주와 함께 2층으로 올라왔다.

“낯선 사람이라 경계하나 봐.”

“그러게. 강아지가 좀 무섭더라.”

범을 강아지라고 부르는 용주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물론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율의 눈에는 아무리 작아도 범은 그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 용주가 범의 본모습을 안다면 놀라 자지러질 것이 분명했다.           

둘은 식사와 함께 그간 나누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용주도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죽은 사람이 멀쩡히 살아 돌아와 이상한 능력을 써가며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은 곧 율이 보통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사실이었으니까. 용주는 곤란해하는 율에게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하린이는 만났어?”

“아니.”

의외의 대답에 놀랐다는 듯 용주의 눈이 커졌다.

“왜?”

율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곧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날 노리는 놈이 하나 있어. 지옥의 수장이자 대악마. 나를 자신의 필요로 이용하기 위해서 내 약점을 건드릴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하린이를 말이지.”

“그럼 하린이를 안 보겠다고?”

“응. 되도록. 그게 하린이에게 좋은 일일 테니까.”

“무어가 하린이를 데려가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 어쩌면 네가 다시 이곳에 온 것도 신의 계획이 아닐까?”

“신의 계획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전혀 아닐 때도 있더라.”

율이 나지막이 내뱉은 말에 용주는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둑한 거리를 점차 밝히는 일출을 멍하니 쳐다보다 곧 커피를 내렸다. 커피의 씁쓸하고도 진한 맛은 하루를 시작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것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익숙한 듯 팩스기 앞으로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구식 팩스기가 또다시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종이 한 장을 뱉어내었다. 이름과 내용이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다른 날과 다른 점이라면 오늘은 출장이었다. 율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입고 있는 옷을 바꿨다.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과 넥타이가 카페의 분위기마저 바꿔놓은 듯했다. 오늘은 망자를 인도하는 날이었다.          

보통의 경우 일반 천사가 망자를 인도했다. 하지만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경우 대천사가 직접 망자를 인도하는 것이 하늘의 법이었다. 보통의 경우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민족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그러했고, 남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한 수녀가 그러했다. 단순히 대의를 위해 삶을 산 사람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넉넉하지 못한 삶에 남을 위해 봉사하고 기부한 사람 역시 대천사가 직접 찾아가 망자를 인도했다. 하늘에서는 100억을 기부한 대기업 회장보다, 이런 망자들이 더욱 큰 사람들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대천사들 역시 이런 망자들을 최고의 예우로 모셨다. 망자는 율이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문 앞에 범이 앉아있었다. 자신도 데려가 달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 범을 데리고 율이 카페 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며 곧 둘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백발의 머리를 하고 안경을 낀 사람이 무언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비통함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누군가를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침대의 남자는 자신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참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었으며, 의사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곧 정장을 입은 사내 몇이 들어오더니 의사에게 무언가를 따져댔고, 몇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위해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말소리가 난 곳으로 몸을 틀었다. 그곳에는 율이 깔끔한 정장 차림과 함께 공손한 자세로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악수를 건넸다. 하지만 아차 싶은 듯 손을 거두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워낙 버릇이 되어서요.”

“괜찮습니다.”

율은 괜찮다는 말과 함께 남자에게 악수를 건넸다. 두 남자의 손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남자는 다시 누워있는 자신을 쳐다보았다.

“미련이 남으십니까.”

“예. 아무래도 미련이 남습니다.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이 많아서요..”

“충분히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한동안의 적막이 흘렀다. 남자는 이제 갈 때가 된 것을 알았는지 누워있는 자신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채 율을 바라봤다. 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죽음은 대천사가 된 율에게도 마주하기 힘든 것이었다. 특히나 악인이 아닌 선인의 죽음은 더더욱.

“조금 더 시간을 보내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충분합니다. 더 이상 보면 미련이 남을 것 같네요. 허허”

남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범을 쓰다듬었다. 범의 본모습이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범도 싫지 않았는지 기분 좋은 소리를 내었다. 그런 모습이 율의 마음을 더욱 쓰리게 했다.

“잠시 걸으시겠습니까. 다행히 천국은 여기서 좀 가까운 곳에 있어서요.”          

율은 남자와 함께 거리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경호원이 지키는 넓은 문을 지나며 남자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남은 후회를 털어내는 과정일 것이다. 이내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문을 나선 지 얼마 안 되어 경복궁 돌담길이 이어졌다. 그 뒤로 청와대가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

“사실 저는 선생님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아니 지지자라고 해야 맞을까요.”

율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먼저 말을 건넸다. 남자는 놀랐다는 듯 대답했다.

“저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셨습니까?”

단순히 천사일 줄로만 알았던 율이 남자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것을 들으니 꽤나 이상했다.

“제가 투표소에서 선생님을 찍기도 했는걸요.”

율이 웃어 보였다. 물론 율에게는 백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승의 시간으로 고작 삼 년이었다. 대통령의 임기가 채 끝나지도 않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이거 영광입니다.”

“제가 더 영광입니다. 이리 큰 분을 모실 수 있어서.”

“아닙니다. 국민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제가 더 좋은 대통령이 아니어서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럼요. 제가 좋은 대통령이었다면 우리나라가 조금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을 텐데요.”

“저기만 봐도 좋은 나라라는 걸 알겠네요.”

율은 잠시 미소 짓더니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율이 가리킨 곳은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시위 중인 시위대였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연일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중이었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제가 조금 더 잘했더라면, 저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

“신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모든 것이 있었지만, 결국 선악과를 먹은 것처럼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단순히 자유롭게 시위하는 저 사람들이 아닙니다.”

율은 다시 한번 시위대 쪽을 가리켰다. 시위대 옆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연신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다정한 연인은 경복궁 돌담길을 걸으며 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외국인들은 경복궁의 야경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시위대가 시위하고 있는 저 장소는 곧 선생님의 국민장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시위를 하고 있는 저 사람들마저 선생님의 국민장에 참여해 같이 눈물을 흘릴 것이고요.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사신 거 아닐까요.”

남자는 대답 없이 미소를 짓더니 율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곧 익숙한 곳이 나왔다. 율이 죽어서도 온 곳이었다. 허름한 건물.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율은 이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는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이곳에서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지만, 위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분이 계셔서요.”

“기다리는 사람이요?”

“가보면 아실 겁니다.”

율은 미소 지어 보였다. 곧 엘리베이의 도착 소리가 낡은 건물 전체에 울렸다. 그리고는 남자가 환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마지막 말과 함께 율이 버튼에서 손을 뗐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닫히며 곧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자의 마지막 표정은 처음과 달리 평온해 보였다.           

고된 하루였다. 몸이 고되기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날이었다. 죽음은 살아있을 때도, 죽었을 때도 익숙해지기 힘든 놈이었다. 주방 구석에서 포도주 한 병을 꺼내 들어 망설이지 않고 입에 가져갔다. 막혀있던 무언가가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천국의 포도주 맛은 언제나 최고였다. 힘든 하루여서일까. 한 모금에 취기가 올라왔다. 나쁘지 않은 취기였다. 그때 카페의 문이 열렸다. 의자에 눕다시피 기대앉은 채로 팩스기를 쳐다봤다. 아무 종이도 없었다.

“왔어?”

용주가 왔으리라 생각한 율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건넸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기대와는 다른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영업하나요?”

목소리는 기대와 염려가 함께 담긴 듯 살짝 떨렸다. 이곳에 이승의 사람이 들어온 사실보다 율을 놀라게 한 것은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린 사람의 목소리를 쉽게 잊을 수는 없었다. 율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하린이었다. 자신의 눈앞에 그토록 그리던 하린이 있었다. 놀란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인연이 눈앞에 있었다. 꿈일까. 하지만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한 이 현실에 둘은 그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적막 속에 팩스기의 요란한 소리만이 울렸다. 곧 팩스기가 종이 한 장을 뱉어냈다. 율이 서둘러 팩스기 앞으로 달려가 종이를 확인했다.          

ㅇ이름 : 이 하 린

ㅇ나이 : 31

ㅇ내용 :

ㅇ비고 :           

내용도, 비고도 없는 종이였다. 한 번도 없던 경우다. 더그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받을 때 들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아주 드물게 인적사항 외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가 내려올 수도 있어.”

“그건 무슨 뜻이죠?”

“알아서 처리하라는 거야. 위에서 관여하지 않을 테니 대천사의 재량으로 알아서 처리할 것.”

“그랬던 적이 있나요?”

“한 번도 없었어. 태초부터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동안 없던 일이 율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 종이가 눈앞에 있었고, 하린 또한 율의 눈앞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신의 선물인가. 아니면 신의 시험인가. 율이 대천사가 될 때까지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신이었다. 그런 신이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율의 머릿속 회로를 정지시킨 것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이었다. 율의 시체까지 본 하린에게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까. 긴 고민 끝에 먼저 적막을 깬 것은 율이었다.

“안녕?”

자기가 말하고도 바보 같다 생각해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둔탁한 것이 율의 몸을 거세게 때리고 있었다. 놀라 바라본 곳에는 하린이 자신이 메고 온 가방으로 율을 내리치고 있었다.

“안녕? 안녕? 안녕이라는 말이 나와 지금? 어떻게 된 거야 대체!"

하린은 닥치는 대로 말하며 연신 율을 내리치고 있었다.

“아. 아파! 보러 갔었어. 보러 갔었다고!”

“그럼 왜 그냥 갔어 나쁜 놈아!”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음 율이 하린을 덥석 끌어안았다. 계속해서 발버둥 치던 하린이 이내 포기한 듯 율의 품에서 눈물을 쏟았다. 율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끊어졌던 인연의 고리가 다시 연결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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