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

중년의 옷맵시

by seungmom

살이 많이 빠졌다.

이건 정말 자랑질을 대놓고 해도 될 만큼 큰 성과로 나도 신기하다.


5년 전에 도저히 입을 수 없어 포기하면서 버릴까 하다가

8년 전에 같은 것을 두벌 사서 거의 매일 입었던 정에 끌려

두벌 중에 그래도 조금은 멀쩡한 한벌을 그냥 넣어 두었었다.

언젠가는 다시 입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는 허황된 기대보다는

이런 날씬한 것도 입었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추억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다시 입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이젠 이런 것들도 괜한 짐이 된다고 버리자며 꺼내어 놓고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입어 봤더니 그 바지에 내 다리가 쑥 들어가

뭔가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부터 하면서 엄청 웃었다.

허벅지가 끼어서 들어가지도 않았던 바지통이 맞춤옷 같았는데

허리까지는 무리였는지 숨을 안 쉬면 어찌어찌 잠겨질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날씬해지게 되었는지...


한 번에 많이 먹지는 않지만 자주 입에 뭔가를 넣고 씹었고

운동은 땀을 비 오듯이 하지는 않지만 사부작 거리면서 꾸준히 했는데

살은 도리어 더 찌고 있는 듯해서 생각해 낸 것이 두 끼의 식사였다.

배 고픔의 크기로 식사 양을 조절하면서 밥과 빵을 극도로 줄이고

걷는 양을 조금 더 늘리면서 수시로 스트레칭을 했었다.

그랬더니 더 찌지는 않았는데 그러면서 살이 탄탄해졌는지...


조금 몸매라는 것이 보이니 얄팍한 나의 본심이 부채질하는데

전혀 기대 없이 편한 것이 최고였던 옷맵시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하면서 이것저것을 입어 보니 아직도 넘치는 뱃살이...

이것만 없으면 완벽한데 하면서 원망이 되었다.


앉아서 배에 힘을 주고 앞으로 숙이니 쑥 굽혀지는 허리는 유연한데

유연한 것과는 상관없이 붙어 있던 뱃살은 겹쳐져 삐져나온다.

등과 허리는 빠졌는데 이 뱃살만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인가 하면서

불쑥! 이건 죽어야 빠지는 건가 하는 말이 튀어나왔고

그리고 그 말에 내가 놀래 행동을 멈췄다.

정말 내가 죽어야 하는 일인가 해서...


뱃살이 나에게 인생의 끝을 보게 만들었다.

그냥 인정하고 잘 몸에 붙여 다니며 살면 되는 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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