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예찬

중년의 모습

by seungmom

난 한 번도 염색을 해 본 적이 없다.


난 그저 게으르고 관심이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되어 가는 그대로 살아간다.


미국에 가 처음 일 년 만에

안 되는 영어로 아이들과 살아 내면서 힘들었는지 원형탈모가 세 군데나 생겼다.

빠진 자리가 너무 밋밋해서 머리카락이 날 것 같지 않았지만 걱정할 여유도 없었다.


아이들의 공부가 자리를 잡고 정신을 차려보니 앞 머리만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 흰머리는 몇 년이 지나 멋진 훈장처럼 나를 알려주는 상징이 되었고

별 특징이 없는 얼굴이 화사하게 보이게 하는 장식이 되었다.


염색은 일단 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야 한다.

그 비용을 계산해 본 적은 없지만 대단할 것 같은데

덕분에 적금을 여러 개 든 것과 같은 혜택을 누린다.


이제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면 얼른 앉는다.

흰머리가 모두에게 타당성을 보여 주니 앉아도 눈치가 안 보인다.


젊은 엄마들에게 당당하게 선배 대접을 받으며

엄마들의 힘겨루기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예외가 되어졌다.


밤에 늦게 다녀도 걱정이 덜 해지고

괜한 오해를 살 일도 없어져 누구에게든 서슴없이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은 나를 거창하게 확고한 신념 있어 염색을 안 하는 것으로 생각해 줘

노력 없이 난 개념 있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다 흰머리 덕분이다.


친구들은 염색을 하면 몇 년은 젊게 보일 거라고 한다.

난 구태어 젊어 보이고 싶지는 않다.

정말 젊어진다는 것이라면 몰라도 젊게 보이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난 내 모습이 내 나이에 걸맞은 것 같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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