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이유
나이가 들수록 현재의 기억이 또렷해진다. 현재의 기억 또한 과거가 되어 잊히겠지만 내가 지금 느끼고 변하려 발버둥 치는 많은 생각과 감정들, 즉 지금의 '나'를 글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든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미디어에서 흔히 말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다. 전세사기를 당했다. 나는 내가 피해자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됐는데 임대인은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더니 최근에서야 연락이 닿았고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지금은 돌려줄 수 없다, 기다려달라'는 말 뿐이었다.
임대인은 알고 보니 어마어마한 무자본 갭투기꾼이었다. 그녀가 가진 건물만 백 오십 채가 넘는다. 내가 1억 1천만 원에 이 작은 6평짜리 원룸을 계약했으니까, 임대인에게 당한 피해자와 피해액만 최소 수 백 명, 수 백억에 달한다는 말이다. 이미 피해자 오픈채팅방에는 100명 조금 넘는 세입자들이 들어와 있다. 임대인 정보를 파헤칠수록 추악 그 자체다. 과연 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상황은 계속해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그냥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가'란 결론으로 좁혀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한강이 보이는 고급 오피스텔에 살고 싶어서 욕심부린 게 아닌데 말이다. 나는 그저 매 달 나가는 월세를 조금이나마 아껴보고자 했다. 그런데 그 행동이 이 세상 태어난 지 30년 만에 나를 가장 큰 시련으로 몰고 갈지 몰랐다. '몰랐기 때문에 너가 당한 거야'라며 어떤 날은 나를 탓하기도 한다. 그 당시 선순위 보증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확인하고 근저당 금액을 더했을 때, 이 건물의 시세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알았더라면 그때와 같은 선택을 했을까?
무튼, 전셋집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고. 내가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정확히 말하면 '기록'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 이 시련을 반드시 극복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먼 훗날, '한때 이런 시련을 겪어봤고 이렇게 극복해 나갔어'라고 보여주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모든 글들이 전세사기 관련 글만 올라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법 앞에서 하염없이 무력해지는 내 모습과 돈 앞에서 초라해지는 이 상황이 자꾸만 날 많은 생각 속에 가둔다. 그냥 요즘 생각하는 것들을 일기장처럼 기록해야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극복해 내야지.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