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8 (일)
찬이 나지막이 말했다.
"일어나시죠 형님"
거의 한 숨도 못 자고 뒤척거리던 나는 곧바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건넌방의 여자아이들도 채비를 하는 기척이 들린다. 그런데 찬이 여자애들 방 문 앞에 가서 '똑똑' 하더니, 예상치 않았던 말을 한다.
"율 일어났어? 형은 내가 깨웠어. 난 포기할게. 조심해서 다녀와"
그러더니 도로 방으로 들어와 침낭 속을 파고든다. 고산 증세가 심해져서 도저히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다.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참 이 녀석 답게, 일말의 미련도 느껴지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한다. 역시 사람 성격은 극한 상황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찬보다는 혜정이가 더 걱정이었다. 전날 밤에 방으로 들여보내면서도, 아침에 힘들면 무리해서 일어나지 말고 그냥 쉬라고 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내가 채비를 마치고 방문을 나서자, 채비를 마친 여자애들 둘이 같이 복도에 서 있는 것이다. 몸이 좀 괜찮아졌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그런데 정말 할 수 있겠냐고 물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다고 한다. 아 진짜 이 친구 이걸 어째야 하나, 난감하기 그지없다. 고산증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올해로 스물네 살 청춘인 이 친구의 마음은 그걸 용납할 수가 없나 보다. 어제 베이스캠프도 포기하고 쉬면서 오늘의 일출을 기다렸으니 그 심정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딱한 마음보다도 걱정이 앞선다. 어쨌거나 다들 채비를 마치고 숙소 앞으로 나왔다. 두꺼운 옷을 입고 배낭에는 물과 약간의 행동식만 넣고 머리엔 헤드랜턴을 켠 채로.
찬을 숙소에 둔 채 나, 율, 혜정, 그리고 시리 이렇게 넷이 칼라파타르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칼라파타르를 향하고 있었다. 해발 오천 미터의 새벽은 조금 추웠다. 한국에서 가져온 850 필 패딩 점퍼를 처음으로 개시한 덕에 몸은 전혀 춥지 않았는데 손발이 조금 시렸다. 이십 분 남짓 걸어가니 칼라파타르 초입이 나온다. 아찔한 비탈길의 시작이다.
칼라파타르 정상은 에베레스트 일출을 감상하기에 좋은 명소다. 일출이 잘 보인다는 뜻은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다는 뜻이며, 다시 말해 주변 지대 중에서 독보적으로 높다는 얘기다. 정상은 해발 5,550 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출발한 고락셉은 해발 5,170 미터. 대략 두 시간 사이에 사백 미터 가까이 고도를 올려야 한다. 간단히 말해, 이날 새벽에 걸은 길은 이번 여정을 통틀어 가장 힘든 길이었다.
상태가 안 좋은 혜정이를 맨 앞에 세우고 그 뒤에 율, 그 뒤에 내가 서려고 했는데, 혜정이가 민폐를 끼치기 싫다며 우리더러 먼저 가라고 한다. 그 성격을 잘 알기에 더 권하지 않고, 시리에게 혜정이를 부탁한 채 앞서 걸어 나갔다. 율도 뭐 딱히 좋은 상태는 아니다. 사실 그 길을 오르는 사람들 중 상태가 좋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거의 7~80도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 돌산인데 산소량은 지상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탓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남녀노소 피부색 가릴 거 없이 몇 걸음씩 오르다 주저앉아 쉬고, 다시 걷다가도 얼마 가지 못해 퍼지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잠시 율과 함께 숨을 돌리면서 혜정이 얘기를 했다.
"괜찮을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본인이 한다고 하니까 일단 말리지는 못했는데... 근데 오빠 혜정이 어디 있는지 보여?"
"저기 아래 보이네... 비틀비틀 갈지자로 흔들리는 헤드랜턴... 저거 보여?"
혜정이의 헤드랜턴 불빛은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정상까지 가는 건 무리였다. 무리하다간 정말 큰일 나는 수가 있다. 혜정이가 올라오길 기다렸다 차분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아직 반의 반도 안 올라왔는데 정말 할 수 있겠냐고. 그리고 올라간다고 끝이 아니라, 우린 오늘 구백 미터 밑의 페리체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나흘 동안 하산을 해야 된다고. 정말 괜찮겠냐고. 이건 정신력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혜정이는 바로 수긍하지는 않았다. 아마 생각할 기력도 없었겠지 싶다.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안될 것 같으면 바로 포기할게요'라고 하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내버려 두고 나도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한 오십 미터쯤이나 걸었을까, 시리가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따라잡는다. 혜정이는 어디 있냐고 물으니 포기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단다. 혜정이의 상태가 걱정된 우리는 시리더러 우린 알아서 할테니 혜정이를 숙소에 데려다주라고 했다. 율과 함께 둘이서 다시 칼라파타르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율은 등산 스틱을 한쪽만 짚고 올라서 더 힘들어 보였다. 며칠 전에 한쪽이 망가진 뒤로 계속 한쪽 짜리 스틱을 사용해 왔다. 힘들어 보일 때마다 내 거랑 바꿔줄까 물어봐도 항상 괜찮다고 했다. 원래 독립심 강하고 의존적인걸 싫어하는 친구라, 나도 '뭐 그런가 보다 알아서 하겠지' 하고 말았다. 두 번 권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내 스틱 쓸래?'하고 물으니 '응 그래,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지' 하며 덥석 받아 들고 좋아라 한다. 난 원래 스틱 없이도 산을 많이 다닌 터라 그럭저럭 걸을만했다.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두 시간쯤 걸었을까, 어느덧 설산 위로 햇볕이 들고 있다. 이미 사방은 환해져 있었다.
칼라파타르 정상에 도착한 것은 6시 45분쯤. 타이밍이 절묘했다. 몇 사람 앉으면 발붙일 자리도 없는 꼭대기 고지로 기어올라가니 옆에 한국 남성이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앉아 계셨냐고 물어보니 한 시간을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십분 쯤 지났을까, 일곱 시가 조금 되지 않아 에베레스트 뒤로 이글거리는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차가운 그늘이 드리웠던 설산 능선 위로 순식간에 이글거리는 햇살이 터질 듯 차오른다. 얼른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사람 무리가 여러 나라 말로 탄성을 질러댔다.
아쉬운 일이 하나 있었다. 간밤에 카메라 충전을 해놓는 걸 깜빡했다. 안 해놔도 일출 구경 나가는 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칼라파타르 정상 바로 밑에서 배터리가 방전되고 말았다.일생에 한 번뿐일지 모르는 에베레스트 일출을 사진에 담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는 막히면 다 방법이 있는 법이다. 우린 값져 보이는 DSLR을 들고 셔터를 누르는데 열중인 한국인 신사분을 발견했다. 다가가 사진을 부탁드려도 되겠냐고 정중하게 청했고, 그분은 흔쾌히 승낙하셨다. 마침 그분은 우리와 같은 롯지에 묵고 계셨다. 하산 후 롯지 식당에서 그 신사분께 다가가 공손하게 전화번호를 청했고, 한국에 들어와 연락을 드려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아래의 사진이다.
칼라파타르 정상은 일출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통에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한 이십 분 정도 있었을까, 곧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은 금방이었다. 거의 두 시간 반을 힘겹게 오른 길이었지만 내려올 때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락셉의 롯지에 도착한 건 여덟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롯지 앞에 시리와 포터들이 나와 있었다. 좋았냐고 묻는 말에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짐을 풀고 바로 식당으로 가 점심을 주문했다.
찬과 혜정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마 밥은 거의 나 혼자 먹었던 것 같다. 일행들은 나더러 어떻게 그렇게 식욕이 계속 좋을 수 있냐며 신기한 동물 보듯 바라봤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극한 상황이 되니 생존 본능이 강해져 평소보다 더 열심히 먹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제 클라이맥스는 다 끝나고 하산을 할 차례다. 결코 만만하지 않다. 루클라까지 무려 나흘 동안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아홉 시 사십 분쯤 숙소를 나와 전날 왔던 길을 반대로 걸어 로부체를 향했다. 역시 내리막이 한결 수월했다. 일행들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지만, 전날 올 때 두 시간 반 걸렸던 길을 두 시간이 채 안 되어 도착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깔끔한 롯지에 들어가 마살라 티를 미디움 팟으로 주문해 마셨다. 일행들 모두 충분히 쉬고 화장실도 다녀온 뒤, 12시 30분쯤 다시 출발했다. 올라올 때 아찔한 경사로 일행들의 체력을 탈탈 털어버렸던 투클라 패스를 지나, 오후 1시 50분쯤 투클라에 도착했다. 올라갈 때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내려가는 길에도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아무도 주문을 하지 않길래 내가 피자 한 판을 주문했다. 일행들은 한 조각씩만 먹고 나머지는 내가 다 먹었다. 메뉴판에 콜라가 보이길래 '피자엔 콜라지'라며 콜라도 주문했다. 포장지에 인도산이라고 적힌 500 ml 들이 플라스틱 병이 나왔다. 아마도 야크 등짐에 실려 올라왔을 터라 뚜껑을 따자마자 거품이 맹렬하게 치솟아 올랐다. 맛있다고 '캬'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일행들은 새삼 신기해했다. 사실 난 저들이 왜 밥맛이 없어하는지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투클라를 나서 조금 걸어 내려가니 곧 메모리얼 파크에 닿았다. 역시 내려가는 길이라 발걸음도 마음도 가볍다. 일행들의 말투에서도 점차 생기가 느껴진다. 원래 고산증이 올 경우 낮은 고도로 내려가면 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이 친구 하는 짓을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힘들다고 겔겔 대던 게 언제라고, 어느 순간 야크들 사이로 서서 잔망스러운 포즈를 잡고 카메라를 쳐다보질 않는가.
메모리얼 파크에서 좀 내려온 뒤엔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부턴 올라올 때와 다른 길로 간다. 이왕이면 올라올 때 한번 본 풍경 말고 다른 풍경을 감상하며 내려가는 게 더 좋지 않느냐는 판단이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페리체(4,270m). 무려 닷새 만에 샤워를 하고 술도 마실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메모리얼 파크를 지나 페리체로 내려가는 길은 계곡물이 흐르는 구릉지다. 머리 위로는 구름 떼가 히말라야 정상을 향해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가끔은 구름 사이로 설산이 얼굴을 내밀고는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한 시간 반쯤 걸어가니 페리체 마을 입구에 닿는다. 아랫동네로 오니 이젠 마을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해발 오천 미터 근처에서 묵었던 마을이 오로지 트레커의 편의를 위해 세워진 롯지촌이라면, 여기는 현지민의 일상이 느껴지는 산촌 마을이었다. 텃밭의 상추는 손님상에도 내고 그네들 밥상에도 오를 것이다.
이날 우리가 묵은 숙소는 에델바이스 페리체(The Edelweiss Periche). 이름 뒤에 '호텔'이라는 상호를 붙여주고 싶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묵직한 나무로 된 문을 열자 바로 깔끔한 세면대가 보이고, 그 옆으로 식당 문이 보인다. 세면대의 존재는 식당에 들어가기 전 먼지와 땀을 씻어내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식당으로 들어가니 사장이 정중한 목소리로 ‘식당 안에서는 등산 스틱을 찍고 다니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복도에는 카펫이 깔려있었다. 방은 넓고 침구는 깨끗했다. 그래 봐야 서울의 깔끔한 모텔 수준이지만 이 동네에서 이 수준이면 오성급 호텔이다. 핫 샤워를 하고 싶다고 하니 사장이 샤워실로 데려가 안내를 해주는데, 시설과 청결도가 유럽 배낭여행 때 묵던 도미토리의 샤워실 수준이다. 여기서 이 수준이면 서울의 오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다. 여자아이들은 모든 것에 격하게 감동했다. 지금 다시 사진을 보니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한 장면이 불쑥 눈 앞을 스친다. 영화 속 호텔처럼 많은 것을 갖추진 않았으나 충분한 격조가 있는 곳이다. 이 여행을 통틀어 호텔이라는 이름을 쓸 자격이 있는 유일한 숙소였다고 생각한다.
감동적인 핫 샤워를 마치고 식당에 나와 원카드를 하며 주문한 저녁을 기다렸다. 신기하게도 일행들은 이미 모두 기력을 회복했다. 고산증은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신기하리만치 증세가 싹 가신다.
저녁 메뉴로는 실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단백질인 야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윗동네에서는 주문할 때마다 번번이 재고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던 '진짜 고기'. 그리고 쉐르파 비어도 주문했다. 이날 먹은 맥주 맛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 모두 접시와 잔을 깨끗이 비웠다.
맥주를 마시며 원카드를 하고 있는데 저쪽 테이블에선 다양한 국적으로 이뤄진 사람들이 내일 등반 일정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 테이블에선 아마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생일 케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식당에 앉아있던 모두가 순식간에 해피벌스데이를 떼창 하며 하나가 되었다. 잠시 후 우리 상으로 케이크 한 조각이 배달되어 왔다. 야크 스테이크와 맥주로 부른 배의 마지막을 케이크의 단 맛이 정리해줬다. 원카드를 몇 게임 더 하다 방으로 들어가 그대로 눈을 붙였다.
행복한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