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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기 Jan 30. 2024

무조건 데리고 갑니다

2023년 9월 16일

‘쌤, 저 전화 한 번만 더 부탁드려요’


엊그제 통화한 이후 J에게 다시 문자가 왔다.

이틀 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어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첫마디다.


“흥미롭네? 나쁜 소식 먼저 들어볼까?”

“지난번과 같아요. 비전트립 가기 힘들 것 같아요.”


“그럼 좋은 소식은?”

“입원 안 하기로 했어요.”


학교 채플시간에 마음에 어떠한 감동이 있었고, 

마음을 짓누르는 이 문제에 대해 입원하는 대신 

스스로 이겨내 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입원을 안 하는데 비전트립은 왜 안 가?”

“학교수업을 빠지면 안돼요. 병원 다니느라 

 이미 몇 번 빠져서 또 빠지면 F 나온대요.”


차라리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바뀌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번에 얘기했지? 출발이 다가올수록 

 넌 어떻게든 안 갈 방법을 찾을 거라고.”

“근데 이거는 진짜 빠지면 안돼요.”


불과 엊그제 나눈 두 시간의 대화가 무의미해지듯,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J야, 그 수업이 중요하니, 네 삶이 중요하니?

걱정 말고 다녀와 봐. F 안 나와. F 나온다고 해도

지금 살고 죽는 문제 앞에서 학점이 뭐가 중요해?!”




정목사님과 함께 담임목사님 방을 찾았다.

나도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나보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본론부터 내뱉었다.


“목사님, 지금 J랑 계속 연락중인데요. 

우선 ‘안 가고 싶다’는 마음이 지배적이고요.

두려운 마음도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지난 몇 주간 J와 나눈 대화를 토대로 

상황을 말씀드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동안 봐오셨잖아요. 

몇 년간 그렇게 병원 다니면서 치료받고, 

이것저것 다 해봐도 별로 좋아진 게 없어요.

뭔가 삶을 뒤흔들만한 충격과 변화가 필요합니다.

장시간 비행만 잘 넘기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모험일 수도 있지만 뭐든 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이거 아니면 딱히 다른 희망도 없습니다.”


보통은 목사님 생각을 먼저 여쭈는 편인데 

오늘은 내 생각을 먼저 정신없이 풀어냈다.

그리고는, 결론을 말씀드렸다.


“그래서 제 생각엔,

J는 무조건 데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가만 듣고 계시던 목사님은 눈을 치켜뜨시고는

단 하나의 질문만을 던지셨다.


“그게 하나님의 응답이야?”


나름 오랫동안 하나님께 묻기를 반복해온 일이다.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큰 책임과 무게를 느끼셨을 목사님은

생각도, 하실 말씀도 많으셨겠지만 입을 닫으시고는 

그저 아주 짧고 간결한 문장을 택하셨다.


“다녀와! 대신 정목사랑 둘이서 책임져!”


든든했다.


책임을 떠넘기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마음껏 해봐!’


이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대화를 마무리하며 목사님은

큰 소리로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온 교회가 기도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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