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에서 우수사원까지, 그리고 비행기 대신 강릉행 KTX
아무것도 모른 채 평소처럼 출근하던 날이었다.
회사 1층 로비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웅성이고 있었다.
“올해 우수사원 명단 떴대.”
누군가 툭 던지듯 말했고, 나는 별 기대 없이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거기, 내 이름이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 동명이인 아닐까’ 싶은 마음에 다시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하지만 분명했다.
그곳엔 ‘우수사원 – OOO’ 내 이름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
회사는 매년 한 번,
10명 내외의 우수사원을 선정한다.
업무 성과, 조직 기여도, 리더십까지
모든 요소를 평가한 끝에 주어지는 자리다.
그 혜택도 컸다.
동반자 1인과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
회사에서 전액 지원하고, 비즈니스석 항공권까지 제공된다.
누구에게나 탐나는 자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올랐다.
사실 나는 인턴으로 시작했다.
누구도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고,
내가 있어도 없어도 큰 변화는 없던 시절이었다.
매일 조용히, 묵묵히
엑셀 파일을 채우고, 자료를 정리하고, 질문을 삼키고
버텨내며 일을 배웠다.
그러다 하나씩 기회가 주어졌고,
프로젝트에 투입됐고,
대표님 보고에도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인정받았다.
‘나도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그날, 내 이름 석 자를 통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19.
여행은 예정대로 갈 수 없었다.
처음엔 6개월 뒤로 연기,
그다음엔 또 연기,
결국 1년 가까이 미뤄지다가
“올해는 국내로 대체하겠습니다”라는 최종 공지가 내려왔다.
행선지는 강릉.
이왕이면 기차라도 특별하게 태워준다는 배려로
KTX 특실이 제공됐다.
사실 속으로 조금은 아쉬웠다.
일본 비즈니스석, 해외의 설렘,
출국장을 지나며 느꼈을 그 감정은 결국 경험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강릉 바닷가에 앉아 있던 그날,
나는 이 생각을 했다.
“내가 해냈구나.”
처음엔 기세등등한 신입도 아니었고,
번듯한 스펙으로 주목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매일 최선을 다해 한 걸음씩 걸었을 뿐인데,
그 길 끝에서 누군가는 나를 알아봐 줬다.
강릉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
창밖 풍경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처음 입사했을 때의 내가 떠올랐다.
떨리는 손으로 엑셀 파일을 열던 나.
눈치 보며 질문을 참던 나.
혼자 국밥을 먹으며 위로받던 나.
그 모든 순간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내 이름이 걸려 있었던 그날 아침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건 단지 ‘우수사원 선정’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증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