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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y 03. 2024

thanks for calm & limpid heart

고마워요, 솔밧


중간고사 기간에 자전거 뷔나를 타고 인천~서울 한강 종주를 하고 왔습니다.

두 주 만에 학교에 갔습니다.

오늘은 특강일.

특강이 끝나고 초청 강사님과 학교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대화를 하다가 광주 담양에서 오신 강사님이 이 지역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솔밧이요."

"솔밧과 패트릭의 솔밧이요?"

맞았습니다. 그 솔밧이었습니다.


우리는 솔밧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강사님의 갑작스러운 전화에도 솔밧은 우리를 초대해 주었습니다.


코너샵에서 허브차를 개발하고 교육하고 팔던 솔밧은 다른 작업실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디자이너인 패트릭의 목공 기술로 테이블과 선반 등이 만들어져 있고, 솔밧의 허브차가 병에 가득가득 담긴 그곳은 공방 느낌이었습니다. 잠잠하던 가슴이 서서히 콩닥대기 시작했습니다.


솔밧은 현재 허벌리스트이자 약초꾼입니다.

이전엔 귀농귀촌을 했고, 그 이전엔 서울 사직동 그 가게에서 있었답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찍은 <웃는 얼굴들> 사진전을 했답니다. 그리고 출판 편집자였다고 합니다. 사직동 그 동네에서 10년 이상 살았었는데 어째서 못 만났을까요?


솔밧의 이름을 알게 된 때는 2016년 무더운 여름 한복판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대동작은집에서 한 여름을 보내던 때, 이층 도서관에 전시된 책자들 중 솔밧과 패트릭의 작은 책자를 보았고 그들이 제작한 <다큐 자연농> 관련 자료를 본 듯합니다. 그곳을 스쳐간 많은 작가들 중 이상하게도 그들의 이름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솔밧과 패트릭'이라는 하나인 듯 둘인 이름과 한국 여자와 미국 남자 커플인 데다가 그들이 하는 일이 지극히 이상주의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후 그들이 오사카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돌고 돌아 다시 대전에 왔을 때, 송년회에서 패트릭의 플루트 연주를 들었습니다. 은드기의 아코디언과 나츠의 기타와 함께였습니다.

다음 해 은드기와 솔밧과 패트릭이 함께 카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왜가리 안내로 그곳에 갔을 때가 작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솔밧이라는 이름을 안 지 7년 만에 그 솔밧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두 번째 코너샵에 가서 솔밧이 키운 해피트리를 리현의 선물로 받았을 때가 작년 이맘때 5월이었습니다.  


코너샵은 통창에서 보이는 천변에 늘어서 있는 가로수의 햇빛에 부서지는 초록 때문이기도 했기만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워서 더 좋아 보였습니다. 작년 말에 코너샵을 정리한다고 했을 때 솔밧과 패트릭은 지금의 작업실을 구했고, 저는 중고차를 팔아서 그곳을 인수할까 잠시 고민했었지만 결국 그 가게에는 다른 임자가 나타났습니다.


자스민차와 향긋한 자스민차


솔밧은 지금 코너샵보다 훨씬 한적한 보문산 아래 연꽃모래마을 부사동 주택가에 자리한 작업실 혹은 공방 혹은 제작소에서 이름을 짓고 있습니다.


솔밧은 불쑥 찾아간 우리에게 재스민 차를 담아주었습니다.

아, 그전에 면역력에 좋은 차를 만들었다기에 제가 차를 좀 사겠다고 했습니다.

지갑에 만 원 권이 한 장 있었거든요.


무엇을 고를까요?


솔밧은 여러 차를 내어놓았습니다.

인공적인 향수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는 꽃향기보다 은은한 허브차의 향이 좋았습니다. 그중 '고요하고 맑은 마음'의 향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때 솔밧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백석 시 '탕약' 중에 나오는 구절로 지은 이름이에요."


아.......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저는 그 차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개업도 안 한 가게의 첫 손님이 되었습니다.


솔밧은 시를 낭송해 주었습니다.


*


탕약湯藥


백석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六味湯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萬年 녯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녯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


곰과 호랑이 허브의 솔밧


지갑을 비워 고요하고 맑은 마음으로 채움


한 달 반만에 유기농 매장에 들렀다가 동네 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솔밧이 이름을 따왔다는 루이스 세뿔베다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를 빌리러요. 하지만 책이 소장된 가족자료실은 10분 전인 오후 6시에 문을 닫아서 빌리지 못했습니다.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 온 돼지고기 사태 수육을 끓이는데 냄새가 역해서 먹지 못합니다.

저절로 솔밧이 만든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마십니다.

다관도 다기도 없다니까 솔밧이 얇은 일력에 싸준 초록 다관과 검은 다기에다가요.

잔이 두 개인데 한 잔에 따라 마시고 다음은 다른 잔에 따라 마십니다. 그러면 둘이 마시는 듯합니다.


8년 전에는 대동작은집 같은 공간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4년 동안 솔밧과 패트릭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농사도 공방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제 혼자 집 옆에 방치된 텃밭을 작은 호미 하나로 다 일구었습니다.

시원찮은 어깨로 잡초를 뽑고 마른 흙을 파 엎으며 귀농은 무슨, 내겐 땅 한두 평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름을 안 지 8년 만에 솔밧과 긴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만날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되는군요.


백석 시를 아는 허벌리스트 솔밧이

라벤터, 민트, 루이보스, 엘더베리, 민들레로 만든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마시니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만든 이의 고요하고 맑음 덕분이겠지요.

고맙습니다.

솔밧(과 패트릭)이 이전의 삶을 버리고

새로 택한 삶을 잘, 아주 잘 살고 있어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꺼질 듯한 희망의 성냥 불씨가 아직 살아있음을 봅니다.



솔밧과 패트릭이 2011년부터 4년 간 만든 영화 <다큐 자연농>

https://finalstraw.org/ko/

https://youtu.be/pyyPF_kd9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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