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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

육칠 월의 감사

by 일곱째별


유 월 중순쯤 포메라니안 로얄 캐닌 사료가 집에 택배로 왔다.

콩이를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누굴까?

짐작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문자로 물어보니, 내 몫으로 단백질 두유도 보냈다고 했다.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 때였는데 무척 고마웠다.

다음 날 단백질 두유도 받았다.


'요즘 내 편이 없다는 생각에 많이 서러웠는데 고마워서 눈물이 나네요.'

'이다는 언제나 별의 편이랍니다.'


그 전날 최근 가장 자주 만나는 분이 자동차 주유비 하라고 빳빳한 오만 원 권 두 장을 주셨다.

아니 왜 이러시냐고 펄쩍 뛰었더니, 그럼 지금 같이 차 타고 기름 넣으러 가자며, 나누며 사는 거라고 만땅 주유값을 굳이 굳이 주셨다.

아마 여름 방학에는 수입도 없는 내가 매주 전주에 장거리 연대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신 듯했다.

그 돈은 지갑에 고이고이 넣어 갖고 다니다가 첩첩산중 경당에 봉헌했다.


덕분에 내 차를 타고 가다 휘발유를 넣어준 사람들을 헤아려보게 되었다.

오래전 두 번이나 가득 채워준 도반, 남도에서 느리, 홍천 조문 가는 길 청명, 대전에서 숨이차, 곡성에서 니키, 얼마 전 승차하지도 않은 리현, 또 누가 있었을까?...... (혹시 빠뜨린 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운전한 세월이 하지 않은 세월보다 더 긴 생활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으로, 가는 길 동행이나 우회로 합승이 당연한 나에게 그런 깍듯한 예의는 낯설었다. 하지만 기억해 보니 그렇게 내 호의를 당연히 여기지 않고 도리에 엄격한 사람들은 늘 내 사정을 먼저 헤아려주었다. 가난한 사람이 모두 청렴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사람들 중 부자는 없었다.


그즈음 묻지도 않으신 큰고모의 판불고기와 장단콩두유가 배송되었다.

몇 해 후면 팔순인 고모께서 조카가 조금만 힘들어하는 걸 아셔도 병날까 봐 신경 쓰시는 거였다.

큰고모는 아신다.

내가 물품 자체보다 누군가 나를 챙겨줄 때 느끼는 위로감으로 기운이 나는 걸.


그리고 뒷것 고 김민기 1주기,

갑작스러운 죽순 나눔을 받았다.

현재 내가 나눌 수 있는 이들은 평화바람과 전주 전북지방환경청에 연대하러 오는 이들뿐.

항상 고마운 마음을 직접 채집하고 손수 삶은 친구의 노고로 대신 갚을 수 있어서 기뻤다.

월요 미사와 저녁 선전전 후 집에 와 죽순 말고 챙겨 받은 다른 물품을 풀었다.


직접 간 뽀얀 콩물,

처음 보는 보리수 잼

촉촉한 우유식빵

선홍빛 고운 고춧가루

단단한 양파


모두 집에 없는 물품이었다.


새하얀 우유식빵에 새빨간 보리수잼을 잔뜩 발랐다.

두 차례의 인명 사망 사고로 불매 운동하는 회사의 식빵이지만, 모르고 세심하게 챙겨준 사람의 고운 마음을 생각해서 눈 딱 감고 먹었다. 상상 이상으로 부드럽고 달고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7월 초 나흘 금식 후 매운 것도 커피도 밀가루도 금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게 오늘로 해제되었다.

나는 정상이 되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맨발로 뛰쳐나가,

"누구야, 다 덤벼!"

소리 질러줄 내 편은 아직도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잔잔하게 내 곁에서 가끔 생기를 주는 사람들은 있다.

그만한 게 어딘가.

이만하니 여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불탄 산청 지리산에도 대나무는 잎싹을 틔웠다.

그것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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