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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단상

by 일곱째별


새,사람행진을 떠나기 전 날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전주전북환경청 앞에서 '수라 살다' 앞치마에 수를 놓고 있는데,

화은이가 손톱에 스티커를 붙여주었습니다.


양손 약지에 주황과 빨강 스티커를 붙인 채 다음 날인 8월 12일부터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걸어가는 동안,

서천에도 평택 진위역에도 화은이는 일요일이면 행진에 참가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고 토요일에 성당에서 복사를 서지 않는 일요일에만 행진에 올 수 있었습니다. 참, 남태령 때는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왔었군요.


저는 화은이가 올 때마다 손톱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직도 스티커 있다."

이렇게요.

그 말에는 '이 스티커를 볼 때마다 너를 생각해.'가 담겨 있었습니다.


9월 11일, 한 달간의 행진을 마치고도 <주간새,사람호> 원고를 다 쓰고 교정을 보고 그게 PDF파일로 배포되는 동안 일주일 가까이 계속 행진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후 일주일 간은 학교 일 말고는 집에 꽁꽁 박혀 지냈습니다.

기운은 없는데 쌀도 꺼내지 않고 무얼 먹고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이 왼쪽 스티커가 하나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오른쪽 스티커가 떨어졌습니다.

이제야 새,사람행진이 끝난 듯합니다.


떨어진 스티커를 보며 제 습성을 고찰해 보았습니다.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일단 무언가를 받아들이면 웬만해선 그걸 억지로 떼어놓지 않는.

저절로 끝날 때까지 관심과 정성과 신의를 다 하는.

어지간해선 그러려고 노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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