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산책길
우산을 쥐고 집을 나섭니다. 밖에 보슬비가 내립니다. 오늘 많은 비가 내릴 거라고 했으니, 곧 빗줄기가 강해질 것입니다. 비 오는 날은 어디를 걸어도 좋을 테지만, 나는 숲으로 향합니다. 하늘을 가린 나뭇잎이 큰 비는 막고 기분 좋은 빗방울만 똑똑 떨어뜨려 몸을 간지럽혀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산은 챙깁니다. 혹시 큰 비에 홀딱 젖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접이식 우산 스트랩을 손목에 겁니다. 몸이 흔들리면서 우산도 빙빙 돌거나 앞뒤로 흔들립니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다른 편 허벅지를 툭툭 치기도 합니다. 몸에 집중하니, 우산이 거슬립니다. 우산은 손목에 매달려 빙빙 돌며 자연스러운 팔의 운동을 방해합니다. 멜빵 청바지도 그렇습니다. 어깨를 짓누릅니다. 등산화 또한 그렇습니다. 발의 감각을 무디게 합니다.
가진 게 많으니 몸이 무겁고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수많은 군더더기 때문에 똑똑 떨어지는 기분 좋은 빗방울을 느낄 새가 없습니다. 차라리 우산을 내려놓고 가벼운 옷과 신발을 신고 떠났다면, 비에 몸이 젖는 것에 더 용기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번 젖으면 더 젖는 것에 두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더라도 빗속을 온몸으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똑똑 떨어지든, 쏴아아 쏟아지든,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산책하는 내내 머릿속이 시끄럽습니다만, 다음 비 오는 산책길은 더 가볍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빗소리에 귀 기울이면서요. 가벼운 몸으로 팔 마음껏 흔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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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캠퍼스의 공간살림명상 중에 작성한 살림 메시지입니다.
#씨앗글: 아난다 박미옥의 '일상으로의 황홀한 몰입 살림 명상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