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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맺는 기쁨 Jan 13. 2022

아름답고 헛된 것들의 유용함

시의 탄생

그날 새벽 '하' 하고 내뱉은 숨에 흐려지던 안경알

손 마주 잡고 빛 속을 걸을 때 길게 늘어지던 그림자

맞닿은 어깨 위에 내리던 한 여름밤의 별빛


우리, 뜨겁게 사랑했던 그러나 지나간 그 긴긴밤

작고 봉긋하던 나의 젖가슴, 내내 맴돌던 뜨거운 그대 숨소리

그 시절의 젊고 예쁜 나, 그리고 당신


전원을 켤 수 없는 핸드폰에 지우지 못한 그대문자메시지

일기장 사이에 꽂힌 채 잊힌 우리의 사진

숱한 그리움과 그대 없는 계절, 그럼에도 살아지는 나의 삶


아름답고 헛된 그것은

이미 쪼그라들고 메마르고 바래진 그것은

내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이 되어 끝없이 자랐다.


그것은 순진한 아이의 노래가 되었고

루주 바른 노파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새파란 기도가,

내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시의 언어가 되었다.


또 그것은

그의 과거이고 그녀의 미래이며

 지금 이 순간이기도 하다.


그 모든 헛된 것들

그러니까 그토록 서럽게 헛된 것들이

의 삶을 완전하게 한다.


그것이 우주의 섭리이고

칠판을 메운 정교한 수학이고

내가 평생 붙들 종교이다.


아름답고 헛된 모든 것은

유용하다.

반드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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