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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맺는 기쁨 May 19. 2022

죄인

속죄를 욕보이며


그분은 대속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그분의 손목과 발등 위에서 흐르던 피는 죄의 속박을 끊기 위함이라고


그분은 나를 위해 왔던가

아 나는 지독한 죄인이다


나는 엄마의 산도를 비집고 들어가 그녀의 야들야들한 질을 갈기갈기 찢으며 태어났음에도 그녀의 머리채를 휘감고 가끔 칼을 휘두르던 당신을 끝내 사랑한다


더러운 죄인


나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내를 때리고 아내를 강간하고 아내 앞에서 울고 아내 발 밑에서 빌고 아내를 붙잡고 늘어지고 또 늘어지던 당신을 이해한다


끔찍하군


내가 보고 싶어, 내가 듣고 싶어 어두워진 집 근처를 서성이고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는 당신이 너무나 슬프다


피 묻은 손이여


벌레가 들끓는 쌀로 밥을 지어먹고 남이 버린 꽁초를 주워 피우면서도 전처에게  꼬박꼬박 양육비를 보낸 당신의 진심을 진정 믿는다


아버지


당신은 자기 자식은 버리고 남의 자식 키운다며 고함치던 딸의 뺨을 후려친 후 오래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나는 꽁초 든 당신을 위해 울었다

당신은 진한 담배연기에 흐려져 있었다


당신은 딸과 통화할 때마다 혜영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였다 자신은 죄가 많으니 지옥에 갈 거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 말을 나도 믿었으니


배반자


나는 배반자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보혈의 피 흘린 그가 있는데도

죄의 속박을 부둥켜안으며 속죄를 욕보이는 나는 지독한 죄인이다


응애응애


나는 다시 태어날 테야

당신의 코와 입에서 미끄러지는 연기로  풀풀 풍기는 냄새로 다시 태어날 테야


나도 당신 따라 지옥에 갈 테야

내 영혼에 문신처럼 세겨진 그분의 피를 당신의 피로 벅벅 문질러 지울 테야

펄펄 끓는 시뻘건 지옥에서 이 죄는 영원히 반복될 테야


아버지 나의 아버지


나는 당신을 끝까지 사랑하겠어 당신을 슬퍼하겠어 당신을 이해하겠어 당신을 믿겠어 당신의 담배냄새 오오 담배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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